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산성(山城),읍성(邑城)

공주 공산성 (公州公山城)

오솔 길 2010. 7. 2. 19:21

종    목 : 사적  제12호 
명    칭 : 공주공산성(公州公山城)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 
수량/면적 : 371,621.3㎡ 
지 정 일 : 1963.01.21 
소 재 지 : 충남 공주시  산성동 2외 
시    대 : 삼국시대
소 유 자 : 국유, 사유
관 리 자 : 공주시

공산성은 백제의 수도가 공주였을 때, 공주를 지키던 백제의 산성이다.

 

금강변 야산의 계곡을 둘러싼 산성으로, 원래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나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고쳤다. 쌓은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며, 백제 때에는 웅진성으로,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공산성으로, 조선 인조 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렀다.

 

4방에 문터가 확인되는데, 남문인 진남루와 북문인 공북루가 남아있고 동문과 서문은 터만 남아있었는데, 1993년에 동문터에는 영동루 서문터에는 금서루를 복원하였다.

암문·치성·고대·장대·수구문 등의 방어시설이 남아 있으며, 성 안에는 쌍수정·영은사·연지·임류각지, 그리고 만하루지 등이 있다. 또한 연꽃무늬 와당을 비롯하여 백제 기와·토기 등의 유물들과 고려·조선시대의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백제 멸망 직후에 의자왕이 잠시 머물기도 하였으며,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지이기도 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김헌창의 난(822)이 일어나기도 하였으며, 조선시대 이괄의 난(1623)으로 인조가 피난했던 곳이기도 하다.

백제 성왕 16년(538)에 부여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의 백제 도성이었으며, 이후 조선시대까지 지방 행정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역사적 가치가 큰 중요한 유적이다. - 문화재청

 

공산성은 2년전에 다녀갔었는데, 겨울이라 미끄럽고 쓸쓸해서 다시 들려보았다

녹음진 성곽이나, 단풍의 성곽이 멋지기 때문이다

신호등에서 공산성이 멀리 보여 당겨보았다.  역시 멋진 산성이다 

 

차를 주차시키니 그곳이 금서루(錦西樓)다

 

공산성의 스카이뷰. 위쪽의 주차장이 금서루있는곳

 

 

올라가보자

 

입구에는 수많은 비석이 있었다

 

성곽밑으로 차도가 있어 보기는 안좋았지만, 어쩔수 없겠지...

 

금서루(錦西樓)는 누 없이 유지만이 남아 성내로 진입하는 차도로 쓰이다가 1993년에 복원되었다. 1861년 간행된 공주의 지지(地誌) <공산지>는 금서루의 규모를 동문과 같은 규모인 정면 3칸, 측면 1칸의 2층 건물이었다고 전한다.

 

금서루 좌측성벽

 

우측성벽인데 보축성곽이 보인다

 

금서루 안쪽모습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본다

깃발이 있으니 더한층 운치가 있다

 

 

성곽이 굽이굽이 돌아있고...

 

 

뒤돌아 본 모습

 

 

추정 왕궁지다

 

추정 왕궁지에는 우물과 쌍수정이 있다

 

우물

 

쌍수정이다

 

종    목 : 문화재자료 제49호 (공주시) 
명    칭 : 공산성쌍수정(公山城雙樹亭) 
분    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조경건축/ 누정 
수량/면적 : 1동 
지 정 일 : 1984.05.17 
소 재 지 : 충남 공주시  금성동 14-4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공주시
관 리 자 : 공주시
상 세 문 의 : 충청남도 공주시 문화재관리소 041-840-2814

 

공산성 진남루 서쪽에 있으며, 조선 영조 10년(1734)에 처음 세운 정자이다. 인조가 이괄이 일으킨 반란(1624)을 피하여 공주로 잠시 피난 왔을 때, 이곳에 머물렀던 일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이후 여러 차례 보수되어 오다 1970년에 전체적으로 해체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다시 성곽을 따라간다

 

진남루가 보인다

 

진남루 안쪽이다

 

종    목 : 문화재자료 제48호 (공주시) 
명    칭 : 공산성진남루(公山城鎭南樓)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시설 
수량/면적 : 1동 
지 정 일 : 1984.05.17 
소 재 지 : 충남 공주시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공주시
관 리 자 : 공주시
상 세 문 의 : 충청남도 공주시 문화재관리소 041-840-2814 

공산성의 출입통로로 이용되고 있는 진남루는 성의 남문에 해당되며, 조선시대에는 삼남(三南)의 관문(關門)이었다.

