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사적 제217호
명 칭 : 당성(唐城)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
수량/면적 : 134,545.46㎡
지 정 일 : 1971.04.15
소 재 지 : 경기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 산32
시 대 : 삼국시대
소 유 자 : 국유,사유
관 리 자 : 화성시
남양반도의 서신·송산·마도면의 경계가 교차되는 중심부 가까이에 위치한 해발 165.7m인 구봉산(九峰山) 정상부와 동향한 계곡 및 서남쪽 능선을 에워싼 3중의 성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상에 오르면 서해의 여러 섬들이 그림과 같이 바라다 보인다.
산성의 전체 모양은 남북으로 길다란 장방형에 가까우며, 작은 계곡을 두른 포곡식에 가까운 형식을 취하고 있는 본성(本城)이 있고, 서남쪽의 남문 밖으로는 한층 낮아진 능선 대지를 다시 두른 부곽(副郭)이 이중으로 외성을 이룬다. 뿐만 아니라 이 외곽의 서남쪽 능선을 따라 토루가 계속 이어져 행성(行城)을 이루며 보다 서남쪽의 염불산(念佛山) 봉수 쪽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지역은 처음 백제(百濟)의 영역이었다가, 한때 고구려(高句麗)의 영토로 당성군(唐城郡)이라 하였으나, 신라(新羅)가 이 지역을 점령하게 되자 당항성(唐項城)이라 하고, 서해 바다를 건너 중국과 교통하는 출입구의 역할을 하던 곳이다. 기록에는 이 산성을 고당성(古唐城)이라 하여 당항성과 관련될 수 있는 곳으로 여겨진다. 신라 하대(下代)에는 당성진(唐城鎭)이 설치되고, 신라의 왕도(王都)에서 상주와 삼년산성을 거쳐 이곳에 이르는 길을 당은포로(唐恩浦路)라 하였다.
이 성에는 남문터와 북문터가 정상부 아래의 기슭에 있고, 동문터와 수구터는 계곡 쪽에 있다. 수구터의 안쪽에는 지금도 샘이 있어 물이 사철 나오고, 주변에 건물터가 있다. 서벽에 연한 정상부에는 노목이 우거진 숲이 있고, 여기에 성황당(城隍堂)이 있다. 이밖에 망해루(望海樓)로 추정되고 있는 건물지에 초석들이 남아 있다. 한편 본성의 서남쪽에 이어진 외성은 성의 서남쪽의 제일 높은 곳에서 한층 낮아진 평탄 대지를 주머니 모양으로 둘러서 본성의 남문을 보호하는 옹성처럼 축조한 흔적을 찾을 수 있고, 둘레는 230m이다. 이 외성에서 다시 능선을 따라 낮아지는 곳에도 보다 작은 제2의 외성을 만들어 남문으로 들어가기 위하여는 최소한 2개의 벽을 통과하여야 되도록 특수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 제 2의 외성에서 계속 산줄기를 따라 이어진 성벽은 희미하긴 하지만 보다 남쪽의 안부(鞍部)를 지나 계속된다.
성벽은 석축된 벽체가 무너져 마치 토석혼축처럼 보이지만 당초 토축의 석축으로 개축되면서 쌓아 올린 석축의 일부가 남벽쪽에서 약간 남아 있고, 문터의 좌우와 성벽의 회절처(回折處)마다 곡성(曲城)을 만들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스카이뷰
유명하지 않은 산성을 찾아가는데 가장 곤란한점이 들머리 찾는일이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성곽이 보인다.
다시 한참을 헤매다 산을돌아가니 입구다. 동쪽성곽이다.
아쉽게도 옛모습은 볼수없었고, 전부 복원된성곽이다.
높이는 약 2m정도로, 일정하게 유지되었다.
동쪽성곽이다.
반대편을 보니 동쪽성곽이 능선을 타고 내려온다.
남쪽으로 돌아섰다.
계속 이어지는 남족 성곽.
지나온 방향.
여기서 끊겨지는데, 문이있던 자리 같았다.
위로 올라섰다. 위는 깔끔히 단장되어 산책하기 좋았다.
안쪽에서 바라본 남문지.
서쪽으로 돌아간다.
서쪽성곽.
다시 성곽 아래로 내려섰다.
서쪽성곽은 높이가 3m이상은 되었다.
서쪽성곽이 끝나는 부분.
여기부터는 무너진모습이다.
북쪽으로 이어질텐데, 흔적을 찾을수가 없었다.
지나온 서쪽 성곽.
서벽정상부에 성황당(城隍堂)자리가 잇었다는데, 이곳인가보다.
북쪽성곽을 찾다 실패하여, 다시 서벽을 타고 돌아간다.
서쪽성곽 위다.
포근한 소나무길.
남문지.
남쪽성곽.
동쪽성곽.
처음 시작점인 동문 근처다.
잡목을 헤치고 올라가니 다시 동쪽성곽에 다다른다.
이어지는 반대편 동쪽성곽.
동쪽성곽은 여기서 끝나고...
저기서 북쪽성곽이다.
북쪽성곽의 시작부분.
약 150m정도 이어진다.
그리고 끊어져있는데 문이있는곳 같다.
성곽 위쪽.
다시 이어지고...
아까 성황당(城隍堂)있던 부근이다.
아까 보았던 서쪽성곽 길이다.
다시 거꾸로 내려간다.
북문지.
북쪽성곽 위쪽.
동쪽성곽.
동문지로 내려선다.
당성 사적비.
이 지역은 처음에는 백제의 영역이었다가 한때 고구려의 영토로 당성군이라 하였으나 신라가 이 지역을 점령하게 되자 당항성이라 하고, 바다를 건너 중국과 통하는 길목의 역할을 하던 곳이다. 성벽은 쌓은 벽이 무너져 마치 흙과 돌을 합쳐서 쌓은 것처럼 보이지만, 흙성의 성벽을 돌로 쌓아 올린 흔적이 남벽 쪽에 약간 남아있다.
당성이 소재하는 남양지역은 지금은 화성시이지만 신라 경덕왕 때는 당은군으로서, 중국과의 교통로로서 중요한 구실을 하였으며, 신라 후기에는 이곳에 당성진을 설치해서 청해진과 함께 신라 해군의 근거지로 중요시되었던 곳이다. 이곳은 당항성과 관련되는 가장 중요한 유적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 문화재청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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