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사적 제57호
명 칭 : 남한산성(南漢山城)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
수량/면적 : 528459.47㎡
지 정 일 : 1963.01.21
소 재 지 : 경기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산1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국유
관 리 자 : 광주시
남한산성이 현재의 모습으로 대대적인 개수를 본 것은광해군 13년(1621) 후금의 침입을 막고자 석성으로 개축키 시작하였으나 준공치 못하고, 후금의 위협이 고조되고 이괄의 난을 겪고 난 1624년(인조 2년)이다. 인조는 총융사 이서에게 축성할 것을 명하여, 2년 뒤에 둘레 6,297보, 여장 1,897개, 옹성 3개, 성량 115개, 문 4개, 암문 16개, 우물 80개, 샘 45개등을 만들고 광주읍의 치소를 산성 내로 옮겼다. 이때의 공사에는 벽암 각성대사를 도총섭으로 삼아 팔도의 승군을 사역하였으며, 보호를 위하여 장경사를 비롯한 7개의 사찰이 새로 건립되었으나, 장경사만이 현존한다. 그 뒤 순조때에 이르기까지 각종의 시설이 정비되어, 우리 나라 산성 가운데 시설을 완비한 것으로 손꼽히고 있다.
병지호란 때 왕이 이곳으로 피신하였는데, 이때 수어사인 이시백은 서성을, 총융대장 이서는 북성, 호위대장 구굉은 남성, 도감대장 신경진은 동성 망월대, 원두표는 북문을 지켰다. 그러나 강화가 함락되고 양식이 부족하여 인조는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삼전도수항단 으로 나가 항복하였으나, 외침에 의하여 정복당한 적이 없는 성이다. 그 뒤 계속적인 수축을 하여 경영되었다.
서울에서 동남쪽 24km, 성남시에서 북동쪽으로 6km 떨어져 있는 남한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길이는 9.05km, 높이는 7.3m이다. 2천여 년 전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 온조 때 쌓은 토성이 있으나, 이를 신라 문무왕 때 다시 쌓아 '주장성'을 만들고, 그 옛터를 활용하여 후대에도 여러 번 고쳐 쌓다가, 조선 광해군(1621년) 때 본격적으로 축성했다고 한다.
광해군 당시에는 9개의 절과 성문, 망루가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장경사와 서장대만이 남아있다. 등산을 겸한 관광은 봄, 가을에는 성남시를 거치는 남문길이 좋고, 여름에는 시원한 계곡을 끼고 있는 동문길이 좋다.
지난가을에는 동문에서 남문쪽으로 답사했었으니, 이번에는 반대로 동문에서 북문쪽으로 가본다.
여장의 모습으로, 벽돌을 이용한것이 새롭다.
벽돌을 이용한 성곽은, 수원화성과 남한산성 뿐이다.
대포를 설치할수 있게끔, 포대도 있는것이 다른성곽과 차이를 가졌다.
암문이다.
문이있던 흔적이다.
암문 밖의모습으로 암문답게 문이 작았다.
옆에 수문도 보이고...
안쪽에서 바라본 수문이다.
소나무길로 성곽이이어진다.
다시 암문이다.
이 문을 나서니 장경사신지옹성이다.
둥글게 이어진 옹성으로 대포 2문이 놓일수있게끔 되어있었다.
암문이있는 본 성곽모습으로 조선초기의 성곽형태를 보인다.
다시 성곽을 따라간다.
언덕을 올라가니 남한산성 군포지(軍鋪址)다. 정면3칸,측면 1칸으로 되어있다.
군포지는 성을 지키는 초소건물로, 125개가 있었으나 지금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고한다.
그 옆에는 동장대지(東將臺址)다.
동장대지에는 옛모습 그대로의 여장이 보존되어있었다.
동장대지와 여장.
동장대는 동쪽 내성의 가장 높은 곳, 즉 한봉외성으로 나가는 암문의 우측 언덕에 있는 건물 터로 해발 501m 지점에 위치한다.
