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시도기념물 제9호 (남원시)
명 칭 : 남원교룡산성(南原蛟龍山城)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
수량/면적 : 일원
지 정 일 : 1973.06.23
소 재 지 : 전북 남원시 산곡동 16-1
시 대
소 유 자 : 남원시
관 리 자 : 남원시
상 세 문 의 : 전라북도 남원시 문화관광과 063-620-6173
남원 교룡산성은 해발 518m의 교룡산의 천연적인 지형지세를 이용하여 돌로 쌓은 산성으로, 둘레는 3120m이다.
현재 무지개 모양으로 입구가 표현된 동문과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든 작은 성인 옹성, 그리고 군데군데 성벽이 남아 있다. 온전하게 남은 동문터와 수문에 보이는 성벽의 구조는 우리나라 성곽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성안에는 우물 99개와 계곡이 있어서 산성 주변의 주민들이 유사시에 대피나 전투의 목적으로 사용하기 좋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 전기에는 군대의 식량을 저정하는 창고가 있었다.
산성을 언제 쌓았는지는 기록이 없어서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성을 쌓은 입지나 형식으로 볼 때 백제 때 만든 것으로 보인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남원부(南原府) 산천조(山川條)〉에도 교룡산성이 남원부 서쪽 7리에 있다는 기사가 보인다. 축성의 내력에 대하여는 명확하지 않으나, 택지(擇地)나 형식으로 보아 삼국시대 백제의 축성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기록상으로는 임진왜란 중인 선조 25년(1592)에 금산사(金山寺)에서 의거한 승병장 처영(處英)으로 하여금 성을 쌓게 하였다 한다. 그 후 선조(宣祖) 30년(1597)에는 남원부사 최염이 주변 일곱 고을의 군사를 징발하여 수축하였고, 숙종(肅宗) 때에도 수축공사가 있었다. 성은 교룡산의 동쪽 수구(水口)에 동문을 설치하고, 산세에 따라 양쪽의 능선을 감싸고 있는 석축산성이다.
입구쪽 계곡부분에 무너졌는지 일부러 이렇게 쌓았는지는 알수없다, 수문인지도...
동문은 옹성(饔城)에 쌓여 있어 남쪽에서 성벽을 따라 들어가다가 다시 서쪽으로 ㄱ자형으로 꺾인 곳에 홍예문이 있다. 홍예문의 측면은 장대석을 3단으로 쌓고, 그 위의 액부(額部)는 아홉 개의 돌을 아취형으로 맞춘 것이다. 가구는 매우 단조로와 금산사 입구 홍예문보다 뒤떨어지는 것 같으나 처영이 당초 금산사에 머물렀던 것을 미루어 볼 때, 양쪽의 성문은 그의 중수(重修)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안에는 우물이 99개나 있었고, 계곡도 있어서 유사시에 주변의 주민들을 징발하여 성을 지키기에 좋은 곳이었다. 북쪽으로는 밀덕봉(密德峰)·복덕봉(福德峰)의 험준함이 있고 서쪽도 험준하여 남북이 서로 바라다보이지 않는다.
성을 지키는 책임은 남원부사(南原府使)와 별장(別將)이었고, 성 안에 용천사(龍泉寺)가 있었다. 동문안 북측에는 몇 개의 기적비(紀績碑)가 있는데, "천총이진택중건기루 영세기속숭정5년병자5월일(千摠李震澤重建欺樓 永世紀續崇楨五年丙子五月日)"이란 글이 새겨져 있음을 보아, 인조 14년(1636)에 이 동문초루(東門樵樓)가 중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남원지역 20여 개의 산성 중 그 형태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성으로, 성벽 구조가 한국 성곽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고 엠파스에서 알려준다.
성 안쪽에서 바라본 홍예문.
홍예문 위에서 보이는 수문이다.
위에서바라보니.성곽의 두터움과 규모를 알수가있다.
계곡바깥쪽에서 본 산성으로 높이가 높다.
계곡 건너편 모습이다.
산성위에서 홍예문쪽을 바라본 모습이다.
성곽 개념도다.
산 전체를 둘러싼것이 아니었다.
교룡산성
본격적으로 성곽을 올라본다.
이곳은 성곽이 매끈해, 복원된 곳 같았다.
돌아보니 성곽이 굽이굽이 돌아간다.
자연암반 있는곳까지 복원된 모양이다.
무었에 쓰여진 돌인지?...
자연암반위에서 뒤를 보니,성곽의 멋진곡선모습이다.
여기부터는 복원안된 상태다.
무너진곳을 내려서니, 예 성곽의 모습이보인다.
잡목때문에 다시 올라오니, 산책길이 편안한모습으로 놓여있었다.
얼마를가다가 다시 밖으로 내려서보았다. 성곽의 상태가 좋았다.
다시 오솔길을 따라가고...
문이있던곳 같았다.
밖에서 본 좌, 우 성곽모습이다.
여기부터는 산 정상으로가는 길이었다.
산성의 흔적을 찾을수 없어, 선국사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체련장에있는 쓰레기소각장. 산성돌로 만든것 같았다.
선국사 가는길에 있는 별장청터.
선국사로 내려간다.
나는 이 계단돌이 다 산성돌로 보인다.
선국사다.
이 돌들이, 설마 산성돌은 아니겠지?
선국사는 교룡산성내에 있는 사찰로 통일신라 신문왕 5년에 창건되었다고 하며 원래 용천사라 했는데 선국사로 개명한 연대나 유래는 알길이 없다.
이 사찰은 군사시설인 교룡산성 안에 있었던 관계로 국난이 있을 때마다 승전을 기원하고 국태민안을 비는 호국사찰이었으며 군사의 지휘본부로도 이 사찰을 이용했다고 한다.
특히 보제루는 그 위치가 사찰전면 좌단부에 옆으로 길게 건축되어 남원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어 작전 지휘본부로 걸맞는 형태다.
이 보제루에서 동학난때 잃어 버린 승병장인을 찾아서 지방민속 자료 27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고 임진왜란때 호남승병을 이곳에서 관장 통솔했다고 한다.
또한 이 사찰에는 둘레 260cm, 길이 102cm의 거대한 소나무 통목에 쇠가죽으로 만든 큰 북이 있는데 제작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약 200여년전 것으로 추정되어 민속 자료 제5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대웅전 앞에있는 보제루.
선국사 대웅전.
이 길을 내려서니 동문 홍예문이다.
이번에는 홍예문에서, 반대펀으로 올라서본다.
상당히 가파른 산위로 연결된다.
오르기도 쉽지 않았다. 뒤돌아보니 홍예문과 옹성의 보습이 잘 보인다.
입구쪽 전체 모습이다.
이 가파른 산위에 돌을 쌓은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맨손으로 오르기도 쉽지않은 언덕이니 말이다.
가파른 부분 끝.
여기까지 산성의 흔적이다.
성 바깥쪽으로 내려선다.
교룡산성은 매우 가파른 산위에 일부만 쌓은것으로 보여진다.
산세에 따라 양쪽의 능선을 감싸고 있는 모습으로, 상태가 좋은곳이 많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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