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산성(山城),읍성(邑城)

칠곡 가산산성 (架山山城) 1 : 남문-동문

메탈 2009. 5. 2. 06:28

종 목 : 사적  제216호 
명 칭 : 가산산성(架山山城)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 
수량/면적 : 194,742㎡
지 정 일 : 1971.03.26
소 재 지 : 경북 칠곡군  가산면 가산리 산98-1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국유
관 리 자 : 칠곡군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을 겪은 후 잇따른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서 세워진 성이다.

 

성은 내성·중성·외성을 각각 다른 시기에 쌓았고, 성 안에는 별장을 두어 항상 수호케 하였다.

 

하양, 신령, 의흥, 의성, 군위의 군영과 군량이 이 성에 속하며 칠곡도호부도 이 산성내에 있었다. 내성은 인조 18년(1640)에 관찰사 이명웅의 건의로 쌓았으며, 칠곡도호부가 이 안에 있었다. 중성은 영조 17년(1741)에 관찰사 정익하가 왕명을 받아 쌓은 것으로 방어를 위한 군사적 목적이 크다. 중요시설은 내성 안에 있으며, 중성에는 4개 고을의 창고가 있어 비축미를 보관해서 유사시에 사용하게 하였다. 외성은 숙종 26년(1700)에 왕명에 의해서 쌓았다.

 

성은 외성 남문으로 들어가게 되고, 성의 주변에는 송림사를 비롯한 신라때 절터가 많이 남아있다. 1960년의 집중 폭우로 문 윗쪽이 무지개처럼 굽은 홍예문이 파손되고 성벽의 일부가 없어졌으나 그 밖에는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가산산성은 험한 자연지세를 이용한 조선 후기의 축성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산성이다.

 

남문모습. 문루를 복원해놓았다. 10시정각.

 

영남제일관이란 현판이 달려있는데, 대구읍성 남문에도, 조령관문 주흘관에도 똑같이 있는것으로보아 당시 즐겨썼던것 같았다.

 

안쪽모습이다.

 

정면 오른쪽은 치키봉으로 이어지고...

 

왼쪽은 가산바위 방향이다.

가산산성의 외성에 해당되며 1700년(숙종 26년)에 축조되었다. 1640년(인조18년)때 내성을 쌓고 60년후에 축조한것이다.

 

문 양옆에는 수구가 있었다.

 

 

치키봉 방향으로 향한다.

이 남문부근에만 여장이 복원되어 있었다.

 

암문이 보이고...

 

 

 

여기까지가 복원된 구간이다.

도로때문에 끊겨있고, 그 이후는 성곽이 옛모습 그대로다.

 

고지도에 그려져있는 가산산성 모습.

1700년대 말에 제작된 여지도다. 가장 보기 좋았으며.. 외성,내성,중성의 구분이 확실했다.

 

1800년대에 제작된 광여도.

 

1750년도에 만든 해동지도.

 

1872년 지방도.

 

매일신문사에서 만든 요즘지도.

등산용이기때문에 성곽안내는 미흡하지만, 스케일이 가장 정확했다.

 

도로를 가로질러 옛성곽이다.

 

군데군데 무너졌지만 약 1.5m의 높이를 유지했다.

 

치키봉 방향으로 연결되어있다.

 

무너진 곳도 있지만 상태가 좋은곳이 많았다.

 

 

 

잡목때문에 성곽안쪽으로 들어왔다.

안쪽은 편안한 등산로다.

 

다시 밖으로 나가보니, 여기는 미석까지 잘 남아있다.

 

옛모습 그대로다.

 

 

이곳 성곽쌓은형태가 조금 다른것으로 봐서, 감독관이 달랐거나, 쌓은시기가 달랐으리라.

 

잡목이 많은곳은 위로 걸었고...

 

산성 쌓던 선조들도 이 꽃을 봤겠지?

 

미석까지 잘 남아있는 성곽.

 

가파른 구간은 계단식으로 쌓았다.

 

가파르게 치이봉으로 계단식 성곽이 이어지고...

 

치이봉(700m)이다. 11시 45분.

 

치이봉에서 치키봉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완만했는데 많이 무너져있었다.

