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산성(山城),읍성(邑城)

충주 장미산성 (薔薇山城)

메탈 2008. 5. 3. 08:37

종    목 : 사적  제400호 
명    칭 : 충주장미산성(忠州薔薇山城)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 
수량/면적 : 472,485㎡ 
지 정 일 : 1997.11.11 
소 재 지 : 충북 충주시  가금면 장천리 산77-1외 
시    대 : 고구려
소 유 자 : 국유,사유
관 리 자 : 충주시

 

충주시 가금면에 있는 장미산의 능선을 따라 둘러 쌓은 둘레 약 2.9㎞의 삼국시대 산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14권에 보면 ‘하천 서쪽 28리에 옛 석성이 있다’라는 기록과 『대동지지』에 ‘장미산의 옛 성의 터가 남아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1992년 조사결과 성 안에서 발견된 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들을 통해 백제·고구려·신라가 차례로 이 성을 점령, 경영하였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북쪽에 있는 절인 봉학사 지역 일부를 빼고는 성벽이 원래 모습대로 남아 있다. 성벽은 돌을 대강 다듬어 직사각형으로 쌓았는데, 서쪽과 서남쪽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남쪽의 대림산성과 강 건너편 탄금대의 토성, 충주산성과 서로를 보호하며 도왔을 것으로 보인다.

파주의 오두산성(사적 제351호)과 지형조건이 비슷해 성을 쌓은 시대나 배경 등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유적이다.

 

한달전 장미산성을 답사했을때는 북면 복원된곳만 보아서인지,규모가 작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남쪽면에도 복원안된성곽이 남아있는것을 알았다.

좀더 세심하게 사전조사를 했어야 했는데..

다시 봉학사로 오르는 외길을 올라간다.

 

깔끔히 복원된 약 200m정도의 북쪽성곽이다.

 

 

봉학사는 아주작은 사찰이었다.

 

 

이 돌은 투석용 몽돌무지일 것이다.

 

깨끗하게 이어져있다.

 

성곽이 끝나는 부분이다.

 

여기부터 교통호같은것이 눈에 띄는데, 옛날에 쌓은것 같지는 않고...

돌은 성곽돌이다.

  

 

집에와서 충주시청에 문의를 하니, 예비군들이 쌓은것이란다.

 

교통호가 100여m 이어지더니 그이상은 흔적을 찾을수 없었다. 

 

다시 능선으로 올라 반대편으로 갔다.

지난번엔 여기까지만 답사했었다.

 

헬기장을 두개지나, 더가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다고 하였다.

 

두번째 헬기장을 지나고...

 

오솔길도 지나고...

 

산불감시초소옆에 장미산성안내판이다. 

 

아래를 보니, 천년도 더지난 삼국시대 성곽이 보였다.

이렇게 꼭꼭 숨어있으니 지난번처럼 모를수밖에...

 

상단은 무너졌지만, 밑부분은 복원된것처럼 깨끗했다.

 

 

아래로 계속 이어진다.

 

 

그이상은 무너져 겨우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다시 거슬러 올라간다.

 

산성,성곽연구가에겐 장미산성이 더없이 좋은 자료가 아닐까 생각한다.

 

 

산성이 원을 그리며 돌아가더니..

 

그만 무너져 버렸다.

약 300-400m정도 남아있는 남쪽성곽이다.

 

 

이후론 거의 무너져서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저쪽아래 성곽하단이 보인다. 가 봐야지..

 

성곽위로는 길이 잘 나있었다.

 

뒤돌아보니 무너진 성곽흔적이다. 

 

이곳은 하단부만 겨우 남아있을 뿐이다.

 

 

약 40-50m정도? 

 

 

원을 그리며 성곽이 이어지다가 다시 무너져버렸다.

 

여기부터 봉학사까지 성곽이 이어지는데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누군가가 무너진 성곽돌로 탑을 쌓아 놓았다.

한국인 가는곳엔, 언제나 돌탑 !!

 

봉학사 가는길엔, 극히 일부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다시 복원된 북쪽으로 나오며 장미산성 답사를 마친다.

 

오백년, 천년후에는 후손들이 장미산성을 이렇게 표현할 것이다.

 

'장미산성은 지금부터 약 이삼천년 전에 삼국시대에 쌓은 성으로, 후에 한번의 보수가 있었는데, 원래대로 보수한것과 성곽돌을 이용해 그시대상황에맞게 보수한것을 알수가있다.특히 후자의경우,보수때 쌓은성은 개인전투개념의 도입으로 그전의 성곽쌓기와 뚜렸히 구분된다. 이는 전술, 전투개념이 시대에따라 전혀다른것을 알수가있고, 천년전 대한민국시대의 전투방어방식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