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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宗廟)

메탈 2009. 1. 29. 13:36

종    목 : 사적  제125호 
명    칭 : 종묘(宗廟)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사우 
수량/면적 : 194,331㎡ 
지 정 일 : 1963.01.18 
소 재 지 : 서울 종로구  훈정동 1-2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국유
관 리 자 : 종묘

 

종묘는 조선왕조의 왕과 왕비, 그리고 죽은 후 왕으로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는 사당이다. 종묘는 본래의 건물인 정전과 별도의 사당인 영녕전을 비롯하여 여러 부속건물이 있다.

태조 3년(1394)에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짓기 시작하여 그 이듬해에 완성되었다. 태조는 4대(목조, 익조, 도조, 환조)의 추존왕을 정전에 모셨으나, 세종 때 정종이 죽자 모셔둘 정전이 없어 중국 송나라 제도를 따라 세종 3년(1421) 영녕전을 세워 4대 추존왕의 신위를 옮겨 모셨다.

 

정전은 1592년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1608년 다시 지었고, 몇 차례의 보수를 통해 현재 19칸의 건물이 되었다. 정전에는 19분의 왕과 30분의 왕후를 모시고 있다. 영녕전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1608년 다시 지었다. 현재 16칸에 15분의 왕과 17분의 왕후 및 조선 마지막 황태자인 고종의 아들 이은(李垠)과 부인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정전 앞 뜰에는 조선시대 83명의 공신이 모셔진 공신당이 있고, 중요무형문화재인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이 전해진다.

 

종묘는 동시대 단일목조건축물 중 연건평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크나, 장식적이지 않고 유교의 검소함이 깃든 건축물이다. 중국의 종묘가 9칸인데 비해 19칸의 긴 정면과 수평성이 강조된 건물 모습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독특한 건축물이며, 동양 고대문화의 성격과 특징을 연구하는데 필요한 귀중한 자료가 담긴 유산이다. 종묘의 정전과 영정전 및 주변 환경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종묘제례와 음악·춤의 원형이 잘 계승되어,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종묘앞의 하마비.

종묘앞을 지나는 사람은 말에서 내려야했다. 1413년(태종13년)부터 시행하였다한다.

 

이 하마비는 1663년(현종4년) 10월에 세운것이란다.

 

그 옆의 어정.

 

 

종묘정문.

종묘의 건물은 소박하여 팔작지붕이나, 우진각 지붕은 없고 거의 맛배지붕 형태다.

 

벽돌로 이어진 길.

외대문을 지나 종묘 안으로 들어서면 거칠고 널찍한 박석(薄石)이 깔린 길이 중앙과 좌, 우로 구분되어 쭉 뻗어 있다. 이 길을 삼도(三道)라고 하며 자세히 보면 가운데 길이 좌우의 길보다 높음을 알 수 있다. 가운데 높은 길은 신(神)을 위한 길이라 하여 신향로(神香路)라고 부르며, 동쪽의 것은 임금님을 위한 길인 어로(御路), 서쪽의 것은 세자로(世子路)라고 한다.

이는 궁궐의 삼도와 형태가 비슷하나 의미와 기능이 다르다. 신향로는 정전 신문을 통해 묘정 월대에 난 신로(神路)에 이어지는데, 신이 다니는 길로 마련되어 신주를 종묘에 모시거나 제사를 위해 향(香), 축(祝), 폐(幣)를 들여 올 때에 이 길을 이용한다. 왕은 동쪽의 어로를, 세자는 서쪽의 세자로를 이용하여 어숙실에 이른다.

 

 

향대청의 망묘루.

 

 

 

 

향대청. 이 안에 제례에관한 전시물이있다.

 

 

 

 

차례의식은 영상물로 설명한다.

 

바깥쪽 모습.

 

이어서 재궁이다.

 

 

 

 

 

문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어재실.

외대문 안에서 삼도를 따라 나아가면 어재실에 닿는다. 재궁(齋宮)인 이곳은 왕이 목욕재계하며, 제례 의복인 면복(冕服)을 갖추는 등의 제례를 행할 준비를 하는 곳이다.

어재실 뜰을 중심으로 북쪽에 왕이 머무는 어재실(御齋室), 동쪽에는 세자를 위한 세자재실(世子齋室), 서쪽에는 왕이 목욕을 하는 어목욕청(御沐浴聽)이 있다. 담장을 따라 다섯 개의 문이 있어 각각의 문으로 드나드는 사람이 달랐음을 볼 수 있다.

