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산성(山城),읍성(邑城)

남한산성 옹성 (南漢山城 甕城)

메탈 2009. 10. 18. 19:09

종    목 : 사적  제57호 
명    칭 : 남한산성(南漢山城)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 
수량/면적 :  528459.47㎡ 
지 정 일 : 1963.01.21 
소 재 지 : 경기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산1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국유
관 리 자 : 광주시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문 밖으로 또 한겹의 성벽을 둘러 쌓아 이중으로 쌓은 성벽을 말한다.
성내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이 옹성을 먼저 통과해야만 하고, 성벽에서 밖으로 돌출되어 있어 성문으로 접근하는 적을 3면에서 입체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시설물이다.
남한산성에는 모두 5개의 옹성이 있지만 성문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옹성이라기보다는 치나 용도, 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실록을 비롯한 조선시대의 지지자료에 이것들을 옹성이라고 명명하고 있음을 볼 때, 옹성의 개념은 단순히 성문을 보호하는 시설이라기 보다는 체성벽의 보호를 위하여 이중으로 성벽을 구축한 시설을 의미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한산성의 옹성은 남쪽에 3개, 동쪽과 북쪽에 각각 1개씩 설치되었다. 남쪽에 가장 많은 옹성이 설치된 것은 북쪽이나 동쪽, 서쪽에 비해 남쪽의 경사가 가장 완만하여 방어에 취약하여 검복리 방면에서 계곡의 완경사면을 따라 올라와 해발 537.7m인 검단산 정상을 확보하거나 계곡에서 화포를 쏠 경우 산성의 방어에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옹성은 모두 능선으로 연결되어 방어에 취약한 지점에 축조되어 있다.

 

옹성은 치성과는 달리 모두 체성과 직접적인 연결됨이 없이 체성벽의 기저부를 옹성의 상단으로 하여 축조하였고, 암문을 통하여 연결되도록 하였다. 옹성의 말단부에는 포루를 설치하였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이 옹성들은 연주봉 옹성을 제외하고 다른 옹성은 원성축조 시에 쌓은 것이 아니라 병자호란 이후에 적의 화포공격에 대응할 목적으로 축조되었다.

 

1남옹성은 둘레가 426m이며 옹성 끝에는 7개의 포루가 설치되어 있다. 원성과 연결되는 시축지점은 약간 넓게 벌어졌다가 가운데는 잘록하고 끝부분은 다시 넓어져 뭉툭하며 옹성 중간 부분에는 장대가 구축되어 있다.

 

2남옹성은 둘레가 318m이며 옹성 끝에 87개의 여장이 있었다. 이 옹성은 다른 옹성과는 달리 이중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색이다. 옹성 끝에는 포루가 있는데, 그곳으로 들어가는 홍예문이 있다.
포루는 동서남 3방향으로 3개씩 9개가 설치되어 있다.

 

3남옹성은 시축 부분에서 축조가 끝나는 부분의 양쪽 벽이 거의 평행이다. 둘레는 125m이고, 31개의 여담이 있었다. 끝부분엔 5개의 포루가 남쪽에 3개 동쪽과 서쪽에 각각 1개씩 설치되어 있다. 이 옹성의 포혈은 방형이 아니라, 凸자 모양으로 구축된 것이 특이하다.

 

연주봉옹성과 장경사 신지옹성은 잘 복원되어 언재던지 볼수가 있으나, 남쪽의 3개옹성은 잡목에 묻혀 볼수가 없었는데, 발굴소식을 있어서 가보기로 하였다.

조선시대의 해동지도다.

이번답사는 남쪽에있는 3개의 옹성이 되겠다.  

  

17세기 말에 제작되었다는 남한산성지도에도, 아래쪽에 3개의 옹성이 잘 나타나있다.

 

실제적인 요즘 지도다.

남문에서 3개의 옹성을 지나 동문으로 갈 예정.

 

먼저 시작은 남문 지화문이다.

남문에서 동문으로 이동하며 3개의 옹성을 보기로한다.

 

성곽위로 올라섰다.

  

옛 여장과 새로복원한 여장이 잘 비교된다.

 

성곽이 언덕위로 이어진다.

 

언덕을 올라서니 치가 보인다.

치는 성벽의 일부를 밖으로 돌출 시켜 성벽으로 접근하는 적을 입체적으로 공격할 수 있도록 한 성곽 시설물 중의 하나이다.
치는 이미 삼국시대부터 만들어지는데 산성의 경우에는 지형을 따라 성벽이 축조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굴곡을 이루게 되어 별도의 치가 필요 없는 경우가 많다.

 

남한산성의 경우에도 치가 거의 필요 없을 정도로 성벽의 굴곡이 심하여 암문도 성벽의 능선을 따라 회절 하는 곳에 인접하여 설치하고 있다.
원성의 경우 남옹성1과 남옹성3, 연주봉 옹성 부분에는 폭 12m, 길이 3m 하단부의 폭이 3m 정도 되도록 돌출 시켜 치를 구축하였다.
축성기법을 보면 체성벽을 쌓으면서 동시에 축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치의 바깥쪽에는 옹성이 돌아가고 있어 이 치의 존재는 보통 간과되고 있다. 비교적 다른 옹성 축조시 에는 연주봉 옹성을 제외하고는 이러한 치만 설치되었다.

 

치를 지나자 제1 옹성암문이 보인다.

 

암문을 나와 차도로 내려섰다.

 

길옆으로 성곽이 보인다. 약 1.5m 정도높이.

옹성벽이 틀림없다.

