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산성(山城),읍성(邑城)

인천 화도진 (花島鎭)

메탈 2009. 7. 8. 17:18

종 목 : 시도기념물  제2호 : (동구) 
명 칭 : 화도진지(花島鎭址)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시설 
수량/면적 : 20,667㎡
지 정 일 : 1990.11.09
소 재 지 : 인천 동구  화수동 138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동구
관 리 자 : 동구
상 세 문 의 : 인천광역시 동구 문화공보실 032-770-6104

 

진은 진영(鎭營)을 줄여 부르는 말로 지방의 군사를 관리하던 지방관제의 하나이다. 화도진은 조선 후기 자주 나타나는 서구의 함선을 감시하기 위해 군대가 주둔하던 곳이다.

화도진의 설치는 인천 항구의 개방을 요구하는 일본에 대비하여, 조정에서 어영대장 신정희와 강화유수 이경하에게 만들도록 하여, 1879년 완성되었다. 그러나 갑오개혁에 따른 군대 관리제도 개혁으로, 진이 철폐되고 건물도 철거되었다.

화도진은 1882년 5월과 6월에 한미수호통상조약과 한영·한독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장소라는 역사성을 지니고 있는 곳으로, 1982년 화도진을 그린 『화도진도』를 보고 옛 건물을 복원하였다.

 

화도진 입구다.

하지만 이건 잠겨있고 들어가는 입구는 따로 있었다. 

 

화도진도를 보면 포대설치 위치가 나온다. 묘도북변포대(5문), 묘도남변포대(5문), 북성곳(북성포) 북변포대(5문), 북성곶남변포대(5문), 제물(포)북변포대(8문), 제물(포)남변포대(5문), 호구(논현)포대(2문), 그리고 댕구산(일명 장도)포대(3문)가 있었던 것. 그 전까지 알려진 화도진도(군사지도)엔 `댕구산 포대'가 없었다.

 

입구로 들어가면 전면에 사랑채문이 보이고, 좌측으로 내아 즉 안채가 있다.

 

내아로 들어간다.

 

 

내아의 모습.

 

일반 가정집과 똑같았다.

 

이 문을 들어서면 동헌이다.

 

동헌뒤로 육모정이란 정자가 있다.

 

동헌의 모습.

 

 

 

동헌뒤의 육모정.

 

동헌 가운데는 집무실이고...

 

오른쪽은 1882년 한미수호조약을 하였던 장소다.

 

 

왼쪽은 개인용도로쓰인 방이고...

 

동헌옆에 화도진 전시관이다.

각종 무기와 복장, 대포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장 출구에서 바라본 동헌.

 

동헌앞에는 화포를 관리하는 건물이 있고...

 

그 앞에는 정문이다.

 

정문옆 사랑채.

이곳 사랑채는 병사들의 숙소로 쓰였단다.

 

사랑채 문을 나서면 들어온 입구가 된다.

 

사랑채 문을 뒤로하고 화도진을 나섰다.

 

밖에는 당시에 사용되었던 화포가 전시되어 잇엇다.

 

 

논현포대 (論峴砲臺) 

종 목 : 시도유형문화재  제6호 : (남동구) 
명 칭 : 논현포대(論峴砲臺)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전적지/ 기타전적지 
수량/면적 : 2좌
지 정 일 : 1982.03.02
소 재 지 : 인천 남동구  논현동 415-56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국(재무부)
관 리 자 : 남동구
상 세 문 의 : 인천광역시 남동구 문화공보실 032-453-2104

 

어영대장 신정희와 강화유수 이경하가 인천으로 들어오는 서양인들의 배를 막기 위해 쌓은 포대이다.

조선 고종 16년(1879)에 쌓은 것으로 화도진의 관할 아래에 있었다. 인천연안은 강화의 바닷길을 통해 한양으로 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많은 포대가 있었으나, 지금은 논현포대만 남아있다.

원래 대포자리가 몇 개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 2개의 대포자리가 남아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논현포대의 두개의 포자리.

 

 

바깥모습.

 

 

 

 

포대옆에 당시의 화포가 놓여있다.

 

 

 

 

 

논현포대 근처는 공원단지 조성이 진행중이었다.

 

 

장도포대지 (獐島砲臺址)

종 목 : 문화재자료  제19호 : (남동구) 
명 칭 : 장도포대지(獐島砲臺址)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시설 
수량/면적 : 1,481㎡
지 정 일 : 2001.04.02
소 재 지 : 인천 남동구  논현동 111-13외 2필지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인천광역시 남동구외 1인
관 리 자 : 남동구
상 세 문 의 : 인천광역시 남동구 문화공보실 032-453-2104


장도포대지는 조선 말기에 외국선박들이 인천연안인 소래 수로로 침입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한 포대로 화도진과 연희진 등 2개의 진과묘도, 북성, 제물, 호구포대와 함께 축조되었으며 화도진 관할하에 있었다.

현재는 포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문헌에는 포좌 3기가 설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장도포대 앞쪽.

 

 

 

뒷 부분.

 

 

 

포대에서 바라본 소래철교.

 

화도진에 남아있는 포대가 비록 2개밖에 없고, 그것도 아파트건설등으로 파묻혀버렷다.

하지만 화도진을 보여줄수있는것이 이 2개포대가 유일하기때문에 그나마 위안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