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궁(宮),당(堂),루(樓),정(亭)

순흥 봉서루 (鳳棲樓)

메탈 2010. 6. 10. 13:39

봉서루는 처음에 고을 남쪽 5리(구, 순흥초등학교 터)쯤 되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1934년 쯤 봉서루 곁에 있던 소학교(순흥초등 전신)가 불타면서 봉서루는 지금의 순흥면 사무소 마당으로 옮겨 지게 되었다. 그 곳으로 옮겨진 봉서루는 기둥과 기둥 사이에 벽을 막아 면사무소 건물로 사용되면서 지난 날 웅장한 루의 모습은 사라지고 말았다.

봉서루는 전설에 의하면 순흥의 진산 비봉산에 사는 봉황이 날아가면 고을이 쇠퇴해 진다하여 고을 남쪽에 누각을 지어 그것을 방지하고자 세웠다 한다. ‘봉서루’ 라는 현판은 누구의 글씨인지 알지 못하고 ‘흥주도호부아문’이라는 현판은 공민왕의 친필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 순흥 사람들은 누각의 앞쪽에‘봉서루’라는 현판을 걸어 봉황을 맞이하여 깃들게 하였다. 또한 뒤쪽에는 봉황을 맞이한다는 영봉루(迎鳳樓)의 현판을 걸었다. 봉서루는 여말선초 흥주(興州, 순흥)의 남정(南亭)으로 한양을 오르내리던 사람들의 배웅장소로 널리 이용되었다.

 면사무소 건물로 사용되던 봉서루가 신축 면사무소가 건립된 후 옛 모습을 찾았으나 누각의 노후로 인하여 현재의 위치(지동리 옛 터)로 옮겨 짓게 되었다. 봉서루는 비봉산 봉황의 보금자리로 순흥 사람들에게 널리 인식되어 왔었다. 지금 봉서루가 들어선 주변에는 알봉들이 군데군데 자리를 잡고 있는데 이 또한 봉황의 알이라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봉서루(鳳棲樓)는 영남의 3대 루인 안동 영호루, 밀양 영남루, 진주 촉석루보다 앞서 건축된 누각으로 순흥의 진산인 비봉산과 잘 어우러져 있으며 순흥 사람들의 심성이 녹아있는 누각이다.

 

소백산 처암사에서 큰길로나오면 바로있다. 

봉서루앞의  봉황알을 상징한다는데...

 

 

 

 

 

2층으로 올라가본다 

 

 

 

 

 

 

 

 

 

분화재지정이 안되있어 의아했고, 앞의 돌들이 무넜인지 설명이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