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궁(宮),당(堂),루(樓),정(亭)

봉황각 (鳳凰閣)

메탈 2010. 10. 22. 20:00

종    목 : 시도유형문화재 제2호 (강북구) 
명    칭 : 봉황각(鳳凰閣) 
분    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조경건축/ 누정 
수량/면적 : 1동 
지 정 일 : 1969.09.18 
소 재 지 : 서울 강북구  우이동 254 
시    대 : 일제강점기
소 유 자 : 천도교
관 리 자 : 천도교
상 세 문 의 : 서울특별시 강북구 문화공보과 02-901-6412 

 

1912년 의암 손병희 선생이 세운 것이다.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찾기 위해 천도교 지도자를 훈련시킨 곳으로 의창수도원이라고도 부른다. 봉황각이란 이름은 천도교 교조 최제우가 남긴 시에 자주 나오는 ‘봉황’이라는 낱말을 딴 것이다. 현재 걸려있는 현판은 오세창이 썼다.

 

손병희 선생은 1910년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자 천도교의 신앙생활을 심어주는 한편, 지도자들에게 역사의식을 심어주는 수련장으로 이 집을 지었다. 1919년 3·1운동의 구상도 이곳에서 했으며, 이곳을 거쳐간 지도자들이 3·1운동의 주체가 되었다.

봉황각과 부속 건물에는 그 당시의 유물이 남아있고 이곳 앞쪽 약 50m 지점에 손병희 선생의 묘소가 있다. - 문화재청

 

북힌신 도선사 입구에 자리잡은 천도교 의창수도원

그 안에 봉황각이다 

 

봉황각 건물은 을(乙)자형으로 앞에 있는 집은 5칸 규모로 중앙에 대청을 두고, 좌우에 누마루와 방을 배치하였다. 뒤에는 방 2칸을 두었다. 봉황각 현판의 봉(鳳)자, 황(凰)자, 각(閣)자는 각각 중국 명필 안진경(顔眞卿), 회소(懷素), 미불의 필적인데 한암(閒菴)오세창(吳世昌)이 모사하였다.
중앙총부는 포덕97년에 봉황각을 '의창수도원(義彰修道院)'이라 이름 붙여 수도원으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의창」이란 이곳에서 교역자의 연성수련과 독립정신을 함양했던 의암성사의 정신을 현창(顯券)한다는 뜻으로 붙여진 명칭이다.

 

 

 

 

 

 

 

 

 

 

 

현재 봉황각 경내에는 고색창연한 빨간 벽들로 된 2층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천도교중앙총부 건물이었다. 바로크양식의 이 건물은 서울시 종로구 경운동 현재의 수운회관이 있던 자리에 중앙대교당과 같이 지어졌으나 1969년 수운회관이 건립되면서 우이동으로 옮겨졌다. 건물이 갖는 상징성 때문에 헐지 않고 이전 복원을 한 것이다.
이 건물은 포덕59(1918)년)12월 1일 중앙대교당과같이 기공식을 했으나 3 ·1운동으로 도중에 공사가 중단됐다가 1922년4월에야 비로소 낙성식을 할 수 있었다. 천도교중앙총부와 중앙대교당은 3·1운동 때 필요한 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일제의 감시를 피해서 중앙대교당을 짓겠다는 명목으로 모금한 성금중 일부로 건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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