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지정 문화재
보은군 회남면 남대문리 거교리와 회북면 용곡리 경계에 있는 호점산을 중심으로 해발 280m 이상의 산봉우리 5개 및 그 사이에 계곡을 둘러싼 석성이나 지형이 매우 험하고 가파른 서남쪽 1.2km는 흙으로 쌓은 토석축산성으로 전체의 둘레는 2,722m이다.대부분의 옛 기록에 고을의 남쪽 9리에 있고 둘레는 858보이며 매우 험하고 오래되어 무너졌으며 안에 1개의 샘이 있었으며 사찰내내 물이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자료에 의하면 성벽 안쪽의 높이는 석축부분이 1.8m이고 토축부분은 2.3m 정도이다. 문자리는 6개소로 확인되었고 이중 성의 북벽에 1처,서쪽망대의 북쪽에 1처, 남벽에 대문인 남문이 있고 동벽에 3처가 있었다.산성에서 발견된 유물은 신라계와 고려시대의 토기조각과 도기조각,기와조각이 발견되고 있어 삼국시대에 쌓은 것으로 보인다.등산하는 동안 기와조각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1개 또는 3개의 우물이 있다.
호점산성(虎岾山城)은 사방이 높은 산봉우리이고, 중앙에 넓은 계곡이 있는 이른바 고로봉(袴栳峰)형식의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사방이 높은 봉우리이고 동쪽으로 계곡 물이 빠진다.마치 성안 계곡에 있으면 가마솥 안에 들어 있는 것 같아서 가마성이라 하는 것일까.보은군 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성터요, 성벽이 가장 특이한 모양으로 쌓여진 것이며, 고려시대의 이 지역 역사를 가늠케 하는 중요한 산성이다.
주변에 농경지가 많지 않은 깊은 골짜기 안쪽에 거대한 돌 성을 축조한 것은 삼국시대에 성을 쌓아 다스리는 고을의 중심이 되었던 성과는 다른 용도로 보여진다.
즉, 우리나라 고대의 산성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중세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중세는 보통 통일신라 후기에 고대사회가 허물어지면서 호족(豪族)이 등장하는 이후의 것으로서, 대략 삼국시대보다 규모가 크고, 험준한 요새를 골라 돌로 성벽을 쌓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이다.
호점산성은 커다란 골짜기를 둘러막은 산봉우리 전체를 돌려, 오직 동쪽의 계곡으로 많은 짐을 들일 수 있는 지형에 축조되었다.
성안에서 볼 수 있는 유물도 오지 그릇 조각이나 고려시대의 기와 조각이 많다.
따라서 고려시대에 많이 사용한 산성일 가능성이 크다.
고려시대에 사용된 것 가운데 한가지 특징적인 것은 삼국시대 일부 산성에서도 있었으나, 새로이 유행된 듯한 기둥 홈이 있는 성벽이다.
호점산성의 성벽에서 볼 수 있는 특징적인 돌의 축조 방법은 이런 형태의 산성들 가운데 가장 모범적인 것이다.
돌을 쌓아 성벽을 만들 때 일정한 간격으로 기둥을 세운 흔적이 남아 있는 성벽은 충주의 대림산성,단양의 독락산성,문경의 노고성,제천의 와룡산성,춘천의 삼악산성 내성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인데, 이들 산성은 모두 험준한 지형에 축조되고, 피난용으로 축조된 것들이다.
호점산성의 성벽에 남은 기둥자국은 특히 작은 돌로 메움질 한 것까지 남은 것이 있을 뿐만 아니라, 처음 축조한 성벽에도 있고, 나중에 수축한 성벽에서도 볼 수 있다. 그래서 호점산성은 기둥 홈이 남은 산성의 대표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산성들은 대략 지금부터 1,000여년 전에 일시 유행하였던 것이라 여겨지고, 그것도 고려 왕건의 시기와 관련될 가능성이 크다.
