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산성(山城),읍성(邑城)

홍지문및탕춘대성 (弘智門및蕩春大城)

메탈 2009. 10. 30. 17:30

종    목 : 시도유형문화재  제33호 (종로구) 
명    칭 : 홍지문및탕춘대성(弘智門및蕩春大城)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시설 
수량/면적 : 일원 
지 정 일 : 1976.06.23 
소 재 지 : 서울 종로구  홍지동 산4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국유
관 리 자 : 종로구
상 세 문 의 : 서울특별시 종로구 문화진흥과 02-731-1170 

 

홍지문과 탕춘대성은 서울 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기 위하여 쌓은 것이다. 홍지문은 한성(漢城)의 북쪽에 있는 문이므로 한북문(漢北門)이라고도 하였으나, 숙종이 친필로 '弘智門'이라는 편액을 하사하여 달면서부터 이것이 공식적인 명칭이 되었다.
홍지문은 숙종 41년(1715)에 건축되어 1921년까지 탕춘대성문으로 그 역할을 다하였으나 1921년 홍수로 붕괴되어 50여년간 방치되어 왔다. 이에 서울특별시에서 1977년 탕춘대성과 함께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복원하였다. 현판은 고 박정희 대통령이 쓴 것이다. 화강암으로 중앙부에 월단(月團, 아치)이 꾸며지고, 그 위에 단층 문루가 세워져 있다. 석축 윗 부분 둘레는 여장(女牆)이 있고, 문루는 평면이 40㎡로 우진각 지붕이다.
홍지문 북쪽으로 홍제천(모래내, 사천)을 가로질러 홍지문과 같이 설치하였던 오간대수문(五間大水門)도 1921년에 홍수로 유실되었으나 1977년 홍지문 복원 때 길이 26. 72m, 폭 6.8m, 높이 5.23m, 수구 폭 3.76m, 수구 높이 2.78m의 5간의 홍예교(虹霓橋)로 복원하였다.


탕춘대성은 인왕산 동북쪽에서 시작하여 북쪽의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가 사천을 지나 북한산 서남쪽의 비봉 아래까지 연결하여 축성한 산성이다. 이 산성의 명칭을 탕춘대성이라고 한 것은 현재 세검정이 있는 동쪽 약 100여m 되는 산봉우리에 탕춘대(蕩春臺)가 있었던 것에서 연유한 것이며, 한성의 서쪽에 있다고 하여 서성(西城)이라고 하였다.
왜란과 호란 속에서 서울이 함락되며 갖은 고초를 겪은 조선왕조는 전쟁이 끝난 후 국방은 물론 유사시에는 수도를 방위하기 위한 온갖 노력을 경주하였다. 효종(1649∼1659 재위), 현종(1659∼1674 재위)을 거쳐 숙종 때에 이르러서는 수도방위에 더욱 치중하였다. 숙종은 재위 30년(1704) 3월부터 도성 수축공사를 시작하였고 이 공사는 6년 후인 숙종 36년(1710)까지 계속되었다.
도성 수축공사를 끝낸 숙종은 왕 37년(1711)에는 북한산성을 축성하였고 다시 탕춘대성을 축조하게 되었다. 이 탕춘대성을 축조하자는 논의는 이미 숙종 28년(1702)에 신완(申琬)이 제의하였다. 그후 탕춘대성은 숙종 44년(1718) 윤8월 26일부터 축성하기 시작하여 10월 6일까지 40일간 성 전체의 약 반을 축성하고 일단 중지하였다가 다음해 2월부터 다시 축성하여 약 40일 후에 완성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탕춘대성 전체의 길이는 약 4km였음도 알 수 있다. 성내에 연무장(鍊武場)으로 탕춘대 터(오늘날 세검정초등학교)에 연융대(鍊戎臺)를 설치하는 한편, 비상시를 대비하여 선혜청(宣惠廳) 창고와 군량창고인 상·하 평창(平倉)을 설치하였다. 그 후 탕춘대성의 축성과 함께 그 성안을 총융청(摠戎廳) 기지로 삼고, 군영도 배치하였다.
탕춘대성은 축성을 담당했던 관아나 또는 축성역, 축성 방법, 축성 경비 등에 관해서는 일체의 기록을 찾아볼 수 없으므로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으나 다른 성의 축조와 마찬가지로 군문(軍門)에서 담당하였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현존하는 탕춘대성은 도성이나 북한산성과 같이 주 성벽과 여장(女墻)을 쌓았으며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일정한 간격으로 성구(城口)를 뚫어 놓았다.