동장대는 인조 2년(1624) 산성수축시 동장대가 설치되고 누각이 함께 건축되었다. 이곳에는 동서 21m, 남북 17m 정도 규모의 평탄지가 있으며 중앙에는 4개의 초석이 남아 있다.
장대의 외곽에는 높이 350cm 정도의 석축이 쌓여 있다. 수어청의 5영 중 전영장과 좌영장이 배치되어 진을 치고 휘하 장졸을 지휘하던 곳이다.
건물 지에는 와편과 잡석이 흩어져 있으며 주변에 비교적 높이 쌓은 석축이 양호한 상태로 남아 았다. 이곳은 숙종 때 외성이 확장되면서 외도장대와 함께 성곽의 동쪽에서 가장 높아 성곽 북쪽과 동쪽을 한눈에 감지 할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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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성곽이 이어진다.
남한산성의 지도로, 동문에서 시계 반대방향으로 가고있는중이다.
조선시대 해동지도.
남쪽의 포대는 군시설이 들어가 있어 가볼수가 없고, 나머지는 현재와 거의 같다.
동장대지 바로옆의 암문이다.
다른암문보다 정교하고 규모도 컸다.
암문 밖의모습이다.
계속 성곽을 따라간다.
급히내리막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성곽도 계단식이다.
내리막끝에는 다시 군포지와 수문, 암문이 있었다.
그야말로 암문이었다.
좁고 길었으며...
홍예문도 거칠게 다듬어져 있었다.
사람키 정도의 암문과 옆의수문.
다시 성곽위로 올라와 소나무길로 걷는다.
이런 곡선이 과연 다른나라에도 있을까?
지나가던 사람들이 쌓아올린것일텐데 마무리가 대단히 정교하다.
고개를 넘자 성곽의 선이 멋지다.
저 멀리 연주봉 옹성이다.
뒤돌아 본 성곽.
북문으로 향한다.
북문이다.
안쪽모습.
북문 밖의 모습으로, 불규칙한 돌이 틈새없이 꽉 짜여져있는것이 신기하다.
북문을 뒤로하고 다시 성곽을 따라간다.
북장대지가 보인다.,
북장대지(北장將臺址)다.
북장대는 북문에서 서북쪽 245m 거리의 해발 405m 지점에 위치한며, 연주봉과 성내를 연결하는 암문의 우측에 있었다. 북장대는 인조 2년(1624) 남한산성 수축시에 단층누각이 함께 지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수어청에 소속된 5영 중 중영장이 배치되어 진을 치고 휘하 장졸을 지휘하던 곳이다.
북장대는 18세기 초에 붕괴되었다
여기부터는 길이 아주좋다.
서문,남문까지 산책로가 되어있었다. 오른쪽 끝에 연주봉 옹성이보인다.
성곽길을 따라가다가, 연주봉 옹성쪽으로 나있는길을 올라간다.
뒤돌아보니 남한산성 성곽이 실처럼 뻗어있다.
연주봉으로가는 암문이다.
암문위에서 연주봉가는길이 보인다.
밖에서 본 암문. 매우 작았다.
암문있는곳이 치성의 형태를 띠는데 두께가 없다.
이런것은 남문근처에서도 발견된다.
치성치고는 너무 얇다. 아마 성곽이 이어져있었는데, 복구과정에서 생략한것은 아닐까?
연주봉 옹성.
대포 1문을 설치할수가 있다.
산불감시초소 넘어로 하남시다.
산성에서 옹성까지 성곽이 길게 뻗어있다.
연주봉옹성 밖의모습.
다시 암문에서 성곽을 따라간다.
이윽고 서문이다.
안쪽모습으로, 다른문에비하여 좀 작은느낌이다.
밖에서 본 서문.
문 내부는 벽돌로 마감되어있었다.
다시 성곽을 따라간다.
뒤돌아본 모습으로,구불구불...한국의 곡선미라 할수있다.
