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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구단 (圜丘壇)

메탈 2008. 5. 7. 15:19

종    목 : 사적  제157호 
명    칭 : 환구단(圜丘壇) 
분    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제사유적/ 제사터 
수량/면적 : 8,661.16㎡ 
지 정 일 : 1967.07.15 
소 재 지 : 서울 중구  소공동 87-1 
시    대 : 대한제국시대
소 유 자 : 국유
관 리 자 : 중구

 

환구단(圜丘壇)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곳이다.

 

우리나라의 제천행사는 농경문화의 형성과 함께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삼국시대부터는 국가적인 제천의례로 시행된 것으로 믿어진다.

고려 성종 2년(983) 정월에 처음 시행되어 설치와 폐지를 계속 되풀이하다가 조선초에 제천의례가 억제되자 폐지되었다. 세조 2년(1456)에는 일시적으로 제도화하여 1457년에 환구단을 설치하고 제사를 드리게 되었다. 그러나 세조 10년(1464)에 실시된 제사를 마지막으로 환구단에서의 제사는 중단되었다. 환구단이 다시 설치된 것은 고종 34년(1897) 조선이 대한제국이라는 황제국으로 이름을 바꾸고,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부터이다.

 

현재 환구단의 터에는 신위판을 모시는 3층 팔각건물인 황궁우와 석고 3개가 남아있다. 황궁우는 1899년에 만들어진 3층의 8각 건물이며, 석고는 악기를 상징하는 듯한 모습으로 화려한 용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1913년 일제에 의해 환구단은 헐리고 그 터에는 지금의 조선호텔이 들어서게 되었다. - 문화재청

 

환구단은 주위에 큰건물로 가려져있어, 조선호텔까지 들어가지 않으면 볼수가 없다.

환구단은 잘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모르는 사람은 그저 조선호텔에서 만들어 놓은 건물인 줄로만 알고 있다.

더우기, 황궁우가 마치 조선호텔의 정자처럼 놓여져있어 더욱 그렇다.

 

환구단 서문옆에는 석고(石鼓)가 놓여져있다.

 

 

 

석고는 광무(光武) 6년(1902) 고종(高宗)황제의 즉위 4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조형물이다. 3개의 돌북은 하늘에 제사를 드릴 때 사용하는 악기를 형상화한 것으로 몸통에 용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이 용무늬는 조선조 말기의 조각을 이해할 좋은 자료로서 당시 최고의 조각 중 하나로 평가된다.

 

석고와 황궁우.

 

서문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우측에 정문인 남문과 좌측에 황궁우가 보인다.

 

주위에 높은건물 때문에 밖에서는 황궁우를 볼수가 없다.

소공동에서 바라보면 롯데호텔과 조선호텔의 모습만 보인다.

 

그 안에 호텔의 부속건물처럼 보이는 황궁우다.

 

정문에 해당되는 남문이다.

 

적어도 여기서만큼은 조선호텔이 흉물스럽다.

 

 

남문 밖의모습이다.

 

 

 

 

 

 

오른쪽으로 돌아가니 동문이다.

 

정면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보자.

 

해태상이 많이 장식되어있다.

 

단청이 무척 화려하다.

 

 

 

아쉽게도 안으로 들어갈수가 없었다.

 

환구단의 원래모습이다.

일본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고, 지금은 황궁우와 석고만이 그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환구단은 화강암으로 된 3층의 단이며, 중앙 상부는 황색으로 칠한 원추형(圓錐形)의 지붕이었다. 환구단이 조성된 2년 후인 1899년 원구의 북쪽에 황궁우(皇穹宇)를 건립하고, 신위판(神位版)을 모시면서 태조를 추존하여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로 삼았다. 1913년 4월에 조선총독부가 환구단을 헐고 그 자리에 건평 580평의 총독부 철도조선호텔을 착공, 이듬해 준공하였다. 이 건물은 1968년에 헐리고 지금의 조선호텔 건물로 대치되었다.

 

야경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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