호점산성은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공직(?直)이 활약하던 시기에 축조되었을 가능성과 최영 장군이 활약한 고려 말기에 왜구가 들끓던 시기 피난용으로 수축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 보은군 홈페이지
도로변에 이정표가 설치되어있어 쉽게 찾을수 있었다.
저 끝이 산성입구로, 산성이 등반로와 같이되어있는 지도도있고, 산성 안내판도있어 이해하기 쉽게 되어있다.
주차장도 있어, 비지정 문화재라는것이 놀라울 뿐이다.
갈미봉에서 치알봉으로 한바퀴 돌아볼 예정이다.
안내판 앞에서 바로 오른다.
이런 바위가 이곳 특징이고, 산성이 모두 이런 돌로 이루어져 있었다.
갈림길에 있는 나무다리, 저 다리는 치알봉에서 내려오는곳으로, 나는 우측으로 향했다.
우측으로 오르는데, 성곽 흔적이 아주 조금 남아있다.
자연 암반위에 쌓은 성곽.
조금 오르니 갈림길이다.
오른쪽은 전망대. 산성이있는 왼쪽으로 향한다.
이곳도 성곽의 흔적이 조금밖에 남아있지를 않는다.
갈미봉을 향해 오른다. 아주 가팔랐다.
오른쪽은 낭떠러지라, 성곽이 필요없겠다.
거의 다 올라오니, 낭떠러지 옆에 성곽이 보인다. 동벽끝이다.
조심스럽게 아래로 내려서본다.
너무 위험해 사진찍기가 어려웠다. 최대광각(14mm)으로 민다.
북쪽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가팔라 따라갈수가 없어, 위로 올라갈수밖에 없다.
갈미봉위의 무덤. 여기부터 북벽이다.
무덤 옆으로 내려서본다.
아까 보았던 동쪽성곽.
그 성곽이 눈앞으로 이어지고...
조금 무너지다가...
북쪽으로 성곽이 돌아간다.
여기부터 북벽이다.
조금 기울어져있지만 성곽상태가 좋았다.
약 100여m 이어진다.
잡목과 무너진곳이 많아 다시 위로 오른다. 등산로가 비단길 같다.
다시 오른쪽 밑으로 내려왔다.
북쪽이라 이끼기많아 성곽의 모습이 잘 안보인다.
밑의 부분이 많이 무너져 있는데..아마 흙위에 성곽을 쌓아서 그럴것이다.
흙이 무너지니 밑부분이 무너질수 밖에...
성곽은 끊어진 부분도 있지만, 대체로 이런모습으로 이어진다.
다시 위로올라 능선길을타고 아래로 내려선다. 이부근은 성곽의 흔적이 없다. 무너진 모양이다.
아래로 내려오니 성곽이 보인다.
거의 완벽한 모습이다.
성곽 안쪽모습으로 약 1.5m 정도 된다.
바깥쪽도 보여 아래로 내려가본다.
너무 가팔라 , 발 디딜곳이 없어 따라갈수가 없다.
바깥쪽은 많이 무너져 있었다.
다시 안쪽으로 들어와 성곽을 따라간다. 성곽은 다시 전망대가있는 봉우리를 향한다.
약 1.5m의 높이였다.
성곽위로 올라섰는데..바깥쪽은 다 허물어져 있었다.
안쪽도 위로 갈수록 무너져 내리고...
뒤 돌아 바라본 안쪽모습.
바깥쪽은 없다.
남아있는 안쪽모습이 다시 보인다.
이곳은 약2m쯤 되어보인다.
그러다 다시 허물어져있다.
전망대봉에 가까이오르니 다시성곽이다. 이곳도 2m는 되어보인다.
아주 특이한 홈이 보인다.
나중에 알고보니, 나무말뚝을 박고 성곽을 쌓은다음 , 나무말뚝을 뽑은 자리란다.
작은 돌로 채워놓는다는데, 돌이 흘러내려 이런 상태가 되었단다.
