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산성(山城),읍성(邑城)

완도 청해진유적 (淸海鎭遺蹟)

메탈 2008. 7. 13. 00:58

종    목 : 사적  제308호 
명    칭 : 청해진유적(淸海鎭遺蹟)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시설 
수량/면적 : 482,884㎡ 
지 정 일 : 1984.09.01 
소 재 지 : 전남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 734 
시    대 : 신라
소 유 자 : 국유,사유
관 리 자 : 완도군

 

청해진은 신라 흥덕왕 3년(828) 장보고가 설치한 해군기지이자 무역기지로, 전라남도 완도 앞바다의 작은섬인 장도에 있다. 당시 이곳은 신라와 당, 일본을 잇는 해상무역의 중요한 길목이었다.

장보고(?∼846)는 평민 출신으로 당나라에 건너가 장군이 되었으나, 해적들이 신라사람들을 노예로 삼는 것에 분개하여 신라에 돌아와 왕의 허락을 받고 828년 청해진을 설치하였다. 청해진은 국제무역의 중심지로 동아시아 무역을 독점하여 번영을 누리며 큰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이후 장보고는 왕위계승과 관련된 권력다툼에 휘말려 자객 염장에 의해 846년 암살당하였고, 문성왕 13년(851)에 청해진은 폐쇄되었다.

장도는 섬 전체가 계단식 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앞바다를 제외한 주변바다는 수심이 얕아 방어용 목책을 박아 외부접근을 막도록 만들었다. 성터 안에는 토기와 기와조각이 발견되고 있고, 인근에 장보고가 지었다는 법화사터가 남아있다.

청해진은 신라 후기 장보고가 서남해안의 해적을 소탕하고, 중국의 산동지방과 일본을 연결한 해상 교역로의 본거지로서 중요한 역사적 유적이다.

 

장도는 섬이라 하루에 두번만 건널수있다.

썰물때만 장도로 갈수가 있어서, 서둘러 차를 몰았다.

 

다행히 건널수 있었다. 마을에서 약 200m건너편이다.

외성문(外城門),내성문(內城門),고대(高臺)의모습이 한눈에 보인다. 갯벌을 걸어들어간다.

 

드디어 장도로 들어섰다.

먼저 외성문의 모습이다. 

 

문 옆으로는 토성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문앞 옹성형태안에는 우믈이 있었다.

 

외성문앞의 우물터.

 

정면모습으로, 문 형식이 개거식형태임을 알수가 있다. 

 

안쪽에서 바라본 외성문이다.

 

망루로 올라가본다. 

 

망루에서 보이는 완도의 모습.

 

망루에서 보이는 내성문이다.

 

장도는 토성으로 둘러져있고...

 

내성문으로 가면서 바라본 외성문과 완도모습이다.

 

내성문이다.

 

내성문에서 바라본 외성문.

 

그리고 내성문에서 보이는 고대다.

 

고대로 가면서 바라본 내성문 문루다.

 

고대(高臺)다. 높은곳에 있는 망루란 뜻이다.

 

 

고대를 지나 토성위를 걸어본다.

 

동남치다.

 

동남치를지나 토성이 섬을 한바퀴 돈다.

 

 

굴립주다. 특징은 기초를 놓지않고, 땅에 기둥을 박은것이다.

 

사당이 있고...

 

다시 굴립주다. 사당 좌우측에 위치한다.

저 건너에 보이는 건물이 현재 군부대인 장보고 대대란다. 안내문에 있는 설명이다.

 

다시 치가 나오며 방향이 꺾인다.

 

중간을 가로질러가자 다시 고대다.

 

내성문으로 올라가본다.

 

 

 

섬을 한바퀴도는 토성의 모습이다.

 

내성 문루

 

외성문옆에 토성을 이루는 판축방식을 설명해 놓은것인데, 아무 안내가 없어 사람들이 보기에는 화초를 심어놓은것으로 보일수있을것 같다.

 

복원계획도다.

사실 장보고 유적지치고는 외성문,내성문,고대외에는 이렇다할 볼거리가 없었다.

 

스카이뷰

 

TV드라마 찍을때 사용했을법한 옛날 배가있어 , 그나마 볼거리가 되었다.

 

 

청해진 유적지보다, 건너편의 장보고 기념관이 더 기억에 남는다.

이곳에서 장보고와 청해진에 대하여 자세하게 알수가 있었다.

 

장보고 기념관은 별도로 답사기를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