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문화재자료 제8호 (진주시)
명 칭 : 촉석루(矗石樓)
분 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조경건축/ 누정
수량/면적 : 1동
지 정 일 : 1983.07.20
소 재 지 : 경남 진주시 본성동 500-8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진주시
관 리 자 : 진주시
상 세 문 의 : 경상남도 진주시 문화관광담당관실 055-749-2053
남강 변 벼랑 위에 있는 이 누각은 진주성의 남쪽 장대(지휘하는 사람이 올라서서 명령하던 대)로서 장원루라고도 한다.
고려 공민왕 14년(1365)에 세운 후 7차례의 중건과 보수를 거쳤는데, 전쟁이 일어나면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본부로 사용하였고, 평상시에는 과거를 치루는 고시장으로 쓰였다.
현재의 누각은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960년 진주고적보존회에서 재건한 것으로 앞면 5칸·옆면 4칸이다.
《진양지(晉陽誌)》에는 고려 때 김중선(金仲先) 등이 진주성 수축시 신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김주가 영남루를 중건할 때 촉석루를 본보기로 하였다고 되어 있다. 촉석루의 누기(樓記)에는 조선 초 목사 권충과 판관 박시결(朴施潔)이 중건하고 하륜(河崙)이 누기를 지었다고 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논개(論介)가 몸을 던져 순국한 곳으로 유명하다.
강 건너서 바라본 촉석루모습이다.
진주성 안쪽에서 바라본 촉석루.
촉석루는 진주의 상징이자. 영남 제일의 명승이다. 진주성 남쪽 석벽 위에 우뚝하여, 웅장한 위풍은 진주성의 위상을 대변하고 있다. 일명 장원루(壯元樓) 또는 남장대(南將臺) 라고도 한다. 고려조 고종28년(1241) 진주목사 김지대(金之岱:1190 - 1266)가 창건하고, 충숙왕9년(1322) 목사 안진(安震: ? - 1360)이 재건하였다. 우왕5년(1379)에는 해구의 침략으로 불탄 것을, 조선조 태종13년(1413)에 목사 권충(權衷)이 중건하였고, 성종22년(1491)에는 목사 경임(慶 )이, 선조16년(1583)에는 목사 신점(申點)이 중수하였다. 선조26년(1593)에는 왜적의 침략으로, 진주성이 함락되는 와중에 또 불탄 것을, 광해군10년(1618)에 병사 남이흥(南以興)이 중건하였다.
경종4년(1724)에는 병사 이태망(李太望)이 중수하였고, 1950년 6.25전쟁으로 또 불탄 것을, 1960년 진주고적보존회에서 중건하였다. 하륜(河崙: 1347 - 1416)의 「촉석루기」를 비롯, 많은 시인묵객의 시서화가 오늘에전한다.
촉석루는 진주성 안에 있는 누대로 진주성의 옛 이름인 진주읍성과 촉석성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남강가 깎아지른 듯한 벼랑 위에 우뚝 솟아 연초록빛 강과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처럼 자리하고 있다.
진주 촉석루는 남원 광한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 중의 하나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지만, 고려 고종 28년 진주 목사 김지대가 처음 세운 이래 여덟 차례의 중수, 세 차례의 중건을 거듭하며 평화로운 시절에는 향시가 치워졌던 고사장 장원루로, 전시에는 진주성의 남쪽을 지키는 남장대로 영과 욕을 반복하며 진주를 지켜온 망루다.
남강쪽에서 본 모습.
촉석루는 논개의 이야기와 얽혀 더욱 유명해졌는데, 임진왜란 당시 2차 진주성싸움에서 수적열세에 밀려 진주성이 함락되고 왜적들이 촉석루에서 자축연을 벌였다.
이 때 관기였던 논개가 왜장 에야무라 로쿠스케를 껴안고 당시 위암이라 불리던 바위에서 몸을 던져, 왜군에게 조선 여인의 기개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위암은 촉석루 오른편 남강으로 내려가는 돌계단을 따라 동굴처럼 생긴 성벽을 빠져나오면 남강변에 작은 섬처럼 떠 있는데, 논개가 왜장과 몸을 던진 충절을 기려 이름을 의암으로 바꾸었고 인조 7년 원성 정대륭이 바위 서면에 전자(篆字)로 의암이란 글자를 새겼고, 남면에는 조은 한몽삼이 해자(楷字)로 의암이라고 새겼다.
진주성의 촉석루 있는장소는, 수직절벽으로 천혜의 요새다.
현재의 촉석루는 6.25사변때 완전히 소실된 것을 옛 설계도를 찾아 1960년 진주 시민의 힘으로 다시 중건한 것으로 진주성 입장료를 내면 촉석루는 별도의 입장료 없이 둘러 볼 수 있다.
야경모습이다.
우리나라 3대누각을 얘기할때, 진주 촉석루와 밀양 영남루 그리고 평양 부벽루 또는 남원 광한루를 얘기한다.
비록 복원되었으나,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촉석루였다.
'우리의 궁(宮),당(堂),루(樓),정(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원 광한루 (廣寒樓) (0) | 2008.10.16 |
---|---|
밀양 영남루 (嶺南樓) (0) | 2008.10.10 |
대원군별장 석파정 (石坡亭) (0) | 2008.10.06 |
서울의 정자(亭子) (0) | 2008.10.06 |
홍주관아 (洪州官衙) (0) | 2008.1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