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사적 제64호
명 칭 : 화왕산성(火旺山城)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
수량/면적 : 226,790㎡
지 정 일 : 1963.01.21
소 재 지 :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산322
시 대 : 삼국시대
소 유 자 : 국유
관 리 자 : 창녕군
창녕 읍내의 동쪽 화왕산에 돌로 쌓은 산성으로 처음 쌓은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시대 이전으로 보이며, 가야의 산성으로 생각된다. 험준한 북쪽의 바위산을 등지고 남쪽 봉우리 사이의 넓은 부분을 둘러싼 산성으로 둘레가 2,600m이다. 창녕은 낙동강 중류에 넓게 펼쳐진 곡창지대의 중심지이며 서부 경남 지방에 대한 교통·군사상의 요충지로, 이 산성이 당시 매우 중요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현재 동문·서문·연못이 남아있다.
조선 세종 때 성으로서의 기능을 잃었으나,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다시 중요성이 인식되어, 곽재우가 의병 근거지로 왜병의 진출을 막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이후에도 한두 차례 수리가 되어 지금까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창령을 보호하는 진산으로 기록된 사실과, 영산·현풍을 포용하는 성이라는 점에서 군사적인 의미가 매우 큰 요충지였다.
스카이뷰
화왕산 정상분지를 둘러싼 화왕산성.
한바퀴 돌아쌓은 산성이지만, 거의 대부분 무너져있고, 남문부터 동문까지가 복원되어있다.
화왕산 정상과 분지. 오른쪽에 복원된 동쪽성곽이 보인다.
배바위에서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본다.
억새사이로 길이있다.
억새풀너머 복원된 동쪽성곽이보인다.
길이 사실은 무너진 성곽길이다.
무너진 성곽길이 복원된성곽으로 연결된다.
무너진 성곽모습이다.
복원된 구간으로, 남문으로 이어져있다.
뒤돌아본 성곽.
남문과 동쪽성곽 모습이다.
남문.
현문식같지만 직접오를수는 없고, 옆으로 들어와야한다.
안쪽에서 바라본 남문.
남문 바깥쪽.
남문과 수구.
오목 들어간 부분이 궁금하다.
왜 들어가 있을까?..
남문에서 동문으로 이어진 성곽이다.
뒤돌아 바라본 모습.
남문옆의 용지동천.
동벽이 동문으로 이어진다.
뒤돌아본 남문과 남쪽성곽.
동문은 아주 두텁게 구성되어있다.
동문으로 사람들이 드나든다.
동문. 안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매우 두텁고 큰돌로 이루어져있다.
바깥쪽 성곽.
밖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한번 꺾어져 들어간다.
남문에서 바라본 정상쪽.
성곽이 북쪽으로 올라간다.
뒤돌아본 동문.
배바위에서 내려온 성곽.
북쪽으로 오른다.
복원된구간이 끝나자 억새길이다.
옆으로 나가보니 성곽이다. 무너져있지만 옛모습을 느낄수 있었다.
다시 성곽길로 들어섰다.
성곽길위로 멀리 정상이 보이고...
왼쪽에 용지동천. 망원으로 당긴모습.
이곳은 치성이나, 망대가 있던곳 같았다.
다시 무너진 성곽길이다.
멀리 복원된 남문과 성곽이다.
서쪽절벽. 그곳에 성곽이 있었다니...
이곳에도 망대가 있지 않았을까?
정상이다.
정상가는길에도 성곽 흔적이다.
정상에서 서문으로 가본다.
성곽흔적을 따라간다.
서쪽단애를 따라 성곽흔적이 있는데, 이 절벽같은곳에도 성곽이있었단 얘기다.
서문이다.
거의 파괴되어 흔적만이 남아있다.
정상에서 내려온 성곽과 서문.
배바위까지 이런상태로 연결되어있다.
화왕산성은 남문에서 동문까지 복원되어있지만, 나머지부분도 흔적이 완벽하게 존재한다.
망대로 보이는곳도 있으며, 연못도 남아있고, 남문,동문은 복원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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