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당포성(漣川堂浦城)
종 목 : 사적 제468호
명 칭 : 연천당포성(漣川堂浦城)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
수량/면적 : 35,174㎡
지 정 일 : 2006.01.02
소 재 지 : 경기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 778 등
시 대 : 삼국시대
소 유 자 : 공유, 사유
관 리 자 : 연천군(연천군수)
조선시대 각종 지리지에 당포성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으나 허목의 『기언별집(記言別集)』에 “마전 앞의 언덕 강벽 위에 옛 진루가 있었는데 그 위에 총사(叢祠)가 있고, 그 앞의 나루를 당포라고 한다. 큰 우물이 흘러 진로가 소통된다.”라고 당포성에 대한 기록이 전한다. 그 후 1995년부터 2003년 사이 지표조사 및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면서 고구려토기 일부가 발견되는 등 고구려를 중심으로 한 삼국시대 성으로 추측된다.
당포성은 현재 전곡읍의 서북쪽 임진강 북안과 그 지류에 형성된 천연 절벽을 이용하여 축조한 평지성이다. 서쪽 부분이 뾰족한 모양인 삼각형 형태로 이러한 구조 때문에 가로막아 쌓은 동쪽 성벽은 매우 높게 구축되어 있으며 단애지대를 따라 구축된 남 · 북 성벽은 낮게 축조되었다. 성의 전체적인 형태가 주변에 위치한 은대리성이나 호로고루와 매우 흡사하며 특히 축조방식은 호로고루와 매우 밀접하다. 서쪽 끝에서 동벽까지의 길이가 200m이며, 동벽의 길이는 50m, 전체둘레는 약 450m정도이다. 현재 잔존 성벽은 동벽 6m, 단면 기저부 39m정도이며 성내부로의 출입 때문에 동벽의 남단은 성벽이 일부 파괴되어 출입로가 만들어졌고, 북단의 경우에는 참호 건설로 인하여 파괴되어 있는 상태이다.
연천당포성은 연천호로고루, 연천은대리성과 함께 임진강과 한탄강이 지류와 만나 형성하는 삼각형의 대지위에 조성된 독특한 강안평지성(江岸平地城)으로 임진강이 국경하천역할을 했던 삼국시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학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귀중한 문화유적이다. - 문화재청
하지만 막상 가보면 다 덮어놔서, 성곽의 모습을 보기가 힘들다.
아주 일부만 노출되어 있다.
옆쪽모습.
위에는 기와조각이 있는걸 봐서 건물이 있었단 얘기다.
안내판을 보니 성곽의 모습이 잘 남아있는데, 이러한 문화재가 역사학자나 일부인만을 위해 존재하지는 않을터인데, 이처럼 조사후 덮어버리면 어쩌란 얘긴지...
하늘에서 본 당포성.
하지만 군 기지화로 많이 훼손된 상태다.
탱크까지 있고...
주위는 온통 군 기지였다.
대전리산성(매초산성)
매초성은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 대전리 산성(137m)으로 추정된다. 당나라의 힘을 빌어 통일한 신라는 당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서 필사의 노력을 한다. 문무왕 15년(675년)신라군은 말갈병과 당군의 20만명을 매초성 에서 격파함으로써 당의 육로 공격을 차단하게 된다. 당시에 매초성은 한탄강변의 작은 산으로 한탄강, 전곡읍를 내려다 볼수 있는 일종의 감제고지로 당의 진격로를 차단할 수 있는 요지에 해당했다. 신라는 매초성에서의 승리와 기벌포(금강하구)에서의 승리로 당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함으로써 진정한 통일전쟁(완전한 한반도는 아니지만)에서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게 되었다.
건물이 있음직한 정상부.
지도와는 달리 성곽의 모습은 거의 없었다.
군 훈련모습.
옛날이나 지금이나 요충지는 같은모양이다.
수철성(水鐵城)
수철성은 연천군 전곡읍 양원리 해발 397m 봉의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589m인 마차산의 산록이 남북으로 길게 발달하면서 서쪽으로 감악산 산록사이에 협곡을 형성하고 북단에 돌출된 봉우리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마차산과 감악산 사이의 협곡을 따라 형성된 도로는 양주지역에서 적성이나 연천방면으로 가는 주요한 교통로가 되었다. 수철성은 이 교통로를 감제(瞰制)하기 위하여 축성한 것으로 보인다. 수철성이 있는 해발 397m 봉은 정상부가 평탄하게 조성되어 있으며, 성은 이 평탄한 정상부의 외곽을 돌아가면서 쌓은 전형적인 테뫼식 석축산성이다. 전체적인 평면형태는 북동-남서향을 장축으로 하는 장타원형이다.
