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사적 제297호
명 칭 : 몽촌토성(夢村土城)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지
수량/면적 : 441,765㎡
지 정 일 : 1982.07.22
소 재 지 : 서울 송파구 오륜동 88-3
시 대 : 백제
소 유 자 : 국유 및 사유
관 리 자 : 송파구
몽촌토성은 한강으로 유입되는 성내천(城內川) 남쪽에 있으며, 백제가 한강 유역에서 건국·발전했던 시기의 대표적인 토성이다. 성 주변을 살펴보면, 한강 북쪽에 아차산성(阿且山城)과 풍납리토성(風納里土城), 서쪽에 삼성동토성(三成洞土城), 남쪽에 이성산성(二聖山城) 등이 있으며, 서쪽에는 석촌동ㆍ방이동의 백제시대 고분군이 있다. 특히 이웃하고 있는 풍납리토성은 서기 1세기경의 유적으로 추정되고 있어서 두 성이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토성은 해발 45m 내외의 자연구릉을 이용하여 축조된 것에서 경주의 월성(月城)이나 대구의 달성(達城)과 같은 초기의 유형을 엿볼 수 있다. 성 안은 다시 낮은 안부(鞍部)를 낀 구릉이 있어서 낮은 지역은 4개의 구역으로 구분된다.
성은 둘레가 약 2.7㎞이다. 대부분 자연지형을 이용하고 필요에 따라 일부 흙을 쌓거나 경사면을 급하게 깎는 등 인공을 가하였기 때문에 그 형태가 불규칙하다. 대개 동서 최장 540m, 남북 최장 730m의 마름모꼴을 이루고 있으며, 동북쪽 외곽에는 외성(外城)이 약 270m의 직선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토성 최고지점의 고도는 표고 42.9m이며, 대부분의 지점은 표고 30m 이내이다. 북동쪽을 성내천이 휘감아 흘러 자연적 방어선을 이루는 한편, 북쪽의 외곽 경사면과 외성지의 정상부에는 목책(木柵)을 설치하였던 흔적이 나타났고, 동쪽의 외곽 경사면에는 생토를 깎아내어 경사를 급하게 만들고 해자(垓子)를 설치하였던 점으로 보아, 북쪽으로부터의 침략을 대비한 기지 구실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성의 안팎을 드나드는 통로는 9개가 있는데 이들이 예로부터 문터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서북쪽은 북동문터로 자연적인 배수가 되고, 남문·동문도 배수가 되는 곳이다. 성벽은 구릉의 낮아진 안부를 판축(版築)으로 다져 올렸는데, 서북쪽과 동쪽 벽의 바깥쪽에서는 1.8m 간격의 목책 기둥자리가 발견되었으므로, 성벽 위에 목책이 설치되었을 것으로 알려졌다.
성내에서는 주거지(住居址)와 저장용 구덩이·무덤 등의 옛 유구(遺構)가 조사되었다. 많은 유물들이 수습되었는데, 백제 한성시기에 해당하는 것들로 판단되었다. 특히 중국 서진(西晋, 265∼316)의 동전무늬가 찍힌 자기 조각[錢文陶器片]이 발견되어, 축조연대의 상한이 3세기 말경까지 소급될 수 있었다.
성을 축조할 당시 지표면에서 주로 회백색 연질토기 등 삼국시대 전기 유물이 출토될 뿐 삼국시대 후기나 고려시대의 것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유물들은 백제 한성시기에 이 토성이 주요한 거성(居城)의 하나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사용 중심 연대가 4∼5세기였다고 판단되므로, 백제가 고구려의 공격으로 웅진성(熊津城, 공주 공산성)으로 옮아간 475년을 마지막으로 사용이 중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백제 초기의 움집과 대형 저장용 구덩이의 발굴은 백제사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많은 유형의 토기와 무구류(武具類)도 출토되었다.
토기류의 분석에 의하여 이곳은 3세기에서 5세기에 걸쳐 주민이 있었고, 그 뒤 통일신라나 고려 때에는 거의 거주가 없었던 듯하며, 조선시대에 와서 다시 입주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백제 중기의 웅진성이나 후기의 사비성(泗泌城, 부여 부소산성)도 북방의 침략군을 경계하여 강 남쪽에 도성을 구축한 것과 같은 지형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되는 토성이다.
이 성은 그 위치·규모·유물상태 등으로 보아 한성시대 백제의 정치적·군사적·문화적으로 중요성이 높은 성터로 판단되고 있으며, 이웃한 풍납리토성과 함께 백제 초기의 왕도(王都)를 구성하는 성터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북1문에서부터 답사를 시작한다.
두리뭉실한 언덕이 바로 몽촌토성이다.바로 아래에 목책이 있다.
이 목책은 옛날것이 아니라, 요즘것이란다.
당연한일이다. 나무가 여태 견딜리 만무하다.
토성 위에서바라본 목책.
몽촌토성에는 너무 여러가지를 보여주어서, 물론 산보객들에겐 좋겠지만...꽃밭,조각전시장,박물관,거미줄처럼놓인 산책로...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몽촌토성의 제역할에 문제가있지않나하는 생각이다.
깔끔하게 잔디가 정비되어 보기에 좋았다.
반바퀴도니 올림픽공원입구쪽이다.
앞에 방어를위한 해자(垓子)가있다. 마치 연못처럼보인다.
잘가꾸어진 산책로처럼 보이는 몽촌토성길.
해자(垓子)다.
해자(垓子)밖에서 바라본 몽촌토성.
다시 토성길로 올라선다.
토성안쪽에는 이처럼 비포장길을 만들어, 색다른 산책로를 만들었다.
보리밭도 있고...
아주 깔끔한 토성길이다.
토성에 관심없는사람에게도 그만인 산책로다.
올림픽공원 평화의문.
억새밭도 지난다.
길이 여러갈래로 나있어, 토성이 산책로같다.
뒹굴고싶을정도로 잔디가 좋았다.
2,5km정도 걸으니 제자리가 가까와진다.
저 정자는 요즘에 만든것이다.
목책이 또 보인다.
밖에서 본 목책.
몽촌토성의 잔디관리하나는 100점이다.
수령 530년의 은행나무. 조선초기부터 있었단 얘기다.
보잘것없이 싸움만 일삼는 인간들이 얼마나 우스웠을까?...
가끔 사진작가들의 작품에서 볼수있는 장면이다.
정자에서 몽촌토성을 바라보았다.
몽촌토성은 백제의 위례성이라는 학설이 설득력을 갖을정도다.
백제의 위례성은 아직 그 장소가 분명치 않다고한다.
그 역사적인 장소가 바싼땅에 남아있는것 자체가 축복이라고 유흥준교수도 말했지만, 한장소에 너무 많을것을 담아놓아, 자칫 주객이 전도된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조각은 미술관으로, 꽃동산은 식물원으로, 산책은 공원으로...토성은 순수하게 역사의현장으로..이러한 바램이 나만의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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