 

서울시에서 탕춘대성을 정비 복원한단다.

그렇다면 옛모습 보는것이 이게 마지막 아닌가 싶어서 달려갔다.

오간대수문(五間大水門)과  홍지문(弘智門)

 

 

북한산으로 이어지는 성곽.

 

하지만 여기로는 오를수가 없다.

개인땅 소유로 되어있는지, 한참을 돌아 올라야한다.

 

1977년에 복원된 홍지문.

 

 

오늘은 길건너 인왕산쪽부터 보기로 한다.

 

여기도 복원이 되어있는데, 바깥쪽으로는 나갈수가 없었다.

 

시멘트로 해놓아서 볼품이 없었다.

 

반대쪽 성곽이다.

 

높이는 낮았다.

 

여기부터는 옛모습인데, 복원한 흔적도 보인다.

 

 

가파른곳은 계단식으로 쌓았다.

 

 

중간에 복원은 해놓은것 같은데..엉망이다.

 

큰 암벽까지 이어져있었다.

 

여기부터는 성곽이 없다.

 

아주 가파른 암벽이라 성곽을 쌓을 필요가 없었다.

암벽위에서 보이는 내부순환로.

 

호젓한 길로 이어진다.

 

예나 지금이나 이곳은 요충지인 모양이다.

군부대는 철수한것 같았고, 참호만 흉물스럽게 남아있다.

 

인왕산까지 이런길로 이어지는데 , 산성답사가 목적이므로 발길을 돌렸다.

 

성곽위로 내려선다.

 

홍지문(弘智門)

 

 

상명대학에 차를주차시키고, 길이아닌곳으로 올랐다.

가을풍경이 물씬난다. 바로 성곽이다.

 

위에올라섰지만, 잡목에 가려 성곽이 안보인다.

 

바깥쪽에서 본 모습.

탕춘대성은 평균 2-3m의 높이를 유지한다.

 

여장만 무너져없을뿐, 성곽은 잘 남아있었다.

 

 

이 옛스러움도 복원이되면 없어지겠고...

 

잘 남이있는 탕춘대성곽.

 

 

여기는 치성이 있는자리다.

 

치성의 모습.

 

 

 

아래쪽에 미석의 모양이있는데, 이유를 알수가 없다.

 

성곽이 끊겨있는데, 사람들이 지나가는 통로여서 그런것 같았다.

 

위쪽은 나중에 대충 돌을 쌓놓은것 같았고...

 

고즈넉한 성곽길...

 

성곽 아래쪽에는 이런 호젓한 길이있었다.

 

이 여장도, 나중에 동네사람들이 대충 쌓은듯 하다.

 

가파르게 올라가는 성곽.

 

 

위쪽은 성곽이 아주 낮았다.

 

 

 

바깥쪽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잡목에 가려서그렇지 높이가 2m는 족히된다.

 

 

 

오솔길이 참 좋다.

 

여기부터는 안쪽길밖에 없었다.

 

 

여장의 흔적이 잘 남아있다.

 

탕춘대성의 유일한 문인 독박골 암문이다.

 

 

 

 

 

 

 

 

 

 

 

 

 

 

 

이제 성곽이 거의 머지막이다.

큰 암반으로 이어진다.

 

 

 

 

저기까지다.

 

 

큰 암벽에 이어진 성곽.

 

 

탕춘대 능선.

 

향로봉.

 

이제부터는 성곽안쪽의 길로 내려선다.

북한산에서 가장 아늑한 길인것 같다.

 

 

 

 

 

 

길이 점점 좁아지며, 호젓한 오솔길이 되고...

 

암문도 지나고..

 

 

 

 

 

상명대로 내려서며 답사를 마친다.

 

탕춘대성이 복원되면, 깨끗하고 보기야 좋겠지만, 지금처럼 고즈넉하고 옛스러움은 사라질것 같다. 

성곽을 제대로 보려면 아무래도 겨울에 다시한번 와야할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