우리의 산성(山城),읍성(邑城) 230

강화산성 (江華山城) 서문-북문-동문-남문

강화산성 일주는 2009년에 다녀온적이 있다.이후 2012년까지 강화산성 복원계획에따라 복원했는데, 이번에 복원된 산성길을 따라가 본다. 2009년 서문-북문-동문-남문강화산성 (江華山城) 2 : 서문-북문-동문-남문 서문에서 시작이다.남장대에서 이어진 성곽은 수문을 지나 서문과 연결되는데, 도로때문에 끊겼다. 서문 첨화루(瞻華樓) 안쪽모습 성곽복원이 더 길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데까지 복원구간이다. 멀리 남장대가 보이고, 아직 복원안된 성곽이 이어져 내려온다. 여기까지 복원된 성곽 이후로는 경작과 주택으로 흔적을 찾을수 없었다. 도로때문에 끊겨진 성곽 남문보다 성곽높이가 낮다. 마을을 지나 강화둘레길 표지를 따라가니, 오솔길같은 성곽길이 나온다. 무너져서 토성(土城)처럼 보이는 성곽 극히 일부가 남아..

강화산성 (江華山城) 남문-남장대-서문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을 에워싸고 있는 조선 시대의 산성. 강화도호부의 읍성 역할을 했다. 1964년 사적 제132호로 지정되었다. 13세기 몽골의 침입으로 고려의 백성과 국토가 유린되자 당시 무신정권 집권자인 최우는 1232년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도로 옮겼다. 당시에 성은 흙으로 쌓았고, 강화산성은 내성·중성·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성은 내성을 지키기 위해 쌓았고, 외성은 1233년 강화도 동쪽으로 흐르는 강인 염하강을 따라 쌓았다. 외성은 몽골군이 해전에 약한 것을 고려해 바다를 건너 공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지은 중요한 방어시설이자, 고려 조정이 강화도에서 39년간 육지로부터 물자를 지원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원종 11년 개경으로 수도를 다시 환도하게 되면서 몽골과 고려의 강화조약의 조건으로..

인천 계양산성 (桂陽山城)

종 목 : 사적 제556호 명 칭 : 인천 계양산성(桂陽山城) 분 류 :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수량/면적 : 문화재구역 17필지 62,863㎡, 문화재보호구역 28필지 41,607㎡ 지정(등록)일 : 2020-05-22 시 대 : 삼국시대 소유자(소유단체) : 인천시 등  삼국시대 최초 축조된 이후 구간별로 개보수되어 통일신라 시대를 거쳐 고려,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던 석산성으로 삼국시대의 축성기술 뿐만 아니라 후대에 개보수하면서 사용한 흔적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시기별 성곽 시설물을 볼 수 있는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뛰어남 - 문화재청이 성은 계양산(해발 395m) 중턱에 있는 삼국시대의 퇴뫼식 산성이다. 한강 하류 초입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백제와 고구려, 신라의 중요한 군사거점이었고..

당진 면천읍성(沔川邑城)

종    목 : 시도기념물 제91호 (당진군)  명    칭 : 당진면천읍성(唐津沔川邑城)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  수량/면적 : 16,954㎡(10필)  지 정 일 : 1993.12.31  소 재 지 : 충남 당진군  면천면 성상리 821-6외 9필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국유및사유 관 리 자 : 당진군 상 세 문 의 : 충청남도 당진군 문하공보과 041-350-3134  충청남도 당진군 면천면 소재지의 거의 전역을 둘러싸고 있는 읍성으로 조선 초기에 쌓은 것이다.성의 둘레는 약 1,200m이고 성벽은 자연석을 다듬어 축조하였는데, 저수지 공사 등의 사업에서 이곳의 돌을 빼다 써서 현재는 유실된 부분이 많다. 서쪽 성벽과 남쪽 성벽이 비교적 잘 남아 있는..

김포 문수산성 (文殊山城)

종 목 : 사적 제139호 명 칭 : 문수산성(文殊山城)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 수량/면적 : 203,511㎡ 지 정 일 : 1964.08.29 소 재 지 : 경기 김포시 월곶면 포내리 산36-1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국유, 공유, 사유 관 리 자 : 김포시 갑곶진과 함께 강화의 입구를 지키던 조선시대의 성이다.조선 숙종 20년(1694)에 돌을 이용해 쌓은 석축산성으로 순조 12년(1812)에 고쳐 쌓았다. 잘 다듬어진 돌로 견고하게 쌓았고, 그 위에 몸을 숨기기 위한 방어시설인 여장을 둘렀다. 당시의 성문은 취예류·공해루 등 3개의 문루와 비밀통로인 암문 3개가 있었다. 이 중 취예루는 갑곶진과 마주보는 해안에 있었으며 육지로 나..

대흥 임존성(任存城)

종 목 : 사적 제90호 명 칭 : 대흥임존성(大興任存城)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 수량/면적 : 937,686㎡ 지 정 일 : 1963.01.21 소 재 지 : 충남 예산군 대흥면 상중리 산8 시 대 : 삼국시대 소 유 자 : 국유,사유 관 리 자 : 예산군 임존성은 대흥면 봉수산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성 주위가 약 2.4㎞의 테뫼식 석축산성으로 산의 표고는 483m이다. 성벽의 높이는 약 250㎝이며 너비는 약 350㎝인데 남쪽의 성벽외면은 석축으로 되었으나 내면은 토석 혼축으로 내탁을 하였다. 남쪽 성벽에 수구를 설치하고 있으며 이곳 수구로 성내 물을 유도하기 위하여 깊이 90㎝, 폭 60㎝의 도랑이나 있다. 그 위에는 넓적한 판석을 덮고 있으며 수구의 크기는 ..

한양도성 - 낙산 (駱山)

서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의 도성(都城)이다.조선 건국 초에 태조가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기 위하여 궁궐과 종묘를 먼저 지은 후, 태조 4년(1395) 도성축조도감을 설치하고 한양을 방위하기 위해 성곽을 쌓도록 하였다. 석성과 토성으로 쌓은 성곽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두었다. 4대문은 동의 흥인지문 ·서의 돈의문 ·남의 숭례문 ·북의 숙정문이고, 4소문은 동북의 홍화문 ·동남의 광희문 ·서북의 창의문 ·서남의 소덕문을 말한다. 동대문에만 성문을 이중으로 보호하기 위한 옹성을 쌓았고, 북문인 숙정문은 원래 숙청문이었는데 이 숙청문은 비밀통로인 암문으로 문루(門樓)를 세우지 않았다.세종 4년(1422)에 대대적으로 고쳤는데, 흙으로 쌓은 부분을 모두 돌로 다시 쌓고 공격 ·방어 시설을 늘렸다. 숙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