 

안쪽으로 편안한 등산로를 밟았다.

 

다시 성곽이다. 상태가 깨끗했다.

 

성곽안쪽모습으로, 이정도면 거의 완벽하게 남아있는 셈이다.

 

성곽 위쪽.

 

문이 보인다.

 

암문이었을 것이고...

 

다시 성곽은 치키봉으로 향한다.

약 2m위 높이로 상태는 좋은편이다.

 

군데군데 무너져있었다.

 

 

이곳은 큰 돌을 사용했다.

 

상태가 아주좋은 구간.

 

 

비교적 돌을 잘 다듬은 흔적이다.

 

치키봉으로 가파르게 올라간다.

 

계단식 성곽의 모습도 보이고...

 

 

치키봉(757m)이다.

'치키'는 경상도에서 '치' 혹은 '치이'로 발음되는 '키'를 말하는 것. 곡식을 까불릴 때 쓰는 도구이며, 그걸 엎어놓으면 등이 평평하다가 끝에서는 직각으로 절벽을 이루는 형상이 된다. 치키봉은 바로 그런 모습의 봉우리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러나 '치키봉'이라 불리는 757m봉에서는 그런 형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 특색 없는 봉우리일 뿐. 말이 봉우리이지, 부계봉에서 808m봉을 거쳐오면서 흔히 만나는 밋밋한 솟음들 중 하나일 뿐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떻게 '치키봉'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일까?

행정 당국의 부주의로 다른 봉우리 이름이 엉터리로 갖다 붙여진 결과로 드러났다. - 인터넷에서

 

치키봉의 진달래.

 

치키봉을 뒤로하고 동문으로 향한다. 많이 무녀져있슴을 알수있다.

 

동문으로 향하는 성곽.

 

거의 무너져있어서 안쪽 등산로로 걸었다.

 

무너진 성곽.

 

일부 남아있는구간이다.

 

가산산성중에 훼손이 가장 심한곳이기도 하다.

아마 등산로와 겹쳐서 그럴지도...

 

전망대. 가산산성의 가운데였다. 12시 45분.

 

멀리 남문이다.

 

이어서 할아버지, 할머니바위.

 

 

뒤에서보니 사람얼굴 같기도 하고...

 

무너져있는구간도 있고, 상태좋은구간도 있고...

 

높이는 그리 높지않지만 잘 이어져있었다.

 

 

 

그러다 다시 무너져있고...

 

무너진 구간은 등산로로 향한다.

 

다시 성곽이다.

 

 

약 1m에서 1.5m의 높이다.

 

 

여기는 자연임반을 이용한 구간인데, 안쪽도 잘 남아있었다.

 

자연암반을 이용한 성곽구간,

 

그래서인지 성곽상태도 좋았다.

 

 

 

 

미석의 모습도 잘 남아있었다.

 

다시 안쪽으로 돌아와 길을따라간다.

 

 

낮은상태의 성곽구간.

 

 

문의 흔적이다.

 

돌의 형태로보아 암문이 있었던것 같다.

 

성곽은 용바위 유선대쪽으로 이어져있다.

 

 

옹성형태의 성곽을 만난다.

인조 18년(1640년) 경상도 관찰사 이명웅이 축조한 내성이다.

 

여기서 잠시 이정표있는곳으로 돌아가 동문으로 향했다.

 

옹성에서 연결되는 인조때 쌓은 내성.

 

여기는 복원을 한것 같았다.

 

 

 

돔문이다.

 

외성은 1700년(숙종 26)에 당시 관찰사 이세재가 석축으로 축조된 것으로 둘레는 3,754보이고(약 3Km) 1,890첩이 설치되었으며, 성문은 남쪽에만 있고 북·동·남쪽에 3개의 암문이 설치되었다.

내성은 인조 18년(1640년) 경상도 관찰사 이명웅이 축조한성벽 둘레는 4,710보(步)이고 (약 4km) 1,887첩(堞)이 설치되었으며 성곽에는 동, 서, 북문과 8개 암문, 포루 4개소, 장대 1개소가 있었고, 성안에는 우물과 샘 21개소, 4개 사찰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