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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강화성당 (聖公會江華聖堂)

오솔 길 2008. 11. 13. 14:00

성공회강화성당(聖公會江華聖堂) 

종 목 : 사적  제424호 
명 칭 : 성공회강화성당(聖公會江華聖堂) 
분 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수량/면적 : 6452㎡
지 정 일 : 2001.01.04
소 재 지 : 인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250 
시 대 : 대한제국시대
소 유 자 : 성공회유지재단 외

 

성공회 강화성당은 1900년 11월 15일 건립된 동서길이 10칸, 남북길이 4칸인 한식 중층건물이다.

이 성당은 서양의 바실리카식 교회건축 공간구성을 따르고 있으나 가구 구조는 한식 목구조와 기와지붕으로 되어있는 점이 특징이다. 구조와 외관을 한국전통 건축양식에 적응시킴으로서 외래종교에 대한 거부감을 완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서쪽에 출입문을 배치하여 서구 형태를 취하면서 전체적으로는 배(船)모양을 본 떠 뱃머리인 서쪽에는 외삼문 및 내삼문과 동종을 배치하고, 중앙에는 성당을 두었다. 후미에는 사제관을 배치하여 특이한 양식을 보여주며 우리나라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유적이다.

 

마치 절같은 외삼문이다. 

 

 

종(鐘)이있는 내삼문.

꼭 절에 들어가는것 같다.

 

 

 

 

교회정문에서 바라본 문쪽모습.

 

 

 

 

이곳은 정자가 있던곳인지?...

 

 

 

뒤쪽이다.

 

그리고 뒤에있는 사제관이다. 

 

교회 바깥쪽.

 

 

담장이 어째 일본식 느낌이난다. 

 

강화성당은 고요한 (Charies Jone Corfe) 초대주교가 1900년에 축성한 건물로 성베드로와 바우로 성당으로 명명되었다. 당시 건축공사는 궁궐 도편수가 주도하였고 이후 몇차례 보수가 있었으나 처음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강화읍 관청리에 있는 성공회 강화성당은 1900년 트롤로프(趙瑪可, M. N. Trollope) 주교가 설계, 감독하여 건축한 것이다. 건물의 배치는 외삼문과 내삼문, 성당, 사제관으로 구성된 한옥건물이다.
외삼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이루어졌는데, 위에는 “성공회강화성당(聖公會江華聖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문에는 태극문양을 본뜬 큰 원을 그리고 그 안에 내접하는 십자가를 시문하였다. 

 

 

강화온수리성공회성당

종    목 : 시도유형문화재 제52호 (강화군) 
명    칭 : 강화온수리성공회성당(강화온수리성공회성당) 
분    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수량/면적 : 2동 
지 정 일 : 2003.10.27 
소 재 지 :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505-3 
시    대 : 대한제국시대
소 유 자 : 성공회유지재단
관 리 자 : 성공회유지재단
상 세 문 의 : 인천광역시 강화군 문화관광과 032-930-3626

 

이 교회는 1906년 영국인 주교 조마가(Mark N. Trollope)가 지은 성당 건물로 우리나라의 초기 서양 기독교 교회양식의 건물이다.

성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이며 중앙 1칸을 2층 종루로 삼은 문루와 정면 9칸 측면 3칸의 본당으로 이루어진 건물인데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기법을 활용하여 종교적인 성당건축 방법과 공간 구성을 확립한 동서 절충식 강당형의 목조건물이다.

 

이곳도 마치 사찰로 들어가는것 같다.

 

가운데 종(鐘)이있고...

 

안쪽에서 바라본 모습.

 

 

교회 정면. 

 

 

 

안으로 들어가본다. 

 

현재 전시장으로 사용중이다. 

 

 

 

 

외부모습. 

 

뒤쪽이다.

 

 

옆에는 성공회의 새로운 건물인데, 서울에있는것과 매우 흡사했다.

 

 

 

 

 

강화 온수리성공회 사제관
지정번호 : 41호
지정년월일: 2002. 2. 4 
관리자 : 대한성공회유지재단 온수리교회
소유자 : 대한성공회 유지재단
규 모 : 1동 소재지: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505-7번지

 

강화 온수리성공회 사제관은 우리나라에 성공회가 처음으로 전파되기 시작할 때, 초대 선교사 고요한주교와 함께 영국으로부터 내한한 조마가 신부가 1896년 강화에 부임하여 선교를 하면서 2년 후인 1898년에 건축한 건물이다. 이후 사제관이 퇴락하자 1933년 원형 그대로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사제관은 영국 성공회가 선교를 시작하면서 영국인 신부가 한국전통주거문화 속에 어떻게 적응하고 왔는가를 짐작하게 할 수 있는 주거공간으로, 또 건축수법이나 치목형식에서 완전히 한국적인 것만이 아니라 영국인들의 주문을 어떤 방식으로 소화하여 기술적인 적용을 하였는가를 드러내는 건축이라 할 수 있다. 건물 형식은 'ㄷ'자형 연와구조로 된 5량 4간의 홑집이다.

 

외부에서 바라본 사제관. 

 

 

 

 

 

 

 

ㄷ자형의 건물앞이  남향이다.

 

문이 모두 3개였다.

 

성공회는 왜래종교로서,햔국에 토착화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제사 거부하며 솟대부수고, 장승불사르며..단오제나 같은 전통행사를 미신이라며 없애자하고, 추석을 추수감사절로 대체하자고 미쳐날뛰는 개신교와는 확실히 구분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