홈통이 두개 보인다.
안쪽은 이어져가는데, 바깥쪽을 보았다.
바깥쪽도 성곽이 보인다.
배부름 현상이 있지만, 성곽이 제 모습을 갖췄다.
한가지 또 특이한 점을 발견햇는데, 안쪽성곽 바깥쪽으로 3-4m나아가서 바깥성곽이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성곽이 무척 두꺼운 것인지..아니면 안쪽성곽을 쌓고, 3-4m바깥쪽에 다시성곽을 쌓은것인지?...
약 30-40m정도 이어져 있는데, 경사가 가팔라 내려갈수가 없었다.
위쪽에서 바라본 모습.
전망대 봉이다.
원래부터 있었다면 포루나 망대가 되겠지만, 쌓은 솜씨를 보니 요즘사람들이 막 쌓은 모습이다.
이제 저 354봉으로 향한다.
경사가 가팔라서인지 성곽의 흔적은 없고 유일하게 발견된 모습이다. 암반위에 있어서인지 무너지지 않았다.
아래로 내려오니 흔적이 보인다.
안쪽성곽모습이다.
그 앞으로는 바깥쪽 성곽도 보인다.
약 30m 쯤 된다.
그리고는 무너졌다가 다시 이어지고...성곽 두께가 보통이 아니다.
이렇게 쌓는것을 허튼층 쌓기라고 한다는데?.. 그건 전문가의 몫이다.
치성인지 문인지..특이한 모양이다.
단면이 깨끗한것을 봐서 문이나 치성이다.
좀더 내려왔다.
가팔라서 더이상 내려설수가 없다.
그리고 이어지는 성곽.
성곽 위에서 본 모습.
안쪽이고...
이제 354봉으로 오른다. 이곳은 성곽의 모습이 안보인다.
성곽이다.
약 40m 정도다.
성곽의 두께를 느낄수있다.
호젓한 소나무 숲길이로 이어지고...
또 성곽의 모습.
가팔라서 간신히 찍었다.
다시 소나무 길...
354봉이다.
이곳은 망대나 포루가 있었을 것이다.
치알봉으로 향한다.
가는도중에도 성곽을 만난다.
약 30-40m 정도다.
그리고 치알봉으로 오르기전에도 성곽을 만난다.
이곳에서 성곽쌓을때 박은, 나무말뚝 흔적을 제대로 볼수 있었다.
참으로 신기했다.
800-900년전 나무말뚝 흔적이라니...
치알봉 직전에 성곽흔적.
치알봉.
다시 소나무 길을 걸으며 하산이다.
깎아지른 절벽위에 남아있는 성곽.
앞모습은 도저히 카메라에 담을 수가 없고...저런 절벽위에 성을 쌓은 사람들의 고통이 느껴지는듯 하다.
이후로는 성곽의 모습을 발견할수 없었다. 서남쪽은 토축산성이라는데..이곳이 토축산성같다.
다시 가파른 길을 내려선다.
나무다리를 건너며 왼편으로 올려다 보았다.
안쪽성곽이 잘 남아있는 전망대봉으로 오르는 능선이다. 2시간 30분의 답사를 마친다.
호점산성은 개인소유지가 많아 문화재 등록이 어렵다고 한다. 이 큰 면적을 다 보상을 해줘야 하나보다.
부분적으로 무너져있고, 부분적으로 남아있지만 보호가 시급한것같다.
다 무너진후에 대체 뭘 할수 있단 말인가?
'우리의 산성(山城),읍성(邑城)'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천 설봉산성 (雪峯山城) (0) | 2009.01.16 |
---|---|
안성 죽주산성 (竹州山城) (0) | 2009.01.16 |
대전 적오산성 (赤鰲山城) (0) | 2009.01.09 |
양주 대모산성 (大母山城) (0) | 2009.01.08 |
연천 수철성 (水鐵城) (0) | 2009.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