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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 포정사문루(布政司門樓) 및 선화당(宣化堂)

메탈 2010. 6. 29. 05:45

종    목 : 시도유형문화재 제93호 (공주시) 
명    칭 : 포정사문루(布政司門樓)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관아 
수량/면적 : 1동 
지 정 일 : 1980.12.29 
소 재 지 : 충남 공주시  웅진동 332-9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공주시
관 리 자 : 공주시
상 세 문 의 : 충청남도 공주시 문화재관리소 041-840-2814

 

조선시대 충청도 관찰사가 공무를 집행하던 선화당 앞에 서있던 정문이다.

 

공주는 충청도 전체를 관장하던 지방행정의 중심지로 감영에는 50여 채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선화당과 포정사 및 삼문, 부속건물 1채 만이 남아있다. 원래는 공주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옆에 있었는데, 옛 공주군청 옆으로 옮겨지어 공주 제2감리교회 등으로 사용되어 왔다. 1993년 선화당 앞 지금의 위치에 복원하였다.

 

포정사는 앞면 5칸·옆면 2칸의 2층 건물로, 문루건물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우진각지붕집이다. 우진각 지붕은 지붕면이 4면으로 경사진 지붕을 말하며, 이 건물에서 지붕 모양 이외에는 문루 건축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찾아볼 수 없다. 1층의 양 옆은 판자벽으로 막고 가운데 3칸만 문을 만들어 출입할 수 있게 하였으며, 2층은 누마루로 난간을 돌리고 서쪽에 오르내리는 계단을 만들었다. 교회·사무실 등으로 사용되어 내부와 창틀 등이 개조되었으나, 겉모습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삼문은 솟을지붕 형태로 공포를 짜지 않은 소박한 민도리집 계통이며, 양 옆칸은 민가로 사용되고 있다. 교동에 있던 것을 1993년 선화당 앞에 복원하였다.

포정사 및 삼문은 다른 용도로 사용되면서 변형이 있었지만 조선 후기 관아건물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 문화재청

 

포정사문루와 선화당은 공주박물관 바로 옆에 있었다

 

 

 

 

 

안쪽에 선화당이 보인다

 

정면에 선화당 

 

좌측에 동헌과 선화당

 

동헌이다

 

그옆에 측우기가있는데 실물은 보물로서 박물관에 보관중이다

 

 

 

포정문 뒷모습

 

종    목 : 시도유형문화재 제92호 (공주시) 
명    칭 : 선화당(宣化堂)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관아 
수량/면적 : 1동 
지 정 일 : 1980.12.29 
소 재 지 : 충남 공주시  웅진동 332-9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공주시
관 리 자 : 공주시
상 세 문 의 : 충청남도 공주시 문화재관리소 041-840-2814

 

조선시대 충청도 관찰사가 공무를 집행하던 곳이다. 도내의 일반 행정·군사·조세 및 중요한 재판이 행해졌다. 원래 태조 4년(1395)에 충주에 설치되었으나 선조 35년(1602)에 공주로 옮겨와 충청도 전체를 관장하는 지방행정의 중심지가 되었다.『여지도서』에는 선화당을 비롯하여 50여 채의 건물과 칸수를 기록하고 있으나, 지금은 선화당과 포정사 및 삼문, 부속건물 1채만 남아있다. 지금의 선화당 건물은 순조 33년(1833)에 지은 것으로, 원래는 공주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자리에 있었으나 1932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지었다.

 

앞면 8칸·옆면 4칸의 규모인데, 원래는 앞면 9칸·옆면 5칸이었던 것이 옮기면서 축소되었다. 지붕의 옆선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내부는 칸을 막지 않고 전체를 통칸으로 하여 넓은 공간을 마련하였고 2열로 기둥을 세웠다. 중앙은 우물 정(井)자 모양의 천장으로, 주위의 퇴간은 서까래가 드러난 연등천장으로 꾸몄다. 임금의 덕을 드러내어 널리 떨치고 백성을 교화하는 건물임을 뜻하는 ‘선화당(宣化堂)’이라는 현판을 앞면 중앙에 달았다.

 

조선 중기의 수법이 남아있는 조선 후기의 관아 건축으로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문화재청

 

 

 

 

 

문을 나서며 답사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