원래 토성(土城)이었던 것을 석축성(石築城)으로 고쳐 세운 것은 조선 전기의 일이다. 진남루도 그 때 세운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뒤에도 여러 차례 고친 것으로 보인다. 지금 있는 건물은 1971년에 전부 해체하여 원래대로 복원한 것이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으로 장식한 익공 양식으로 꾸몄다. - 문화재청

 

안쪽으로는 쌍수교

 

진남루를 뒤로하고 성곽을 따라오른다

 

 

언덕을 오르자 치성이다

 

 

치성옆에 임류각지다

임류각지는 공산성의 산정에 위치한 광복루에서 서쪽으로 약 150m 정도 떨어진 산의 중턱 서향 사면에 위치한다. 임류각은 삼국시대 백제가 공주로 천도한 후, 약 25년이 지난 백제 제24대 동성왕 22년 (493)에 축조된 것으로 <<삼국사기>>에 기록이 남아있는 건물이다. 1980년의 조사에서 비로소 알려지게 되었다. 조사된 유지는 정비되어 있으며, 건물의 문화적, 학술적 중요성을 감안하여 본래의 유지에서 약간 위쪽에 새로이 복원되어 있다.

 

치성을 지나자 이윽고 동문

 

동문밑으로 사당같이 보이는데, 길이없어 지나쳤다

 

동문이다

 

 

동문지
1980년 조사된 동문지는 길이 6.45m, 폭 2.46m로 밝혀졌으며, 좌우 성벽은 일부만 남아 있었다. 문지 앞쪽에 있는 돌 윗면에는 문설주를 세우기 위한 네모난 구멍과 문을 세우기 위한 둥근 구멍이 뚫려 있다. 이 돌들은 공산성을 쌓던 시기의 것이 아니라 나중에 문을 보수하면서 본래의 문자리에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동문을 언제 만들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백제 토기편들이 출토되어 최초의 건립 연대가 백제시대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밖으로 나가본다

 

영동루라는 현판이 걸려있는데 2009년 공주시에서 공모한 이름이란다

 

동문을 뒤로하고 다시 오른다

 

이곳은 토성구간이다

 

토성이라 산책길 같다

 

왼쪽에 보이는 광복루

 

 

종    목 : 문화재자료 제50호 (공주시) 
명    칭 : 공산성광복루(公山城光復樓)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시설 
수량/면적 : 1동 
지 정 일 : 1984.05.17 
소 재 지 : 충남 공주시  금성동 2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공주시
관 리 자 : 공주시
상 세 문 의 : 충청남도 공주시 문화재관리소 041-840-2814 

 

공산성 안에서 군사가 주둔하던 중군영(中軍營)의 문이었으나 광복 이후 8·15해방을 기리는 뜻으로 광복루라 불렀다.

광복루는 원래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 옆에 있던 것을 현 위치로 옮기고 웅심각이라 불렀는데, 1946년에 백범 김구와 성재 이시영이 이곳에 와서 나라를 다시 찾았다는 뜻을 기리고자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2층 누각으로 모든 면이 개방되어 있으며, 왼쪽에는 오르내릴 수 있도록 층계를 만들어 두었다.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 문화재청

 

 

토성이 한바퀴 돌아간다

 

여기부터 다시 석성인데 앞에 임류각이다

 

임류각

진남문 근처의 임류각지에 있던것을 이리로 옮겨 세운것이다

 

 

임류각(臨流閣)에 대한 조사 결과 초석의 배열은 남쪽열에 6매, 동쪽열에 7매를 배치하여 건물은 남변이 5칸, 동변이 6칸이지만 각각 10.4m ×10.4m의 정방형을 이루고 있다. 건물에 사용된 초석은 총 42매였으나, 현재 남아있는 초석은 31매이고 나머지 11매는 결실되어 있다. 초석의 기본형태는 방형이나 2∼3매의 돌을 합하여 1개의 초석을 이루고 있으며, 고층건물을 세우기 위한 방법으로 초석의 상면에 요철을 주어 기둥이 힘을 받고 밀착되도록 하는 소위 그랭이기법을 사용하였다. 또한 기반이 약한 초석 주위에는 굴건식 원형 주공을 만들어 보조 기둥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임류각지의 조사에서 출토된 유물은 기와가 대부분으로, 단판 8엽의 백제 연화문 와당과 후대의 세판 연화문 와당 등이 출토되었다. 현재 임류각지는 초석을 지상에 노출시키면서 정비가 이루어져 있다. 더불어 임류각에 대한 복원도 이루어져 정면 6칸, 측면 7칸의 이층 형태의 누각 건물이 광복루 아래 광장에 복원되어 있다.

 

 

2층의 기둥은 배흘림 기둥이다

 

 

계단은 좌우로 2개

 

 

임류각을 지나 성곽을 따라간다

 

금강이 보인다

 

성곽이 저기서 돌아가더니

 

다시한번 돌고...

