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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령전 (華寧殿)

메탈 2008. 5. 19. 17:13

종    목 : 사적  제115호 
명    칭 : 화령전(華寧殿) 
분    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제사유적/ 제사터 
수량/면적 : 12,288㎡ 
지 정 일 : 1963.01.21 
소 재 지 : 경기 수원시  장안구 신풍동 92-2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국유,사유
관 리 자 : 수원시

 

조선 제22대 임금이었던 정조(재위 1776∼1800)의 초상화를 모셔놓고, 해마다 제사지내던 건물이다. 23대 임금 순조는 아버지 정조의 지극한 효성을 본받기 위하여 순조 1년(1801)에 수원부의 행궁 옆에 건물을 짓고 화령전이라 하였다.

처음 지어질 당시의 화령전은 정조의 초상화를 모셔놓은 정전인 운한각을 비롯하여, 이안청·재실·전사청·향대청·제기고·외삼문·내삼문·중협문이 있었다. 이 중 남쪽에 있었던 향대청과 제기고 건물은 남아있지 않다. 정전 현판의 글씨는 순조가 직접 쓴 것이다.

이곳에 속하는 건물들은 대부분이 정전인 운한각의 건축규범에 따라 지어졌다. 특히 이안청은 지붕이 있는 복도식으로 정전과 연결이 되어있어, 눈이나 비가 올 때도 젖지 않도록 하였다.

순조는 이곳에서 노인들을 모아놓고 잔치를 베풀기도 하였으며, 직접 정조가 태어난 탄신일과 돌아가신 납향일에 제향을 지내기도 하였다. 제향은 1920년 일본인에 의해 정조의 초상화가 창덕궁으로 옮겨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궁궐에 지어진 다른 영전들과는 달리, 수원에 세워진 화령전은 대칭에 의한 격식과 기능에 따른 영역의 구분이 확보된 대표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몇 채의 사라진 건물을 제외하면 비교적 좋은 상태로 보존되어 당시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정문으로, 외삼문이다.

 

정문을 들어가면 내삼문이있다.

 

내삼문을 들어가면, 운한각과 복도각 그리고 이안청이다.

 

운한각(雲漢閣)

雲漢閣은 화령전의 正殿으로 정조의 어진을 봉안한 건물이다.

운한각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단층 팔작기와지붕으로, 화강석 기단 위에 세워진 익공(翼工)집이다. 

외삼문·내삼문과 일직선을 이루며, 왼쪽에 제사를 준비하던 전사청(殿舍廳)이 있고, 우측 담장 바깥에 풍화당(風化堂)이 있다.

 

정전 편액(正殿扁額)의 <운한각(雲漢閣)> 3자는 순조의 친필이었으나,   순조가 쓴 원래 현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현재는 1975년 화성복원 당시의 박정희 대통령이 쓴 현판이 걸려있다.

 

정조의 어진은 1910년경에 日帝의 强壓으로 서울로 모셨다가 언제인지 잃어버리고 1992년에 새로운 영정을 만들어 봉안하였다.

 

건물은 동향으로 격식이나 부재의 사용이 궁궐의 전각에 못지 않다. 건물 앞에는 제사때 사람들이 모여 설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다. 석축으로 건물의 기초를 마련하여 정면 5칸, 측면 4칸의 20칸 건물을 세웠는데 정면의 측면 1칸을 회랑처럼 빈 공간으로 남겨두어 우천시에 비를 피하도록 하였다. 운한각에는 서북측 모서리부터 5칸의 행각을 마련하였는데 복도각이라 하며 운한각에 보수공사가 있을 경우에 대비하여 御眞을 보관하는 이안청으로 옮겨가는 회랑인 것이다. 移安廳은 정면 3카, 측면 1칸의 대청으로 중앙에 御眞을 임시 보관하도록 하였다.

 

 

내삼문과 뜰. 

 

바닥이 벽돌로 되어있었다.

 

복도각과 이안청.

 

 

 

북측협문으로 이 안을 들어가면 풍화당이다. 

 

 

풍화당(風化堂)은 화령전의 재실로 사용하던 건물로 운한각의 좌측 내곽담장 바깥에 있다. 화령전에 祭祀가 있을 때 헌관이 머무르는 장소를 건물 가운데 큰 대청을 두고 좌우에 온돌방과 한단 높은 툇마루를 두었다.

 

남측협문 밖으로는 제정과 전사청이다.

 

제정은 제사에 쓸 물을 얻는곳이다.

 

 

운한각 우측 내곽담장 바깥에 있었던 전사청(典祀廳)은 화령전에 제사가 있을 때 각종 제사를 준비하던 장소로 香大殿과 연접해 있는 복합건물이었으나 현재 사라진 건물이다. 1999년 기전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하여 건물지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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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령전은 1963년 사적 제115로 지정되었고 현재 원형의 일부가 훼손되어 복원을 추진하고 있으나, 건립기록인 「영건등록(營建騰錄)」이 전해지지 않고, 일제시기인1933년에 한 차례 보수공사가 있었다는 단편적인 사실 외에는 해방 이전의 기록도 거의 찾기 힘든 상황이다. 다만 화령전 이 어떻게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졌는지는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화령전은 순조 1년 4월 29일에 완성되었다. 화령전이 수원에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정조가 얼마나 수원을 사랑하고 아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정조가 돌아가신 이후 정조의 신위는 종묘에 안장되었는데, 따로 수원에 영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순조 1년(1801)1월 6일에 당상관 이상의 대신들이 모여 화령전을 만들 것을 계획하고, 그 달 29일에 좌의정 이시수"관상감 제조 이서구"화성 유수 이만수 등이 상지관을 데리고 화령전의 터를 살펴보았는데, 화성행 궁의 강무당에서 남쪽으로 77보, 낙남헌에서 북쪽으로 79보가 되는 유좌 묘향이 길지라 하여 도면을 그려서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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