수어장대로 이어진다.
수어장대로 들어가는 문.
수어장대는 남한산성의 서쪽 주봉인 청량산 정상부에 세워져 있으며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건물은 남한산성의 지휘 및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에서 지어진 누각이다. 성내에 현존하는 건물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며, 2층 누각과 건물의 왼쪽에 2동의 사당인 청량당으로 이루어졌다. 이 건물은 선조 28년 남한산성 축성 당시 동남북의 3개 장대와 함께 만들어졌으며 유일하게 현존한다.
2층누각의 현판 - 무망루 다.
수어장대 앞에는 암문이있다.
밖에서 본 암문모습. 이것도 매우 작았다.
다시 성곽을 따라간다.
길게 길게 영춘정으로 뻗어있다.
성남시가 한눈에 보이고...
고개위에 영춘정이다.
다시 성곽이 고개넘어 남문으로 이어진다.
고개넘어 성곽위의 여장이 안쪽으로 약간기울어져있었다.
손봐야 할것 같다.
바로밑에 남문이있고...그너머로 성곽이 이어진다.
남문이다.
안쪽에 지화문이란 현판이 유일하게 달려있다.
선정비들도 늘어서있고...
밖의모습.
남문을 뒤로하고, 다시 고개를 오른다.
담쟁이와 성곽이 잘도 어울리는것 같다.
고개를 넘으니, 제1 옹성암문이다.
안쪽모습으로 밖의모습보다 균형이 잘 잡혀있다.
밖의모습으로 홍예문이 찌그러져 보인다.
적에게 잘보일 필요 없어서일까? 아니면 적을 조롱하려고?
치성의 흔적이다. 원래는 제1 남옹성이있는자리인데..복원과정에서 생략된것같다.
밖의성곽이 아주 깨끗하다.
복원된곳의 돌색깔만 틀릴뿐..상태는 매우 좋았다.
다시 성곽위를 걷는다.
제2 옹성암문이다.
안쪽모습.
밖의모습이고...
원래는 제2 남옹성이 있어야하는데, 복원이 안됐다.
대신 옆에 커다란 치성이 서있다.
대단히 커다란 치성이다.
그 뒤에 남장대지다.
남장대는 남한산성 남쪽 제2옹성의 바로 안쪽에 있었던 장대로 주변 지형을 보더라고 장대가 위치할 입지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수어청에 소속된 5영 중 후영장이 배치되어 진을 치고 휘하 장졸을 지휘하던 곳이다. 장대 위에는 1788년 부윤 이태영이 세운 타운루가 있었으나, 지금은 둥굴게 잘 다듬어진 21개의 주춧돌만 남아있다.
다시 성곽을 따라간다.
또다시 암문이다.
밖의모습으로 문크기가 사람키정도로 작았다.
바깥쪽은 성곽이 깨끗하게 있었다.
다시 올라와 가다보니 복원이 안된구간이다. 여장이 많이 부서져있다.
또다시 암문부근이다.
여장은 부서져있지만 성곽상태는 좋았다.
암문으로 그 뒤쪽이 무너져있어 내려가본다.
암문인데 굳게 닫혀있다.
무너진곳으로 내려가 보았다.
성곽상태는 매우 양호했다.
암문 밖의 모습.
복구하지 않아도 되겠다. 복구대신 보호가 필요하다.
밑으로 가다보니 다시 허물어진곳이있어 올라갔다.
여기부터는 깨끗하게 복원되어있엇다.
복원된 산성길을 따라간다.
드디어 출발점 동문이 보인다.
동문쪽으로 내려가는데, 문이하나 보인다.
시구문이다.
시구문 안쪽모습.
시구문 밖의모습으로..기독교인들을 처형하고 버린곳이란다.
그옆에 수문이있고...
이렇게 남한산성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자동차도로로 인하여, 성곽이 끝나는 부분이다.
다시 길건너 동문을 바라보며, 남한산성 답사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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