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의 나머지부분 태원전과 경회루 그리고 궐내각사자리의 수정전이다.
11.12.13번의 순서이다.
집옥재에서 태원전으로 향한다.
태원전 앞쪽모습으로, 원래 건물이 있던 자리인데 현재 비어있다.
태원전이다.
태원전(泰元殿)
경복궁의 서북쪽 일대는 빈전(殯殿)이나 혼전(魂殿), 영전(靈殿) 같은 제사와 관련된 전각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빈전은 왕실에 돌아가신 분이 있을 때 관을 모셔두는 곳이고 혼전은 종묘에 모실 때까지 만 2년 동안 위패를 모시는 곳이며, 영전은 돌아가신 분의 초상화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태원전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모시던 건물이다. 나중에는 빈전이나 혼전으로도 쓰였다.
이곳은 궁 안 외진 곳이어서 한적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고종은 태원전 재실인 공묵재에 머물면서 신하들을 만나보는 일이 많았다. 태원전 건물은 20세기 초에 철거되었다가 지금 옛 모습대로 건물이 복원되었다. 건물은 제사지내는 집답게 단정하고 엄숙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
문안의 문.
작은 문도 무척많아 어디가 어딘지 헷갈린다.
이 안이 태원전이다.
복도각.
흥미로운것은 문이 두개다.
뭔가 이유가 있을텐데...
문으로 들어가니 영사재.
미로같은 태원전이다.
옆의 건물로 복원된지 얼마안돼서인지 무척 깨끗했다.
태원전을 나와 경회루로 향한다.
향원지에서 나오는 물이 경회루로 흐르는데, 그 수로다.
경회루와 연못.
하향정(荷香亭)
경회루 뒤편 담벼락에 조그만 육각정이 붙어있다. 한둘 들어가면 꽉 찰 것 같다.
이 정자는 조선 왕조와 상관없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개인 낚시터였다. 그러고 보니 청와대(당시는 경무대)가 지척이다. 연못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물고기가 있다. 적적한 밤이면 예서 낚싯대를 기울였다고 한다. 참고로 하나 더. 경회루 연못엔 동용(銅龍)이 있다. 97년 연못의 물을 뺐을 때 발견됐다. 다시 물에 넣었는데 바로 그 곳이 하향정 왼편이다.
종 목 : 국보 제224호
명 칭 : 경복궁경회루(景福宮慶會樓)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궁궐
수량/면적 : 1동
지 정 일 : 1985.01.08
소 재 지 : 서울 종로구 세종로 1-1 경복궁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국유
관 리 자 : 경복궁
경복궁 근정전 서북쪽 연못 안에 세운 경회루는,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사신이 왔을 때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경복궁을 처음 지을 때의 경회루는 작은 규모였으나, 조선 태종 12년(1412)에 연못을 넓히면서 크게 다시 지었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돌기둥만 남은 상태로 유지되어 오다가 270여 년이 지난 고종 4년(1867) 경복궁을 고쳐 지으면서 경회루도 다시 지었다. 연못 속에 잘 다듬은 긴 돌로 둑을 쌓아 네모 반듯한 섬을 만들고 그 안에 누각을 세웠으며, 돌다리 3개를 놓아 땅과 연결되도록 하였다. 이때 연못에서 파낸 흙으로는 왕비의 침전 뒤편에 아미산이라는 동산을 만들었다.
앞면 7칸·옆면 5칸의 2층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누각건물에서 많이 보이는 간결한 형태로 꾸몄다. 태종 때에는 48개의 기둥에 꿈틀거리는 용을 조각하였으나, 다시 지으면서 지금과 같이 간결하게 바깥쪽에는 네모난 기둥을, 안쪽에는 둥근기둥을 세웠다. 1층 바닥에는 네모난 벽돌을 깔고 2층 바닥은 마루를 깔았는데, 마루 높이를 달리하여 지위에 따라 맞는 자리에 앉도록 하였다.
