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사적 제447호
명 칭 : 원주영원산성(原州領願山城)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
수량/면적 : 175537㎡
지 정 일 : 2003.06.02
소 재 지 : 강원 원주시 판부면 금대리 산50-2외 1필
시 대 : 신라
소 유 자 : 국유, 영원사
관 리 자 : 원주시
영원산성은 원주의 치악산(해발 1,288m)에 위치한 돌로 쌓은 산성이다.
이 산성은 축조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라말 가장 큰 지방세력이었던 북원(北原)의 양길(梁吉)·궁예(弓裔)와 관련되어 있는 사적으로 인식되어 왔다. 또한 고려 충렬왕 17년(1291) 원충갑(元충甲)이 지역의 방위군과 합단(哈丹)의 침략군을 통쾌히 무찌른 곳일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때 목사 김제갑의 지휘 아래 원주 일대의 주민들이 끝까지 항전하다가 함락되어 수많은 장졸들이 목숨을 잃은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 후 이 산성은 한강 상류의 요진(要鎭)으로 한동안 경영되다가 폐허가 되었다.
이 성의 전체적인 평면은 삼각형에 가까운 불규칙한 부정타원형으로, 성벽의 총 연장은 약 2.4㎞이며, 다듬지 않은 돌덩이를 차곡차곡 쌓아올린 모습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다. 동북 모서리에서 보다 높은 산봉우리를 이어서 꼬리처럼 된 용도(甬道)를 만들었는데, 이 곳은 다른 지역과의 연락에 유리한 곳일 뿐만 아니라, 남대령(南台嶺) 방면에서 능선을 타고 접근하는 적을 쉽사리 관찰하고 공격할 수 있는 곳이다. 한편 능선상에 성벽이 꺾어지는 곳은 능선을 타고 진입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하여 곡성(曲城)을 마련하였는데, 동남쪽 성벽에 4곳, 북쪽 성벽에 4곳, 서쪽 성벽에 4곳이 있다.
옛 기록에 의하면 ‘영원성은 석축성으로 둘레 3,749척, 성내에 우물 1개, 샘이 5곳 있었으나, 지금은 폐하였다’고 한다. 지금 성안에는 남·북·서문터와 성안의 물이 배수되는 수구(水口)가 남아 있는데, 북문의 동쪽에는 치성(雉城)을 설치하여 방어력을 높이고 있다. 또한 성안에는 여러 곳에서 건물터가 확인되었으며, 세 곳에 숯가마가 남아 있다. 수습된 유물들은 고려·조선시대에 사용되었던 도자기와 기와류 등으로 그 종류와 수량은 많지 않다.
이 산성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체성(體城)과 여장(女墻)이 확실히 구분되면서도 성의 외벽에서는 구분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며, 또한 여장에 사혈(射穴)이 없다는 점이다. 아울러 축성의 형식에 있어서도 우리나라 산성 축조방식에 있어서 가장 전형적인 산성의 완전한 모습을 보여 준다. 즉, 위치의 선정, 용도 시설의 활용, 여장의 완전한 잔존, 성문과 치성의 구조 등에서 고려시대 산성의 특징을 가장 잘 알 수 있다.
원주 영원산성은 학술적으로는 중세 산성의 특징(여장, 치성, 성문 등)을 잘 보여주는 산성이며, 역사적으로는 고려·조선시대를 걸쳐 전란시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던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귀중한 유적이다.
영원사까지 차가올라갈수있어서 편했다.
하지만 보통은 금대리주차장에서 걸어올라야하는데 2Km정도의 무척 지루한길이다.
영원사에서는 산성으로 바로오를수 있었다.
초입부터 가파른 오르막이다.
조선 해동지도에 나타난 영원산성. 금대산성도 같이 나타나있다.
계속 가파른길로 오르고...
석문도 지난다.
그러자 복원된 영원산성이다.
왜 성곽중간에 계단을 놓았는지...문이있던 자리인가?
좌측의 계곡입구인것같은데 옛 성곽모습이 일부남아있었다.
새로 복원된 성곽,
능선을 따라 가파르게 오른다.
