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산성(山城),읍성(邑城)

동래읍성지 (東萊邑城址)

메탈 2009. 2. 19. 16:32

종    목 : 시도기념물 제5호 (동래구) 
명    칭 : 동래읍성지(東萊邑城址)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지 
수량/면적 : 103,647㎡ 
지 정 일 : 1972.06.26 
소 재 지 : 부산 동래구  복천,안락,명륜,칠산,명장동일대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부산광역시
관 리 자 : 동래구
상 세 문 의 : 부산광역시 동래구 문화공보과 051-550-4085

 

동래읍성은 마안산을 거쳐 구릉지와 동래 시가지의 평탄한 지역을 포함하여 쌓은 읍성으로,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 현종 12년(1021)에 동래읍성을 수리하였으며, 그 뒤 우왕 13년(1387)에 왜구를 막기 위해 동래성을 크게 고쳐 쌓아 둘레가 3090자, 높이 13자라고 전한다.

 

왜적 방어의 제1관문인 이 성은 조선시대에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부산 진성과 함께 왜적의 1차 공격목표가 되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임진왜란 이후 방치되었던 것을 조선 영조 7년(1731)에 다시 증축하여 당시 규모가 둘레 1729자였고, 4곳에 문을 만들었다.

동문을 지희루, 서문을 심성루, 남문을 무우루, 암문(적 또는 상대편이 알 수 없게 작게 꾸민 성문)을 은일루라 하였다. 남문에는 양 날개가 달린 듯 좌우로 뻗은 성벽인 익성이 있고, 나머지 3개의 문에는 성문을 보호하고 성을 튼튼히 지키기 위해, 성문밖으로 원형이나 방형으로 쌓은 옹성을 두어 적으로부터 성을 방어하고 있다.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평지의 성벽은 대부분 철거되었고, 마안산을 중심으로 성곽의 모습만 겨우 남아있다. 현재 북문과 옹성, 동장대, 서장대 등이 부분적으로 복원되어고 있다.

 

동래읍성은 부산지하철 타고가다가 동래역에서도 잘 보인다.

걸어서 십여분이면 서쪽성곽에 닿을수 있다.  큰길을 따라가니 문이나온다. 북문이다.

 

북문옆에는 고분군이 보이고...

 

 

북문 오른쪽으로 동장대다.

 

북문 안쪽이 되겠다.

그러니까 읍성남쪽은 시가지 조성으로 모두 헐렸고, 시내에서 읍성안쪽을지나 북문으로 올라온것이다.

 

지도를 보니 맞는데...답사치고는 잘못온것이 되겠다.

이렇게 중간으로 올라오면, 어느 한쪽을 갔다가 다시와야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여지도다.  충렬사가 두개나되고, 향교위치도 지금과 다름을 알수가있다.

 

1872년 지방도에는 좀더 자세하다.

 

북문안쪽은 평거식, 바깥쪽은 홍예식 문이다.

 

북문 바깥쪽으로, 옹성으로 둘러져있다.

 

동장대쪽 성곽.

 

옹성.

 

서장때쪽 성곽.

 

하단만 옛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복원된것임을 알수가 있다.

 

다시 안으로 들어가 옹성으로 올라가본다.

 

북문 옹성이다.

 

옹성에서 바라본 북문.

 

서장대쪽은 나중에 보기로하고...

 

멀리 동장대다.

 

성곽을 따라 북장대로 오른다.

 

북장대로 오르며 돌아본 북문.

뒤의 기와가 동래읍성 역사관이다. 동래읍성 모형이 있는곳이다.

 

 

언덕을 오르자 치성이다.

 

치성을 지나자 성곽은 끝난다.

 

여기부터 성곽의 흔적은 없었다.

북장대를 계단으로 오른다.

 

북장대.

 

 

북장대에서 보이는 고분군.

 

동장대로 향한다. 

 

동장대로 가기위해 내려간다.

 

소나무 숲을 지나자...

 

인생문이다. 앞쪽은 화강암. 뒤쪽은 벽돌로 되어있었다.

 

인생문 옹성.

 

옹성에서 바라본 인생문.

 

차도와 연결되니 이상한 모양이 되었다.

 

 

 

성곽은 없는데..성곽흔적을 알리는것 같다.

 

아래로 내려서 본 인생문.

 

안쪽모습.

 

 

동장대로 향한다.

 

성곽의 흔적은 없다.

 

이런 돌만이 옛 동래읍성지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동장대를 가려면 충열사에서 올라야한다. 철조망이 쳐져있기때문이다.

마침 충열사에서 나오는 방송을 들었다.

5시 관람마감이란다...현재 4시 50분. 충열사 입구는 한참 아래다. 동장대는 위에있고...

 

동장대는 포기했고...충열사 담장을 끼고 아래로 내려간다.

 

택시를 타고 다시 북문으로 향했다.

충열사에서 북문은 걷기에는 좀 멀다. 북문에서 역사관을 둘러보았다.

마침 동래읍성 모형이있어 알기가 쉬웠다. 동장대모습.

 

북문과 양쪽의 치성.

 

가운데왼쪽이 북문이고, 그 위가 북장대. 아래에 서장대가 보이고...북장대에서 인생문 지나 동장대다.

 

지금은 시가지로 변한 남문과 마을.

 

 

다시 북문에서 출발이다.

 

멀리 동장대.

 

잘 복원된 성곽안쪽을 따라간다.

 

뒤 돌아본 북문. 봉우리에 북장대.

 

치성있는곳인데, 여기부터는 여장이 없다.

 

그 위로 또하나의 치성.

 

 

저기 치성에서 아래로 내려간다.

 

복구 안된구간이다.

 

아래로 내려섰다.

 

이것이 동래읍성의 옛모습이다.

하단부만 남아있었다.

 

 

이곳도 치성이있던 자리같다.

 

옛성곽위에 북원한 성곽이 이질감을 느낄정도다.

하지만 동래읍성복원에 힘쓴 관계자의 수고도 함께 느낄수 있었다.

 

서장대가 보이고...

 

더 아래에 치성이다.

 

성곽 안으로 들어왔다.

 

 

서장대.

 

 

치성.

 

치성이 또 하나보이고...문이 보인다.

 

 

치성을 지나자 성곽이 아파트단지쪽으로 급경사를 이룬다.

 

문 밖으로 나가본다.

 

 

 

너무 깨끗해 옛스러움이 없는것도 아쉽지만..이건 말이 복원이지 이정도면 새로만든 성이다.

 

 

바깥쪽.

 

안쪽.

 

성곽이 끝난부분. 

 

그 아래에는 발굴이 한창 진행중이다.

 

 

동래읍성은, 기존의 성곽은 거의 남아있지를 않았다. 

남아있는 부분도 밑의 기단부분뿐, 그리고 복원된 성곽도 서장대부근에서 북장대 오르기 직전까지 극히 일부분이었고..그나마 서장대,북장대,동장대..그리고 북문과 인생문이 전부였다.

 

동래읍성은 이미 시가지 조성이 되어있으므로 복원이 쉽지 않을것이다.

하지만 복원계확을 보면 아직도 많이 남아있던데, 관계당국에 격려를 하는 바이다.

임진왜란의 아픈역사를 가지고있는 동래읍성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고, 또한 산 역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