산성의 전체 둘레는 250m 정도이며 동남쪽에는 70m 가량의 성벽이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현존하는 성벽의 가장 높은 곳은 4m 정도이다. 반면 북서쪽부분은 성벽이 대부분 무너진 상태여서 면석이 남아 있는 부분은 없다. 수철성의 동북쪽 회절하는 부분은 마치 치성을 쌓듯이 돌출시켜 둥글게 쌓았는데, 1.8m 정도의 큰 자연석을 기단석으로 하여 그 위에 납작한 할석으로 정교하게 쌓았다. 현재 남아 있는 부분은 22단 정도이다.
성 내부는 평탄하고 곳곳에 참호가 구축되어 있으며, 남쪽 정상부에는 단이 지면서 돌출되어 있어 당초 장대 등의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은 헬기장이 조성되어 있다. 성내에서 기와편은 전혀 수습되지 않으며, 토기편 중에는 회색과 회청색의 경질토기류가 많고 원권문이 찍혀 있는 인화문토기 뚜껑과 고배대각, 완 등 신라토기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수철성은 전형적인 삼국시대의 축성기법을 보여주고 있으며, 둘레는 300m가 안 되는 소규모의 성으로 칠중성의 보조성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인터넷
동쪽면으로 옹성형태를 보인다.
암벽위에 잘 쌓여진 성곽이다. 약 1500년정도의 역사다.
북쪽으로 휘어지는 구간.
남쪽구간.
속쌓기 모습.
남쪽면으로 무너진 곳도 있지만, 이렇듯 잘 남은구간도 있었다.
원래 군부대가 주둔한곳이라 다른쪽은 훼손이 심해 남은것이 없는반면, 그나마 남쪽면이나마 이정도 남아있어 다행이었다.
서쪽으로 이어지는 남쪽 끝부분.
남쪽면..
아미성(峨嵋城)
파주 적성면 적암리와 연천군 전곡읍 눌목리의 경계지점인 해발 260m의 봉우리 정상부에 쌓은 포곡형의 석축산성이다. 아미성은 368번 지방도를 사이에 두고 수철성과 마주하고 있어 이곳이 삼국시대의 중요한 교통로였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성은 북동 - 남서향을 장축으로 하는 장타원형으로서 동쪽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는 반면 서쪽과 북쪽부분은 대체로 무너진 상태이다. 전체 둘레는 290m 정도이다. 성내부에는 넓고 평탄한 지형이 있고, 이곳에 구축된 참호 속에소는 많은 양의 와편이 발견되고 있다. 유물은 대부분 당초문을 양각하거나 음각한 수키와 격자문을 타날한 회색이나 적갈색의 연질와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한편 성의 정상부분과 동쪽부분에서는 고구려토기편과 승문이 타날된 고구려와 편이 발견되고 있다.
감악산에서 북쪽으로 뻗어내린 줄기가 말단부에서 형성된 해발 260m의 봉우리 정상부에 쌓은 포곡형의 석축산성으로 남북으로 길게 뻗은 감악산의 줄기와 동쪽으로 마차산 줄기의 사이에 좁고 평탄한 협곡을 이루고 있어 감악산 서로보다 평탄한 교통로를 이루고 있으며 아미성은 이 교통로를 통제하기에 매우 유리한 지점에 있다. 특히 정상부에서는 남쪽방면으로의 시계가 매우 양호해서 계곡을 따라 공격해오는 적을 제어하기에 매우 용이한 지점이다. 아미성은 지역주민들 사이에서는 할미성으로로도 불리고 있다. 이 성의 초축에 대한 문헌 기록은 찾을 수 없으나 조선 초기의 세종실록지리지를 제외한 이후의 대부분의 지리에서는 나타나 있다.
길하나를 사이에두고 수찰성과 마주보고있는 아미성.
다른곳은 전부 훼손되어있고, 남쪽만 일부 남아있다.
드러난 속쌓기의 모습.
이곳은 남쪽면이다. 아주 일부만 남아있는데, 일부는 훼손되어있었다.
군인들이 교통호를 만들어버린 아미성.
경기북부의 산성들은 현재도 군 요충지여서 그런지 많이 훼손된 상태다.
남아있는것 만이라도 잘 보존했으면 하는 바램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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