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궁(宮),당(堂),루(樓),정(亭)

봉화 청암정 (靑巖亭)

메탈 2008. 10. 30. 17:22

청암정은 옛 사람들의 시(詩)처럼 그야말로 영남 최고의 정자이다.

거북바위 위에 올라 앉은 청암정에 오르려면 외나무 돌다리를 건너야 한다. 거북 바위는 거북이가 서에서 동으로 걷는 모양을 하고 있다. 청암정은 연당 가은데 마치 당주(堂州, 연못속의 섬)처럼 거북바위가 있고 그 등에 정자가 올라 앉아 있다. 바짝 치켜든 거북머리가 장관인데 머리 남쪽면에 큼직한 귀가 새겨져 있다.

청암정은 평면이 T자이고 마루를 낀 다락형의 건물이다. 바위의 높낮이에 따라 기둥을 마름 한 점, 기둥 밖으로 외목도리를 내어 걸었는 점등의 구조가 삼척의 죽서루와 비슷하다. 바위 틈에서 자란 철쭉과 산단풍이 정자의 운치를 더하고 왕버들 숲이 청암정을 수놓아 아름답게 꾸미고 있다. 정자의 동북쪽 바위 위에는 청암 권동보가 쓴 ‘청암정’ 세글자가 암각되어 있다.

정자의 ‘청암정(靑巖亭)’글씨는 남명(南溟) 조식(曺植)이 쓴것이고 ‘청암수석(靑巖水石)’은 미수 허목 선생이 88세에 쓴 글씨이다.  또한 ‘근사재(近思齋)’ 편액은 강좌 권만이 옛사람의 글씨법에 따라 조각하여 게판한 것이다.

 

거북 바위 위에 올라 앉은

靑天白日靑 巖 亭

삼남(三南)지방의길지 유곡 마을

푸른바위 위에 서 있는 옛 정자는

사면에 푸른 못 물이 둘러져 있네

때때로밝은 달밤에는

천떨기 연꽃이 피어 있다네

                             (창설공 권두경)

 

바위위에 정자를 지었으니

맑은못 물이 푸른 옥 빛 처럼 둘러쳐 있네

연꽃이사면에 피어 웃고 있으니

향기바람이 앉은 자리를 스쳐가네

                                (강좌공 권만)

 

이 詩 는창설공(蒼雪公 1654~1726)과 강좌공(江左公)이 부르고 화답한 ‘청암정’시이다. 청암정에서 만난 바람은 가을 햇살을 잔뜩 머금고 청암정과 벗하며 바쁜 일상을 소요하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있었다.

청암정에서 만난 단풍은 햇살을 받아 맑은 눈빛과 착한 웃음들을 지니고 있었다. 가끔 바람이 가을을 소요하다 청암정에 들면 숨어서 울던 바위 틈 노란 들국화도 햇살을 데리고 서산을 넘을 준비를 한다. 세월을 벗어 놓은 거북바위 위에 들어앉은청암정. 바람이 놀던 가을 들판엔 아직도 울음이 타고 있다. 그렇게 청암정의 가을은 깊어만 가고 세월은 그 속에 묻혀만 간다.

경북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닭실 마을은 옛부터 경주의 양동마을, 안동의 하회�내앞 마을과 함께 삼남 지방의 4대 길지로 꼽힌 마을이었다.

닭실(酉谷)마을은 마을의 진산(鎭山)이 들어 오면서 맺어진 모양이 마치 닭이 날개를 치면서 우는 형상과 같다하여 ‘유곡(酉谷)’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한다. 이곳 닭실 마을이 형성 된것은 충재(   齋) 권벌(權    :1478~1548)에 의해서이다.

충재가 닭실 마을과 인연을 맺게 된것은 그의 부친이 연로하고 풍병(風病)이 있음을 들어 삼척부사를 자청하여 삼척으로 가는 길에 이곳 봉화를 지나게 되었는데 이때 그는 이곳 닭실 마을을 눈여겨 보게 되었다. 이후 충재는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된 후 고향에 돌아와 금빛 큰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의 터, 닭실에 자신의 삶의 터전을 열었다. 이때 충재는 안동의 도계촌(안동시 북후면 도촌동)에서 이곳으로 옮겨왔다.

 

큰 바위위에서있는 청암정.

 

이 문으로 들어간다.

 

 

물이없어 어쉽네..

 

 

 

 

청암정 관리하는 부속건물같다.

 

 

 

 

 

 

 

  

 

 

 

근처에 석천정사도 있어 가 보았으나 수리중이었다.

석청정사 계곡의 바위에있는 글자다. 청하동천(靑霞洞天):신선이 사는곳이란 뜻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