 

우측에 세자재실.

 

밖에서 바라본 어목욕청.

재궁은 정면문 외에도 양쪽에 두개씩 총 5개나 되었다.

 

그리고 옆에 정전이다.

종    목 : 국보  제227호 
명    칭 : 종묘정전(宗廟正殿)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사우 
수량/면적 : 일곽 
지 정 일 : 1985.01.08 
소 재 지 : 서울 종로구  훈정동 1-2 종묘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국유
관 리 자 : 종묘

 

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임금의 신위를 모신 곳으로, 정전은 종묘의 중심 건물로 영녕전과 구분하여 태묘(太廟)라 부르기도 한다.

정전은 조선시대 초 태조 이성계의 4대조(목조, 익조, 탁조, 환조) 신위를 모셨으나, 그 후 당시 재위하던 왕의 4대조(고조, 증조, 조부, 부)와 조선시대 역대 왕 가운데 공덕이 있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하는 곳이 되었다. 종묘는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지내는 사직단과 함께 국가에서 가장 중요시한 제례 공간으로, 그 건축 양식은 최고의 격식을 갖춘다.

 

현재 정전에는 서쪽 제1실에서부터 19분 왕과 왕비의 신주를 각 칸을 1실로 하여 모두 19개의 방에 모시고 있다. 이 건물은 칸마다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은 매우 단순한 구조이지만, 19칸이 옆으로 길게 이어져 우리나라 단일건물로는 가장 긴 건물이다. 홑처마에 지붕은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기둥은 가운데 부분이 볼록한 배흘림 형태의 둥근 기둥이고, 정남쪽에 3칸의 정문이 있다.

종묘 정전은 선왕에게 제사지내는 최고의 격식과 검소함을 건축공간으로 구현한, 조선시대 건축가들의 뛰어난 공간창조 예술성을 찾아볼 수 있는 건물이다.

 

 

 

 

문을 들어가면 삼도가 나온다.

참고 - 전돌이란 검정색으로 구워 만든 벽돌, 方傳이란 바닥깔기에 쓰이는 전돌을 말한다.

 

어마어마한 정전. 단일목조건물로는 세계 최고란다.

 

 

 

아마도 햋빛가리개용 천막칠때 사용했슴직한 고리.

 

부알판위는 신주를 모신 가마를 정전까지 가는 도중에 내려 놓아 조상들에게 배알하기 위해 잠시 머무르도록 한 판위를 지칭한다

 

오른쪽에 동문이있는데 임금과 세자가 드나드는 문이란다.

 

정전 뒤쪽.

 

정전 동문. 임금이 다니는 문이다.

어숙실에서 재계(齋戒)를 한 후, 제례 준비를 마친 왕은 어숙실의 서북쪽 협문(夾門)을 통해 어로를 따라 전하판위(殿下版位)에 이르러 잠시 멈추어 제례를 올릴 예를 갖춘 후, 정전의 동문을 통하여 하월대로 나아가 제사의식을 행하게 된다.

전하판위의 바로 옆 북동쪽에는 세자판위(世子版位)가 있다. 가운데가 전하판위(殿下版位), 옆이 세자판위(世子版位)자리.

 

문을 들어가면 정전오른쪽이 나온다.

 

 

정전 정문에서 영녕전 가는길. 앞에보이는것이 악공청.

 

벽돌로 된 칠사당(七祀堂).

정전을 마주보고 서쪽 끝부분에 자리하고 있는 이곳은 일반 백성들의 신앙의 대상이었던 부뚜막 신을 포함하여 모두 7신(神)의 신위판(神位版)이 모셔져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종묘제례 때와 음력 6월 정한 날에 둘 또는 하나의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인간의 운명, 문의 출입, 음식의 일, 거주하는 곳, 성문의 출입, 죽임과 형벌, 도로의 왕래 등을 관장하는 7신들의 위판(位版)을 모시고 제사를 지냄으로써 나라와 백성들의 평안을 기원하였다.

맞배지붕의 간소한 3칸 건물로 3면은 전돌로 벽을 마감하였다

 

악공청.

여기서 악기를 연주한다.

 

 

정전뒤쪽의 굴뚝.

 

정전과 영녕전에있는 부알판위.

 

정전 동문옆에있는 전사청.