 

뒤돌아 보았다

 

훤히 보이는 금강이다

 

급경사를 그리며 내려간다

 

 

 

 

 

강건너 바라본 모습으로 급경사 구간이다

 

급경사를 내려오니 공산성 연지와 만하루다

 

여기서 성곽은 2중으로 되어있다

만하루로 연결되는 성곽과 뒤쪽으로 이어지는 성곽

 

 

들어가 보자

 

종    목 : 시도기념물 제42호 (공주시) 
명    칭 : 공주공산성연지(公州公山城蓮池) 
분    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조경건축/ 원 
수량/면적 : 1,164㎡ 
지 정 일 : 1982.12.31 
소 재 지 : 충남 공주시  금성동 58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공주시
관 리 자 : 공주시
상 세 문 의 : 충청남도 공주시 문화재관리소 041-840-2814

 

공산성 안에 있는 연못 중 하나이다.

전체적인 모습은 석축을 단이 지게 정연하게 쌓아 동서로 최대 길이 21m, 너비 12m 정도로 위를 넓게 하고, 아래는 최대 길이 9m, 너비 4m로 좁혀 쌓아 석탑을 거꾸로 세워놓은 모양을 하고있다. 서남 방향에는 잘 다듬은 돌 2매씩을 길게 쌓아 10여 개의 계단을 설치하여 출입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였다. 바닥에는 판판한 돌을 깔았고, 동·서벽쪽에는 너비 40㎝의 배수로를 설치하여 물의 흐름을 쉽게 하였다.

 

이 연못은 백제 때부터 계속하여 이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연못에 이를 수 있는 암문(성벽에서 잘 보이지 않는 지점을 택하여 몰래 출입하도록 만든 작은 문)이 발굴되어 산성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 문화재청

 

만하루(晩河樓)다
공산성을 방비하는 군사적 기능과 경승을 관람하는 누각 건물로 조선 후기 영조 시대에 건립 되었으나 그간 홍수로 붕괴 매몰 되었던 것을 1982년 건물터를 발견 하면서1984년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 건물로 중건 하였다. 8각으로 다듬어진 초석과 주위의 기단석 디딤돌은 원형대로 이용하고 건물은 그 당시 대로 복원 하였다

 

 

강 건너서 바라본 만하루

 

수구의 모습

 

뒤에서 바라본 수구인데 마치 암문같다

 

만하루와 연지

 

 

성곽을 따라 오른다

 

뒷모습

 

주춧돌 같은데....

 

다시 내리막이다

 

내려오니 공북루가 보인다

 

 

 

공북루에서 바라본 전망대

 

공북루를 지나면 다시 오르막이다

 

종별 : 충남 유형문화재 37호
소재지 : 충남 공주시 금성동 165
규모 : 정면 5칸 14.84m, 측면 2칸 6.30m
지정일 : 1976-01-08
조성시기 : 조선시대 후기

 

공북루(供北樓)는 공산성이 금강에 임하고 있는 도하(渡河)지점에 세워져 있으며 남쪽에 위치한 진남루에 대하여 북문의 기능을 갖고 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규모가 큰 문루건축이어서 상층에는 루(樓)마루를 깔았고 하층은 통행로로 삼고 있다.

장대석으로 쌓은 낮은 기단 위에 기둥을 3렬로 배열하였는데 북쪽으로 강에 면하고 있는 주열(柱列)에는 팔각주를 사용하고 있다. 기둥 사이에는 문짝을 달지 않았으며 그 대신 자우로 연결된 석축성벽이 북쪽으로 꺾어지면서 주위를 차단하였으며 중앙칸만을 통행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

 

상층 루(樓)마루 4면에는 청판을 끼운 낮은 난간을 돌리고 있을 뿐이며 처마 밑의 결구방법도 공포와 창방(昌枋)을 생략하고 기둥머리고 직접 주심도리를 받치고 있다.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앞 뒤 기둥 위에 대들보를 걸고 그 상부에 주두를 배치하여 종량(宗樑)을 받쳤는데 이 종량 위에 있는 파련대공(波蓮臺工)에는 뜬 창방이 첨가되어 있다.

 

강건너서 바라본 공북루

 

공북루 내에는 각종 편액들로 가득했다

 

 

다시 성곽을 따라 오른다

 

전망대인데 요즘만든 것이다

 

강건너 바라본 모습

 

옛날 배다리터

 

뒤돌아본 공북루 모습이다. 발굴작업이 진행중이었다

 

치성처럼 보이는 성곽을 돌아간다

 

다시 내리막이다

 

맨처음 왔던 금서루가 보이고...

 

전망대엔 공산정이란 현판이 보인다

 

금서루와 성곽

 

공주 공산성은 청주 상단산성과 많이 닮은 느낌이다. 규모며 크기며...

 

지나온 성곽을 바라보며 공산성 답사를 마친다

 

성곽의 아름다움을 보려면 길이 잘 나있는성곽의 여름 녹음이나, 단풍과 어울어진 가을이 좋다 

그렇지 않다면 겨울에 가야한다

공산성, 남한산성, 북한산성....상단산성, 가산산성, 금정산성등은 길이 잘 나있어 언제가도 좋지만, 그렇지 않은 산성은 여름은 피해야한다

뱀이 많고 잡목이 많아 자칫 사고로 연결될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