경복궁 경회루는 우리 나라에서 단일 평면으로는 규모가 가장 큰 누각으로, 간결하면서도 호화롭게 장식한 조선 후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소중한 건축 문화재이다.
경회루, 통영의 세병관 그리고 여수의 진남관이 같은 규모이다.
현재의 경회루는 고종 4년(1867)에 중건된 것이다. 다시 지어진 경복궁의 많은 건물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소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회루는 중건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여 왔다. 연못 주변에는 담장이 둘러쌓여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동·서·남·북의 담장이 철거되었으며, 2004년~2005년에 각각 북쪽과 동쪽 담장이 복원되었다. 경회루로 가는 3개의 돌다리에는 벽사의 의미를 가진 동물상이 새겨진 엄지기둥을 놓았다.
경회루 중건에 앞서 이 건물의 공간구성을 역(易)의 원리에 기초하여 풀이한 글이 쓰여 졌는데 정학순이라는 사람이 적은 <경회루전도>이다. 여기에는 경회루가 불을 억제하기 위하여 육육궁의 원리에 따라 지어졌다고 적혀 있다. 6은 본래 8괘에서 큰 물을 의미하는 수이며 경회루를 구성하고 있는 공간과 구조부재의 개수 등이 6궁의 원리를 따랐다는 것이다. 경회루 축조에 응용된 우주의 원리를 <경회루전도>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에 따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정학순은 경회루의 평면을 4방 3중 구조로 정의하고 이를 중국 상고시대에 나타났다고 전하는 신비한 도형인 하도(河圖 : 주역의 기본이 된 그림)의 모습이라고 적고 있다. 또 물과 불을 능히 다스리는 용 두 마리를 경회루의 연못 북쪽에 넣었다는 것이다. 북쪽에 용을 넣은 것은 생성되는 물로써 불을 제압하려는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한다.
경회루와 흠경각사이 담장.
경회루앞이 수정전이고 수정전은 근정전 서쪽행각 바로 옆이다.
수정전이있던 일대를 궐내각사라 불렸는데, 궐내각사는 정규 관원들의 활동공간이다. 아주 중요한 것만 꼽아보면 정승이나 판서 등 고위 관료들의 회의 공간인 빈청(賓廳), 이조와 병조의 관원들이들어와 인사 업무를 처리하는 정청(政廳), 사헌부와 사간원의 언관들이 언론 활동을 논의하고 준비하는 대청(臺廳), 왕명 출납을 담당하는 승지들의 관서인 승정원(承政院), 학문을 도야하여 왕의 주문에 대응 하고 또 왕과 함께 경전과 역사책을 토론하는 홍문관(弘文館), 외교문서를 짓는 예문관(藝文館), 실록 편찬 등 역사기록을 담당하는 춘추관(春秋館)등이 있다.
궐외각사는 국가의 기간 관서들로서 궁궐 정문 앞 궁궐과 인접한 곳에 설치된 관서들을 말한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남쪽 좌우에는 의정부, 육조, 사헌부, 한성부등 관료기구의 중추를 이루는 관서 건물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늘어서 있었다. 흔히 '육조(六曹)거리'로 불렀다.
궐내각사는 1915년 일본이 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하면서 완전히 철거 되었다.
텅비어 나무만 심어놓은 궐내각사터.
경회루 연지 남쪽에 위치한 수정전은 세종대왕 때 집현전이 있던 자리에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다시 지었다. 고종 초기에는 침전으로 사용되고, 편전의 역할을 하였다. 갑오개혁 당시에는 군국기무처 및 내각으로 사용되었다.
해시계가 놓였던 자리라 했던가?
수정전은 관청건물로는 드물게 월대를 두었는데, 왕이 출입이 빈번하다는 이유였다.
수정전 일대의 궐내각사와, 광화문앞 육조거리의 수많은 궐외각사건물중에서, 지금은 수정전이 유일하게 남은 건물이다.
흥례문을 나서며 경복궁 답사를 마친다.
경복궁의 각종 유물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되어있어, 그리로 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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