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시도기념물 제11호 (태안군)
명 칭 : 안흥성(安興城)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
수량/면적 : 70,806㎡
지 정 일 : 1973.12.24
소 재 지 : 충남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사유
관 리 자 : 태안군
상 세 문 의 : 충청남도 태안군 문화관광과 041-670-2761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 해안의 안흥마을 뒷산에 있는 산성으로, 본래 ‘안흥진성’이었으나 보통 안흥성이라 부르고 있다. 이 곳은 조선시대 중국에서 오는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며, 또한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했다.
성의 둘레는 약 1500m이고, 성벽의 높이는 3∼4m이다. 조선 효종 때 경기도 선비인 김석견이 성을 쌓을 것을 바라는 상소를 올리자, '이 지역은 바닷가에서 10여 리 튀어나와 있는 천연의 요새지이므로, 군대를 주둔시키고 양식을 저장하면 훌륭한 진영이 될 것이다'라는 신하들의 말을 듣고 당시 인근지역 19개 군민을 동원하여 성을 쌓았다.
동·서·남·북 4곳에 설치한 성문의 형체가 뚜렷하게 남아있어, 당시 성의 위용을 짐작할 수 있다. 동문은 수성루, 남문은 복파루, 서문은 수홍루, 북문은 감성루라 하였는데, 현재는 입구만 남아 있다.
성안에는 20여 호의 가구가 살고 있으며, 성안 동문쪽에 영의정 김우근의 불망비와 비각이 있다.
안흥항 바로 옆이 서문 수홍루다.
하지만 아쉽게도 옆은 도로가 나있어 성곽을 끊겨있고, 북쪽으로도 얼마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것이 전부다. 북쪽으로 복원된 성곽이 얼마간 이어져있다.
성 안쪽모습.
스카이뷰
아쉬운 마음에 혹시나해서...길을따라 태국사로 올라가본다.
역시..태국사에 오르니 문이보이는데,북문이다.
암문형식으로 되어있었다.
여닫이 문을 사용한 흔적이다.
성 바깥쪽 모습.
성문 왼쪽, 그러니까 동쪽은 높은지역인데, 군시설물관계로 철조망이 쳐져있어 갈수가 없었다.
태국사 대웅전뒤로 성곽이 이어져있다.
복원안된 그대로다.
북문에서 서문까지 연결되어있어 따라가본다.
잡풀에 가려있지만 상태가 양호하다.
그러나 서문에 가까이가자 흙속에 덮어버렸다.
북문에서 여기까지, 바깥쪽 성곽모습으로 상태가 좋았다.
여기서 한바퀴돌아 서문으로 내리막이다.
시작점 서문이다.
다시 북문으로 돌아온다.
태국사 근처에 이런 돌무덤이 많았다. 산성 돌이겠지...
태국사 대웅전.
백제무왕 34년에 세워진 절이라는데, 역사에비해 규모가 작았다.
북문을나서자 저 건너편에 문이보이는데, 당겨보니 남문이다.
남문가는길에 서문이 보인다.
남문이다. 북문과 같은 형태였다.
성 바깥쪽.
동쪽으로는 군 시설물이라 갈수가 없고...
서쪽으로 따라가본다.
성곽위로 올라서니, 누각이있던 흔적이보인다.
성곽옆으로 오솔길이 나 있다.
성곽이 허물어져있는곳이있어 바깥으로 나와보니, 성곽상태가 좋다.
사람키를 넘는높이에 하단은 큰돌, 위로갈수록 작은돌이다.
성곽상태가 매우 좋았다.
무너진곳이 조금있을뿐, 전체적으로 건재했다.
남문부터서문쪽 내리막까지 약 300-400 여m 성곽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잡목을 헤치고 가기가 힘들다. 하지만 겨울이니 가능하다, 여름엔 꿈도못꾼다.
다시 성 안으로 들어와 남문으로 향했다.
내성의 흔적도 발견된다.
성안의 민가다.
초가집이라면, 좀 더 운치가 있을텐데...
서문을 나서며 안흥성 답사를 마찬다.
북문에서 서문근처까지, 또 남문에서 서문근처까지 성곽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나머지 복원할 생각말고, 남아있는 부분만이라도 잘 보존해야할것이다. 그리고 군부대에 있는 성곽물들도 방치하면 안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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