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 김동수씨 작은댁 사랑채랍니다.
왜 파주에 있냐구요?
열화당 이기웅 대표님의 이건기를 요약해 볼께요.
열화당에서 우리 민가에 관한 작은 시리즈물을 기획하던 시기에 김광언 선생이 <정읍 김씨집> 출간을 제의해 오셨대요.
김광언 선생은 성균관 대학교 임형택 교수님을 통해 김동수씨 집을 알았다네요. 임 교수님 집안이 김동수씨 집안과 내종간이었는데 빼어난 고택을 눈여겨 보다가 보존과 관리의 필요성을 느끼고 당시 전북대학교 교수이자 문화재위원이었던 김광언 선생에게 알려왔답니다. 김광언 선생이 이 집을 처음 본 것은 1970년이었고 다음해에 중요민속자료 제26호로 지정되었대요.
사진가 주명덕 선생과 함께 정읍에 들른 이대표님은 우리 선조들의 고고했던 삶의 모습을 실감하면서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구요. 그렇게 해서 출간된 책이 <정읍 김씨집 - 호남민가의 대표적 양식인 정읍 김동수씨 집의 건축적 민속적인 고찰>(1980)이랍니다.
1999년 봄 어느날, 정읍의 사진가 손중석 선생이 김동수 가옥 바로 옆에 있는 김동수 씨 작은집이 쓰러져 가고 있다는 연락을 해왔답니다. 작은집은 문화재로 지정받지 못했고 살던 이들마저 떠났기 때문이라네요. 김광언 선생의 조사에 따르면 작은집은 건축연대가 183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당시 출판도시 건설에 여념이 없었던 이기웅 대표님은 직감적으로 그 집을 출판도시로 옮겨와 영구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출판도시 건축코디네이터인 건축가 민현식, 승효상, 김영준 그리고 군산대학교 건축공학과 배병선 교수와 협의를 해 면밀한 조사 끝에 김동수씨 작은집 사랑채 한 동만을 옮겨 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대요.(당시 김동수씨 작은집은 사랑채, 행랑채, 문간채 3동이 남아 있었는데 심하게 노후되어 일부는 붕괴가 진행되고 있었구요.)
파주 출판문화정보 산업단지 정기 이사회(1999년 8월 30일)에서 사랑채 이건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는데 이것은 우리 문화를 보존하고자 하는 출판도시 전 구성원들의 의지의 결과였죠.
1999년 11월 부터 이듬해 6월까지 진행된 이건작업의 핵심은 '최대한 원형 그대로 옮긴다'였구요. 2000년 3월 상량식이 거행되었고 6월 10일에 이건작업이 완공되었네요. 집 마당에는 느티나무가 고즈넉하게 서 있는데 이건 당시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신축부지에 있던 거목을 국무총리의 배려로 이식하여 정성을 다해 키워 온 것이랍니다.
2001년 서화로 명성이 높은 석촌 윤용구선생의 친필 '서호정사 西湖精舍' 현판을 이 집에 걸어 이름을 부여했어요. 집의 서쪽으로 갈대샛강이 흐르고 있으니 그 형세에도 알맞을 뿐만 아니라 '학문을 가르치는 곳' '정신을 수양하는 곳'이라는 뜻의 精舍라는 말은 이 집을 옮겨 세운 뜻에도 들어맞았답니다.
---- 의리와 신뢰로 함께해 온 책마을 사람들 그들의 우리 문화에 대한 애정이 없었던들 이 집은 지금 이자리에 있지 못했으리라. 책마을의 특별한 랜드마크인 서호정사를 바라보면서, 우리 모두 서로서로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 주었으면 한다. 더불어 내가 정읍과 맺어온 인연 그 소중한 추억이 이 아담한 집에 영원히 깃들 것을 생각하니, 기쁜 마음 그지없다 (안내판 일부)
이러한 사연이 있는 김동수씨 작은댁 사랑채다.
파주 출판문화단지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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