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사적 제149호
명 칭 : 육상궁(지상건물일체포함)(毓祥宮(地上建物一切包含))
분 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제사유적/ 제사터
수량/면적 : 25,791㎡
지 정 일 : 1966.03.22
소 재 지 : 서울 종로구 궁정동 1-1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국유
관 리 자 : 경복궁
영조의 생모이며 숙종의 후궁인 숙빈 최씨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영조 원년(1724)에 세워 숙빈묘라 했으나 영조 29년(1753)에 승격시켜 육상궁이라 고쳐 불렀다. 고종 19년(1882) 화재를 당하여 다음해에 복구했다. 육상궁은 칠궁이라고도 부르는데 그것은 1908년에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는 7개의 궁들을 이곳에 옮겼기 때문이다. 칠궁은 육상궁, 저경궁, 대빈궁, 연호궁, 선희궁, 경우궁, 덕안궁을 일컫는데 조선왕조 역대 왕들의 친모로서 정비에 오르지 못한 7인의 신위를 모셔 제사지내는 곳이다.
육상궁은 나즈막한 담에 둘러싸여 있고 왼쪽에는 네 개의 사당이 각기 독립해 서로 접하여 서있다. 이 사당 앞쪽에는 제사지내는 곳과 우물이 있으며 그 앞에 정문이 있다. 제사 지내는 건물 주위의 뜰은 한국식 정원의 전형을 이루어 정숙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육상궁 정문인 외삼문.
하지만 이문은 사용하지 않으며 옆으로 들어간다.
육상궁으로 들어가는문. 도우미 안내양의 복장이 인상적이다.
뒤에 보이는 지붕이 청와대 영빈관 건물로, 국빈을 맞이하는 장소다.
그쪽으로는 사진을 못찍게 한다.
이 문으로 들어가면 칠궁이다.
송죽재.
육상궁을 관리하는 관헌이 거처하며, 제사를 준비하던 재실이다. 송죽재와 풍월헌이라는 현판이 동시에 달려있다.
저 문으로 가본다.
삼락당 건물이다.
삼락당을 꺽어돌아간다.
내삼문이다.
내삼문을 들어가면 오른쪽에 냉천정이 있는데, 영조가 어머니의 제삿날에 나와서 몸을 깨끗이 하고 정성을 가다듬어 제사를 준비하던 건물이다,
또한 냉천정 앞에는 석축을 두른 자연(紫淵)이라는 정사각형의 작은 연못이 있으며, 정면 석축 한 가운데는 紫淵이라 새겨진 글씨가 있다.
내삼문으로 들어가면 솟을대문이 하나더 있다.
문 바로옆에 재실이 하나있고, 정면으로 덕안궁이다.
덕안궁(德安宮)은 고종의 후궁으로 영왕을 낳은 순헌 귀비 엄씨의 신주를 모신 궁이다. 광무 원년(1897)에 엄비가 아들을 낳으면서 경운궁 안에 거처할 궁을 세워 그 궁을 경선궁이라 불렀고, 엄귀비가 세상을 떠나자 덕안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13년에는 육상궁 안으로 옮겨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덕안궁 뒤쪽에 저경궁,대빈궁,선희궁,경우궁이 자리잡고있다.
저경궁(儲慶宮)은 선조의 후궁이며, 죽은 후 왕의 칭호를 받은 원종을 낳은 인빈 김씨의 신위를 모신 궁이다. 원종은 선조의 다섯째 아들로서 인조가 왕위에 오른 후 왕의 칭호를 받았다. 인빈이 세상을 떠난 후 원종이 살던 송현궁에 신위를 모시고 저경궁이라 이름 지었다. 이후 저경궁은 고종 7년(1870)에 계동에 있는 경우궁 안으로 옮겨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경우궁과 선희궁은 같이 봉안되어있다.
경우궁(景祐宮)은 정조의 후궁으로 순조를 낳은 수빈 박씨의 신위를 모신 궁이다. 수빈은 순조 20년(1820)에 세상을 떠났고, 이듬 해 신주를 창경궁 안에 모시고 현사궁이라 이름 지었다. 이후 현재의 종로구 계동의 양덕방에 따로 묘를 세우고 이름을 경우궁으로 지어 신주를 모셨다. 이후 이 궁은 갑신정변을 겪으면서 현재의 옥인동인 인왕동으로 옮겨 졌다가 1908년에 다른 궁들과 함께 육상궁 안으로 옮겨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선희궁 (宣禧宮)은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생모인 영빈이씨(暎嬪李氏)의 신주를 봉안한 묘사(廟祠)이다.
대빈궁(大嬪宮)은 숙종의 후궁으로 경종을 낳은 희빈 장씨의 신위를 모신 궁이다. 숙종 27년(1701)에 희빈이 사망한 후 신위를 정동에 있는 집에 모셨다가 경종 2년(1722)에 희빈에게 옥산대부인의 칭호를 내리면서 사당을 현재의 교동인 경행방에 세웠다. 대빈궁은 고종 7년(1870)에 다시 돌아갔고, 1908년에 다른 궁들과 함께 다시 육상궁 안으로 옮겨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다시 냉천정을 지난다. 냉천정 뒤쪽의 우물.
이 문을 지나면 연호궁과 육상궁이다.
연호궁과 육상궁은 합사되어 있다. 앞의 현판은 연호궁으로 걸려 있으나 안쪽에는 영조의 친필로 쓰인 육상묘(毓祥廟)의 현판이 걸려 있다.
연호궁(延祜宮)은 영조의 후궁이며, 죽은 후, 왕의 칭호를 받은 진종을 낳은 정빈 이씨의 신주를 모신 궁이다. 진종은 정빈에게서 태어나 세자로 정해졌지만 10세에 세상을 떠났다. 정조는 즉위 후, 진종에게 왕의 칭호를 주고 정빈을 위해 정조 2년(1778)에 경복궁 서북쪽에 사당을 세우게 하고 연호궁이라 이름 지었다. 연호궁은 고종 7년(1870)에 육상궁 안으로 옮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육상궁(毓祥宮)은 영조의 생모이며 숙종의 후궁인 숙빈 최씨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영조 원년(1724)에 세워 숙빈묘라 했으나 영조 29년(1753)에 승격시켜 육상궁이라 고쳐 불렀다. 고종 19년(1882) 화재를 당하여 다음해에 복구했다.
육상궁 담장.
솟을대문으로 바라본 연호궁.
냉천정을 옆으로 밖으로 나간다.
솟을 삼문을 지나면..
송죽재와 삼락당이 나오며 답사가 끝난다.
'우리의 궁(宮),당(堂),루(樓),정(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봉화 청암정 (靑巖亭) (0) | 2008.10.30 |
---|---|
청송의 정자(亭子) (0) | 2008.10.30 |
남원 광한루 (廣寒樓) (0) | 2008.10.16 |
밀양 영남루 (嶺南樓) (0) | 2008.10.10 |
진주 촉석루 (矗石樓) (0) | 2008.1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