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시도기념물 제143호 (양주시)
명 칭 : 양주대모산성(楊州大母山城)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
수량/면적 : 일원
지 정 일 : 1993.10.30
소 재 지 : 경기 양주시 어둔동, 백석읍 방성리일대
시 대 : 삼국시대
소 유 자 : 국유
관 리 자 : 양주시
상 세 문 의 : 경기도 양주시 문화체육담당관실 031-820-2129
양주 대모산성은 양주산성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해발 212m의 대모산 정상에 있다. 분지형을 이루고 있는 대모산의 산꼭대기를 돌아가면서 돌로 성을 쌓은 테뫼식 산성이다. 이곳은 수락산 봉수대와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이자 양주를 포함한 여러 지역을 방어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5세기 중엽까지 백제의 영역이었다가,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정책으로 6세기 중엽까지 고구려에 속하였고, 그 이후에는 신라 땅이 되었다. 이런 지정학적인 위치를 중심으로 살펴볼 때 양주 대모산성은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매초성’으로 추정된다.
타원형을 이룬 성벽의 둘레는 1,400m 쯤 되며, 북쪽의 문터로 짐작되는 곳에는 성벽이 잘 남아 있지만 다른 곳은 대부분 무너졌다. 현재 성벽의 높이는 4∼5m 안팎이나, 너비는 주변의 지세에 따라 가파른 남쪽은 6m, 완만한 북서쪽은 8m쯤 된다. 50°정도의 각도로 경사지게 들여쌓기를 하였는데, 이러한 방식은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까지 주로 이용된 것이다. 성 내부에는 건물터로 추정되는 평지가 여러 곳 있으며, 지표에는 둥근 주춧돌 여러 개가 노출되어 있고 또 주변에는 많은 토기조각과 기와조각이 흩어져 있다.- 문화재청
산성의 둘레는 약 1.4km이며 성벽은 대부분 붕괴된 상태이나 북문 터 좌,우측과 동쪽 등 3개소에 약 70~80m 정도 잘 남아 있다. 성벽의 높이는 4~5m이고 아랫부분의 폭은 주변의 지세에 따라 가파른 남쪽은 6m, 완만한 북서쪽은 8m쯤 된다. 성벽은 표면이 잘 다듬어진 할석으로 경사지게 들여쌓기 하였으며, 성벽 하단부 바깥쪽에는 보축 성벽을 쌓아성벽의 안정성을 높였다.
대모산성은 양주시청에서 멀리떨어지지 않았다. 도로변에 있어서 차를 세우고 5분정도만 걸으면 됐다.
성곽돌 조각들이 흩어져있는데, 그 끝에 산성이 보인다.
위치를 보니 서쪽벽이다.
왼쪽벽.
아래 기단부가 2단으로 되어있는것을 알수있다.
위쪽은 많이 무너져, 속쌓기가 드러나고...견치석(犬齒石)의 모습이 잘 보인다.
문이있던곳으로 연결된다.
문이있던 자리. 서문이 되겠다.
성문은 3개소가 확인되었는데 모두 다락문인 현문식(懸門式) 구조다.
문 오른쪽으로 이곳은 훼손이 심했다.
문으로 들어가며 자라본 왼쪽면. 2중기단이 보인다.
자세히 들여다본 모습.
남쪽방향으로는 이러다 끝난다.
문이다. 왼쪽모습.
오른쪽
안쪽에서 바라본 모습.
문에서 남쪽으로 따라간다.
성곽은 다 무녀져 흔적도 없었다.
방향을 돌아 남쪽이다.
남쪽도 흔적만 간신히 남아있을뿐, 성체는 없었다.
남동쪽 끝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부분.
방향을 틀어 동쪽이다. 이곳도 이러한 형태다.
대부분 무너져 있었다.
위로 올라와 진행하는데, 저 앞에 무었이 보인다.
동문이다.
밖에서 바라본 동문. 이곳도 보축성벽의 2중 모습이 보인다.
문 왼쪽모습.
오른쪽.
왼쪽은 비교적 잘 남아있다.
문 바로 옆인데, 나중에 무너진곳을 대충메운 흔적이다.
오른쪽은 많이 무너져있었다.
2중의 모습이다.
오른쪽은 너무무너져 위로 올라야했다.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니 양주 불국산이다.
이 무덤은 우리가 흔히 보아왔던것과는 많이 달랐다.
북쪽도 거의 무너져, 아무것도 없었다.
저 언덕에서 방향이 바뀌더니...
문이보인다. 북문이다.
대모산성 문중에 가장 상태가 좋았다.
왼쪽.
오른쪽.
밖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이곳도 2중 구조다.
왼쪽 언덕에서 내려오는 성곽.
위쪽만 무너져있을뿐, 가장 상태가 좋은 모습이다.
문까지 이어져온다.
문 바로옆.
문 오른쪽이다.
서쪽으로 이어지는 성곽오른쪽은 얼마 못간다.
보춛성벽의 모습.
오른쪽 보축성벽.
문의 너비다.
이쪽은 서쪽방향 문.
안쪽 성곽의 모습이다.
이것도 얼마 못간다.
성곽위에서 돌아본 북문방향.
서쪽으로 돌아서기전에, 불국산을 다시한면 조망한다.
서문으로 향하는데, 거의다 무너진 상태다.
이것이 유일한 성곽. 안쪽 모습이다.
거의 무너진 상태.
다시 서문으로 돌아왔다.
문에서 바라본 양주시.
보축성벽과 속쌓기를 다시한번 살펴본다.
서문방향.
무너진 성곽돌을 밟으며 내려서서 답사를 마친다.
유물은 대부분 건물 터 내부와 추정 저장공, 문 터 주변에서 출토되었는데 무기류, 농기류, 마구류, 건물부재, 일반 생활용구 등 다양한 양상을 보여주(驪州)고 있다. 삼국시대의 유물로는 백제, 신라계의 유물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출토유물 중에는 덕부사(德部舍), 국(國), 부(富), 대부운사(大浮雲寺) 등의 명문 기와가 발굴되어 주목된다. 삼국시대 이후의 유물로는 통일신라, 고려 그리고 조선 시대의 유물이 고루 분포하고 있다.
현재의 석축 성벽은 삼국 시대 때 신라에 의하여 쌓아져 고려, 조선 시대에도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북문 터 북쪽에서는 백제계 토기가 많이 출토되어 석축(石築) 성벽이 축조되기 이전에 이미 이곳에는 토루나 목책 등의 방어시설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 양주시청 문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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