바깥쪽은 약 2-2.5m정도 높이였다.
여장과 내성벽이 잘 나타나있다.
가파른곳은 계단식으로 쌓았다. 따라가 본다.
잘 복원된 영원산성 성곽이다.
고증에 충실하게 내벽과 여장을 복원하였다.
이곳은 외벽높이가 3m는 되어보였다.
뒤돌아 본 모습.
안개가 살짝끼어 고즈넉한 분위기가 한층 좋다.
사혈(射穴:총구멍)이없는 여장. 고려시대 성곽의 특징이란다.
뒤돌아 본 모습.
가파른 오름길이다.
여기 문의 흔적이다.
무너져있었는데, 남문정도 되는것 같았다.
무너진 문지와 복원된 남쪽성곽.
바깥쪽 성곽모습.
무너진 문지.
성곽은 계속 이어지고...
가파르게 이어지는 성곽.
경사가 심한곳은 이처럼 계단식이다.
크게 방향을 바꾸고...
저 끝에서 또한번 크게 방향을 바꾼다.
거의 90도로 방향을 바꾸며 오른다.
뒤돌아 본 모습.
잘 복원된 내벽과 여장을 따라 오른다.
복원된곳은 여기까지다. 자료를보니 복원구간이 410m란다.
바깥쪽에서 바라본 복원된 외벽이다.
이후부터는 거의 무너진성곽이다.
저 끝에 치성의 모습이 보이고...
치성부근인데, 단단한 바위위에 쌓아서인지 무너지지 않았다.
잘 남아있는 치성.
치성에서 연결된성곽이 잘 남아있었다. 바위위라서 그런것 같다.
잘 남아있는 여장.
바깥쪽성곽도 상태가 좋았는데, 너무 가팔라 내려갈수가 없었다.
이후는 잡목때문에 안쪽으로 가야만 했다.
이부근은 거의 무너진 성곽이다.
긴혹 성곽의 흔적이 보이는곳도 있다.
이곳은 여장이 잘 남아있는데..
위에서보니 바깥쪽은 무너져있었다.
큰바위까지 성곽의 흔적이다.
바위위에서 성곽은 연결되고...
이곳은 잘 남아있었다.
내벽과 여장의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것을 근거로 산성복원을 했을것이다.
바깥쪽.
해발 8-900m는되는곳인데, 성곽이 거의온전했다.
높은곳에 위치해서인지, 성곽높이는 아래쪽보다는 낮았다. 1,5m정도.
잘 남아있는 내벽과 여장이다.
외벽.
성곽은 계속 정상(마대봉)쪽으로 향한다.
여장을 따라간다.
이곳은 외벽도 잘 남아있다.
가파른곳인데도 성곽의 상태가 좋았다.
계속 올라간다.
뒤돌아 본 모습.
결사사 심한곳은 역시 무너져있었다.
거의 900m이상 오른것 같다.
잡초속에 묻혔다.
외벽의 모습.
저 위에 망대같은곳에서 성곽은 끝난다.
남대봉이 1180m이니까 아마도 900m정도까지 성곽이 이어진 셈이다.
이후에는 성곽의 흔적은 없었다.
성벽의 총 길이가 2,4Km라는데, 우리가 본것은 약1.5Km정도였다. 나머지는 계곡으로 내려섰을것같은데 찾기가 어려웠다.
영원상성은 무너진곳도 많았지만, 남아있는곳의 상태가 좋았고, 그것을 근거로 복원도 잘 해놓아, 나머지 부분도 복원이 되면 완벽한 산성의 모습을 볼수 있을것 같았다.
'우리의 산성(山城),읍성(邑城)'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한산성 외성 1 - 한봉성 (南漢外城 漢峰城) (0) | 2009.12.21 |
---|---|
인제 한계산성 (寒溪山城) (0) | 2009.12.19 |
서울성곽 이간수문 (二間水門) (0) | 2009.11.05 |
홍지문및탕춘대성 (弘智門및蕩春大城) (0) | 2009.10.30 |
북한산성 (北漢山城) : 위문 - 보국문 (0) | 2009.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