1남옹성은 둘레가 426m이며 옹성 끝에는 7개의 포루가 설치되어 있다. 원성과 연결되는 시축지점은 약간 넓게 벌어졌다가 가운데는 잘록하고 끝부분은 다시 넓어져 뭉툭하며 옹성 중간 부분에는 장대가 구축되어 있다.

 

 

옹성벽에 바싹 다가갔다. 일부 무너진곳도 있지만 대체로 양호했다.

 

그리고 옹성 안쪽에 또 성곽이 보인다.

장대였다.

 

장대벽면이다.

 

장대벽면이고.. 

 

옹성 안쪽이다.

 

옹성에는 포구도 있었다.

 

포구다.

 

무너지고 잡목이 많아 더 진행이 안된다.

 

반대쪽 장대벽.

 

직각으로 꺾였다. 오른쪽은 앞이되겠다.

 

장대앞쪽의 포구다.

 

모두 7개라는데, 내가보니 8개인것 같았는데...

 

 

포구 뒤쪽의 장대벽면.

잡목때문에 아무것도 알수가 없었다.

 

옹성 끝부분.

 

장대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직각으로 꺾인다.

잡목이 많아 사진을 찍을수가 없었다.

 

다시 옹성벽을 따라 본성으로 돌아간다.

 

청량산에서 남문으로 내려오는 성곽이 보인다.

 

비교적 잘남아있었는데, 복원한것인지 모르겠다.

 

치성이 보이고...

 

 

아까보았던 치성이다.

 

치성을 뒤로하고 진행한다.

 

아까는 성곽위로 갔었다.

 

다시 제1옹성암문이다.

 

 

안쪽모습.

 

다시 밖으로나와 성곽을 따라가는데, 보수공사가 진행중이다.

 

상당히 높은 남쪽성곽이다.

아마 지대가 완만해 옹성도 쌍고, 성곽도 높은것 같다.

 

제2옹성암문근처의 치성으로, 이곳의 치성은 상당히 컸는데, 이유는 이위에 남장대가 있기 때문이다.

 

치성에서 이어지는 제2옹성 벽면이다.

 

제2옹성과 저멀리 보이는 검단산 신남대의 돈대.

저 돈대는 지금 군부대가있어, 읿반인의 접근이 금지되어있다.

 

2남옹성은 둘레가 318m이며 옹성 끝에 87개의 여장이 있었다. 이 옹성은 다른 옹성과는 달리 이중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색이다. 옹성 끝에는 포루가 있는데, 그곳으로 들어가는 홍예문이 있다.
포루는 동서남 3방향으로 3개씩 9개가 설치되어 있다.

 

 

 

 

옹성에서 보이는 치성.

저 치성위에 남장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이곳에만 유일하게있는 홍예문.

 

포대와 포구.

 

 

 

검단산 정상에있는 신검성 돈대. 지금은 군부대로 사용된다.

 

 

옹성옆의 포구.

 

 

정면모습이다.

 

반대편으로 돌아가본다.

 

옆쪽 포구모습이다.

 

 

 

 

제2옹성 암문이다.

 

안쪽.

 

치성으로 올라갔다.

 

치성위에서 바라본 검단산정상과  옹성.

병자호란때 청나라군대가 신남성에서 대포를 발사하니, 왕이있는 행궁에 떨어졌단다.

 

 

자세히보니, 보축성벽의 모습도보이고...

 

 

 내 눈에는 잘 모르겠지만, 귀중한 자료임에 틀림없다. 

 

제3옹성으로 향한다.

 

아주 깨끗한 성곽이다.

 

암문이다.

 

작년에는 보수공사중이었는데 이제는 완성된모양이다.

 

완벽하게 복원되어 있었다.

 

제3남옹성이다.

 

 

 

제3남옹성모습.

 

3남옹성은 시축 부분에서 축조가 끝나는 부분의 양쪽 벽이 거의 평행이다. 둘레는 125m이고, 31개의 여담이 있었다. 끝부분엔 5개의 포루가 남쪽에 3개 동쪽과 서쪽에 각각 1개씩 설치되어 있다. 이 옹성의 포혈은 방형이 아니라, 凸자 모양으로 구축된 것이 특이하다.

 

옹성 안쪽모습이다.

 

 

 

조선시대때 돌을 쪼갠모습.

 

그당시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다행이다.

 

본성의 치성모습이다.

 

 

 

 

포구와 수구.

 

이곳은 보축성벽인지...기단부가 유별나게 두터웠다.

 

 

옹성정면이다.

 

옹성과 본성의 대비를 쉽게알수있다.

 

 

 

 

제3남옹성을 뒤로하고 동문으로 향한다.

 

 

방금전과 거의 똑같은 암문이다. 아마 기울기가 같아서 그런것 같다.

 

이곳도 깨끗하게 복원되어 있었다.

 

 

바깥쪽 길이나빠 안쪽으로 이동하였다.

 

치에서 바라본 옹성이다.

 

 

동문으로 향한다.

 

 

여기는 아직 보수가 안된것 같다.

 

바깥쪽을 보더라도 여장만 복원하면 될것 같은데...

 

 

이곳은 깨끗하군.

성곽이 급경사를 이루며 동문으로 향한다.

 

안쪽으로 내려선다.

 

동문이다.

 

여긴 보수가 엉망인지 깨지고 난리다.

옛날같았으면 관리자는 파면이고, 작업자는 곤장감이었을 것이다.

 

시구문을 지나니...

 

동문이다.

 

 

전에는 없었는데, 좌익문이란 현판이 보이고...

 

성곽은 북문으로 연결된다.

 

일요일이라서인지 옹성통제가 느슨하여, 여러장 사진을 찍을수가 있었다.

발굴과 복원이 끝날때를 기대하며 남한산성 옹성답사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