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산성(山城),읍성(邑城)

홍성 홍주성 (洪州城)

메탈 2015. 3. 22. 11:56

종    목 : 사적  제231호 
명    칭 : 홍주성(조양문,아문,산성)(洪州城(朝陽門,衙門,山城))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지 
수량/면적 :  46,961㎡ 
지 정 일 : 1972.10.14 
소 재 지 :  충남 홍성군  홍성읍 오관리 200-2 
시     대 : 삼국시대
소 유 자 : 국유,사유
관 리 자 : 홍성군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홍성읍 오관리(五官里)에 있는 석축읍성. 둘레 약 800m. 백제의 주류성(周留城)으로 짐작되나 축조연대는 알 수 없다. 고려시대까지 개축에 관한 기록이 없다가 조선시대에 와서 《세종실록》 지리지에 <성의 둘레가 533보 2척이며 여름과 겨울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하나 있다>는 기록이 보인다. 1451년(문종 1) 각 관읍의 읍성을 새로운 규식으로 바꿀 때 성 둘레 4856척, 높이 11척 규모로 수축되었다. 이후 현종 때와 1824년(순조 24) 중수되었다고 전하며, 1870년(고종 7) 조양문(朝陽門)·경의문(景義門)·망화문(望華門)·관영(官營)이 건조되었다. 이 가운데 건조 당시 팔작지붕에 3칸의 다포계 문루건물로서 대원군이 친필을 하사하였다는 조양문은 1975년 완전 해체 복원되었다. 성의 구조상 남문이 없는 것과 북문에 문루가 없는 것이 특이하다. 특히 이 성은 1906년 민종식(閔宗植)·이세영(李世永)·채광묵(蔡光默) 등이 이끄는 의병이 성에 주둔하던 일본군을 공격, 덕산(德山)으로 퇴각시킨 전적지로도 유명하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읍터로 별다른 변동없이 전해진 점과 조선 초기 새로운 축성 규식으로 축성되었다는 점에서 연구와 보존의 가치가 있다. 1978년 10월 지진으로 붕괴된 성곽 일부는 1982년 부분적으로 보수되었다. 사적 제231호.

 

현재 성곽은 곳곳에서 헐리어 당초 1,772m에 달하던 것이 810m의 구간만 남아있고 성내에 있던 관아건물이 36동에 이르렀으나 그중 조양문·동헌·홍주아문·여하정 등 4동의 건물만이 현존하고 있다. - 문화재청

 

남문 홍화문(洪化門)이 복원되었다하여 겸사겸사 가보았다.

 

먼저 동문 조양문(朝陽門)이다.

홍주성의 4개문중 유일하게 남은곳인데, 이번에 복원된 남문이있어 2개가 되었다. 안쪽이다.

현판글씨는 대원군이 쓴것이라 전해진다.

 

 

밖에서 바라본 모습

 

 

 

 

 

성곽이있던자리는 건물들로 채워지고....

 

조양문과 50mm쯤 떨어져 본성곽이 나타난다.

 

튼튼한 모습의 성곽. 높이는 3-4m정도.

 

홍주성은 1번 조양문과 복원된 2번 홍화문 그리고 전체길이의 반도못미치는 약 800m의 성곽과 극히일부 건물들만 남아있다. 

성곽 안쪽모습이다.

 

 

성곽과 치성.

 

여기는 아마 복원과정에서 치밀하지 못했던것 같다.

 

 

 

 

옛모습이 나타나는 성곽

 

 

치성이다.

 

 

 

이곳은 높이가 5-6m쯤 된다.

 

 

이번에 복원된 남문 홍화문이다.

 

 

 

문을통해 안으로 들어가 본다.

 

 

문루로 올라가는 계단.

 

 

 

 

여기성곽이 가장높다.

 

 

안쪽모습.

 

돌에 얼룩이 보이는것은 옛돌과 요즘돌의 차이때문이다.

 

 

남쪽으로 돌아간다.

 

 

 

 

 

새로 정비하는 구간이다.

 

 

 

 

이곳에 다리가 생긴단 얘기

 

안쪽으로 이동하니 우물과 감옥이다.

 

 

우물열 감옥

 

기독교인을 가둬둔곳.

 

 

 

 

 

 

 

홍주성은 조금씩 복원이 진행중이다.

머지않아 멋진 홍주성의 완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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