제사때 음식을 마련하는곳이다.

 

 

 

찬막단(饌幕壇)

'찬막단(饌幕壇)'은 제례 때 쓰일 음식을 미리 검사하던 단이다.

 

수복방과 찬막단.

 

수복방, 찬막단, 성생위.

성생위는 제사 전날 오후에 왕이 이 판위로 나아가 남향하여 제향에 쓸 희생[제물로 올릴 소, 양, 돼지]의 살찐 상태를 살피는 성생의식을 행하는 성생판위(省牲版位)를 말한다.

 

전사청은 들어갈수가 없었다.

뜰에 절구로 쓰였던 돌이 보인다.

 

제정.

우물이다. 현재는 물이 말라 있었다.

 

 

영녕전으로 향한다.

 

종    목 : 보물  제821호 
명    칭 : 종묘영녕전(宗廟永寧殿)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궁궐 
수량/면적 : 일곽 
지 정 일 : 1985.01.08 
소 재 지 : 서울 종로구  훈정동 2-1 종묘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국유
관 리 자 : 종묘

 

종묘는 조선시대 왕·왕비·공신 등의 신주를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그 중 영녕전은 종묘의 일부로 정전의 서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영녕전을 짓게 된 동기는 시간이 흐르고 죽은 왕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건물을 늘리거나 새로 지어야 할 필요 때문이었다. 이 건물은 세종 3년(1421) 정종의 신주를 종묘에 모실 때 지은 것으로, 태조의 4대조와 정전에서 계속 모실 수 없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옮겨 모신 곳이다.

 

현재 영녕전에는 가운데 4개의 방을 양쪽 옆에 딸린 방들보다 높게 꾸미고, 각 방에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익조, 탁조, 환조와 왕비들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그리고 서쪽 5번째 방부터 16번째 방까지 각각 정종과 왕비, 문종과 왕비, 단종과 왕비, 덕종과 왕비, 예종과 왕비, 인종과 왕비, 명종과 왕비, 원종과 왕비, 경종과 왕비, 진종과 왕비, 장조와 왕비, 의민황태자(영친왕)와 태자비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17세기 중기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이 건물은 제사를 드리는 곳이라는 목적에 맞도록 구조와 장식·색 등이 간결하고 장중한 느낌을 주도록 만들었다. 일부 구조에서는 옛 방식을 따라 입구에 널문을 달고 발을 쳤으며, 건물 안쪽 방 사이에는 담벽을 치지 않고 발을 늘여 나누어 놓았다. 신위를 모시는 집으로 옛 전통을 잘 간직하고 있는 문화재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정전과 지붕형태에서 구분이 된다.

 

 

 

정전과 같은모양의 부알판위.

 

서쪽 문.

 

 

 

 

서문밖에 있는 소악공청.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에서 개최되는 행사로 유형과 무형의 세계유산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문화유산이다. 종묘제례는 왕조의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로 조선왕조의 제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종묘대제(宗廟大祭)라고 한다. 고대중국에서 비롯되어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와 조선조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유구한 역사를 이어 내려온 소중한 조상전래의 제례의식이다. 조선조에는 춘하추동 사계절과 섣달에 행하였으며 1969년 대동종약원에 의해 복원되어 지금은 매년 5월 첫째주 일요일에 봉행되고 있다.

종묘대제에는 종묘제례가 봉행되며 각 제사의례에 맞추어 경건한 분위기를 고양시키기 위한 음악과 무용으로서 종묘제례악이 따른다. 제례는 신을 맞이하는 영신례(迎神禮), 초헌, 아헌, 종헌례에 이어 음복례가 행해지고, 신을 보내 드리는 송신례(送神禮)를 갖춘 후에 축(祝)과 폐(幣)를 망료(望燎) 위에 불사르는 것으로 끝난다. 종묘제례악은 우리 고유의 음률로 왕조의 창업과 기상을 노래하고 있으며 모든 행사의 순서에 맞추어 춤과 음악이 조화를 이룬다. 엄숙한 제사 의례만큼이나 장엄미가 돋보이는 종합예술로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크며 동양에서도 드물게 남아 있는 고전음악이다. - 종묘 홈페이지에서...

 

종묘행사는 일년에 한번있는데, 그때는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사진찍기가 힘들다.

전국의 사진사가 전부 모이는것 같다. 그리고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것도 건물이아닌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