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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보신각 (普信閣)

메탈 2008. 5. 17. 08:14

종    목 : 시도기념물  제10호 (종로구) 
명    칭 : 보신각지(普信閣址) 
분    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조경건축/ 누정 
수량/면적 : 2,906.8㎡(1동) 
지 정 일 : 1990.06.18 
소 재 지 : 서울 종로구  종로2가 102번지일대 
소 유 자 : 서울시
관 리 자 : 종로구
상 세 문 의 : 서울특별시 종로구 문화진흥과 02-731-1170 

 

풍수지리에 입각한 서울 즉 한성은 음양오행에 따라 만들어 졌다.

그래서 그 성의 각 대문에는 인(흥인지문), 의(돈의문), 예(숭례문), 지(숙정문, 숙청문)靖(꾀정)자 智자와 뜻이 같다. , 신(보신각)을 두었다.


조선 태조는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고려의 제도를 따라 태조 5년(1396) 청운교 서쪽(지금의 인사동 입구)에 각을 짓고 종을 걸어 종소리에 따라 각 성문을 열고 닫게 하였다. 즉 새벽종은 파루(罷漏)라 하여 오전 4시경에 33천(天)을 뜻하여 33번을 쳤고 저녁종은 인정(人定, 속칭 인경)이라 하여 28수(宿)을 뜻하여 28번을 쳤으며 또 도성 안에 큰 화재가 나도 종을 쳐서 성안 주민에게 알렸다. 이 때의 종루(鐘樓)는 2층 5칸이었다.
태종 13년(1413) 종묘 남로에 5칸의 층루를 세우면서 이 종루를 순금사(巡禁司)의 남쪽이며 광통교의 북쪽인 중부 운종가(지금의 종로 네거리)로 옮겼다.
그 후 세종 22년(1440) 종전에 있었던 종루를 헐고 개구(改構)하였는데 그 이유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종각의 규모를 크게 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 때의 규모는 동서 5칸, 남북 4칸으로 위층에는 종을 달고 누 아래로는 인마(人馬)가 다니게 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 광해군 11년(1619) 4월 누각을 새로 지었는데 숙종 12년(1686) 1월 종각에 불이 나서 그 후 다시 건립하였다.
고종 6년(1869) 종로 1가 일대에 대화재가 발생하여 포전(布廛), 지전(紙廛), 동상전(東床廛) 등과 함께 소실되어 10월에 다시 건립하였으며 고종 32년(1895) 3월 15일 고종이 사액을 내려 ‘보신각(普信閣)’이란 현판을 건 뒤부터 보신각이라 부르고 있다.  이 때의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이었다.
이 종각은 1915년 도로를 보수할 때 원래 있던 위치에서 약간 뒤로 옮겨졌으며 1950년 6·25전쟁으로 파괴되어 1953년 12월 12일 그 위치에서 다시 뒤로 물려 중건되었고 1979년 8월 15일 다시 뒤로 물려 대지를 145평에서 850여 평으로 확장하고 주위에 돌난간을 돌렸으며 정면 5칸, 측면 4칸 연건평 144평의 중층(重層) 누각을 철근 콘크리트조로 재건하고 상층에 종을 걸었다.
보신각 서편 지하 3m에서 지하철 공사를 하다가 발견된 주초석과 장대석(長臺石)은 현재 경복궁 아미산 동쪽에 옮겨 놓았는데 이들의 규모로 보아 종루의 규모도 컸고 다락 밑으로 수레가 다닐 수 있도록 높게 지었던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으로 불타기 전의 유구로 추정된다.

 

 

보신각은 일명 종각이라고도 하며 고종 32년(1895) 보신각이란 사액을 내린데서 이름이 지어졌다.

태조 4년(1395)에 처음 지어진 후 4번이나 불타 없어지고, 8번에 걸쳐 다시 지어졌다. 현재의 건물은 1979년 8월에 서울시에서 지은 것으로, 동서 5칸·남북 5칸의 2층 누각으로 되어있다.

보물 제2호인 보신각종은 조선 세조 14년(1468)에 만들어져 원각사에 있다가, 절이 폐사된 후 광해군 11년(1619)에 현재의 보신각 자리에 옮겨졌다. 보신각종은 오전 4시에 33번, 오후 7시에 28번을 울려 도성의 문을 여닫고 하루의 시각을 알리는 역할을 해왔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몸통에 균열이 생겨 더 이상 종을 칠 수 없게되자, 경복궁 안에 종각을 지어 보관하고 있다. 지금 보신각에 걸려 있는 종은 1985년 국민의 성금에 의하여 새로 만들어 그해 광복절에 처음 타종하였다.


마침 12시 타종식 행사다.

 

 

 

 

 

단청무늬가 무척 화려하다.

 

 

 

보신각종 33번 타종이유

 

이는 '28계 33천' 우주관에서 유래한 것으로 새벽이 열리는 인시(寅時; 오전 4시경)에 33번 타종해 4대문을 열고, 유시(酉時; 오후 10시경)에는 28번 타종해 성문을 닫았다고 한다. 도성주민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도구였다.

특히 파루에 타종하는 횟수 33은 도솔천을 중심으로 하늘이 횡으로 33천으로 벌여져 있다는 사상에서 온것으로, 33천에 사는 사람들은 무병장수하기 때문에 새해를 맞는 사람들도 그들처럼 건강하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33번 타종했다고 한다. 그리고 인정에 타종하는 횟수 28은 동양에서 생각하는 하늘의 별자리 28수(宿)를 상징한다고 전해진다.

 

 

이 두궁녀는 장내 아나운서다.

한국어와 병행하여 영어와 중국어로 안내중이다.

 

 

 

전통악기로 연주도 한다. 

 

 

 

일반인에게, 좋은 우리문화의 모습을 보여준 보신각 타종식 행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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