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궁(宮),당(堂),루(樓),정(亭)

담양의 정자 (亭子)

메탈 2008. 11. 19. 12:53

송강정(松江亭) 

종    목 : 시도기념물 제1-2호  (담양군) 
명    칭 : 송강정(松江亭) 
분    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조경건축/ 누정 
수량/면적 : 1동 
지 정 일 : 1972.01.29 
소 재 지 : 전남 담양군  고서면 원강리 274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사유
상 세 문 의 : 전라남도 담양군 문화레저관광과 061-380-3253 


 

송강정은 송강 정철(1536∼1593)이 조정에서 물러나 4년동안 조용히 지내던 정자로, 송강정이라는 이름은 정철의 호인 송강에서 비롯된 것이다. 죽록정이라고도 부르며, 1955년에 고쳐 지었다.

정철은 조선 중기 학자이자 정치가로 명종 16년(1561)에 27세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하였다. 그 뒤로 많은 벼슬을 지내다가 정권다툼으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와 글을 지으며 조용히 지냈다. 그가 송강정에 머물면서 지었다고 하는 『사미인곡』은 조정에서 물러나 왕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여인이 남편과 이별하여 사모하는 마음에 빗대어 표현한 노래이다.

송강정은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앞면에는 ‘송강정’이라는 현판이, 옆면에는 ‘죽록정’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면앙정(俛仰亭)

종    목 : 시도기념물 제6호 (담양군) 
명    칭 : 면앙정(俛仰亭)
분    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조경건축/ 누정 
수량/면적 : 1동 
지 정 일 : 1972.08.07 
소 재 지 : 전남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 402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신평송씨종중
관 리 자 : 신평송씨종중
상 세 문 의 : 전라남도 담양군 문화레저관광과 061-380-3253 

 

면앙정은 중종 28년(1533)에 면앙정 송순(1493∼1582)선생이 관직을 떠나 선비들을 가르치며 여생을 보내던 정자로, 퇴계 이황을 비롯한 유명인사들과 학문에 대해 토론하던 곳이다.

조선 중기 문신인 송순 선생은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거쳤으며, 말년에는 학문에 전념하면서 많은 책을 저술하였다. 처음 있던 정자는 선조 30년(1597) 임진왜란으로 파괴되어, 효종 5년(1654)에 후손들이 다시 지었다.

정자는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면앙정은 간소한 양식의 건물이기는 하지만, 역사적 가치가 커서 중요한 자료가 된다. 

 

 

 

 

 

 

 

 

 

 

 


 

독수정원림(獨守亭園林) 

종    목 : 시도기념물 제61호 (담양군) 
명    칭 : 독수정원림(獨守亭園林) 
분    류 : 자연유산 / 천연기념물/ 생물과학기념물/ 생물상 
수량/면적 : 일원 
지 정 일 : 1982.10.15 
소 재 지 : 전남 담양군  남면 연천리 산91 
시    대 : 고려시대
소 유 자 : 사유
관 리 자 : 천안전씨종중
상 세 문 의 : 전라남도 담양군 문화레저관광과 061-380-3253 

 

독수정원림은 고려 공민왕(재위 1351∼1374) 때 병부상서를 지낸 전신민이 고려가 망하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은거하면서 지었다는 독수정이라는 정자 주위의 숲을 가리킨다. 독수정이란 이름은 이태백의 시에서 따온 것으로 은거하며 생활하는 선비의 고결한 뜻을 나타낸 것이다.

이곳에는 느티나무, 회화나무, 왕버들, 소나무, 참나무, 서어나무 등의 오래 된 나무들이 심어져 있고, 독수정 앞뜰에는 자미나무, 매화나무, 살구나무, 산수유나무 등이 심어져 있어 속세를 떠난 느낌을 준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전신민은 대나무와 소나무를 심어 수절을 다짐했다고 한다. 또한 독수정의 방향은 북쪽으로 향해있는데, 이는 아침마다 북쪽 송도(지금의 개성)를 향해 탄식을 하며 절을 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독수정원림은 조경적인 측면에서 볼 때 고려시대에 성행했던 산수원림으로서의 기법을 이 지역에 들여오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주변의 다른 정자에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지금의 독수정은 1972년에 허물고 새로 지은 것이기 때문에 기념물로 지정되지 못하였고, 그 주변의 노거수원림이 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명옥헌원림(鳴玉軒苑林) 

종    목 : 시도기념물 제44호 (담양군) 
명    칭 : 담양후산리명옥헌원림(潭陽后山里鳴玉軒苑林) 
분    류 : 자연유산 / 천연기념물/ 생물과학기념물/ 생물상 
수량/면적 : 일원 
지 정 일 : 1980.06.02 
소 재 지 : 전남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 513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사유
관 리 자 : 오영희
상 세 문 의 : 전라남도 담양군 문화레저관광과 061-380-3253 

 

이곳은 오희도(1583∼1624)가 자연을 벗하며 살던 곳으로, 그의 아들 오이정이 1652년 무렵에 명옥헌이라는 정자를 짓고 정자의 앞뒤로 네모난 연못을 파 주위에 꽃나무를 심어 아름답게 가꾸었던 이름난 정원이다. 명옥헌이라는 이름은 이곳의 물 흐르는 소리가 옥이 부딪치는 소리와 같다고 하여 붙여졌다.

명옥헌은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정원 안에는 배롱나무와 붉은 소나무가 심어져 있고 연못 위쪽의 시냇가에는 ‘명옥헌 계축’이라고 새겨진 바위도 눈에 띈다.

담양 후산리 명옥헌정원은 다른 곳에서는 보기 드문 구조를 가지고 있어 조선시대 중엽의 정원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식영정(息影亭)

종    목 : 시도기념물 제1-1호  (담양군) 
명    칭 : 식영정(息影亭) 
분    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조경건축/ 누정 
수량/면적 : 1동 
지 정 일 : 1972.01.29 
소 재 지 :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 산75-1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사유
관 리 자 : 영일정씨종중
상 세 문 의 : 전라남도 담양군 문화레저관광과 061-380-3253 

 

식영정은 서하당 김성원이 그의 장인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로, 조선 중기 학자이자 정치가인 정철이 성산에 와 있을 때 머물렀던 곳 중의 하나이다. 『서하당유고』의 기록에 따르면 명종 15년(1560)에 지었다고 한다.

김성원은 송강 정철의 처가쪽 친척이며, 송강이 성산에 와 있을 때 함께 공부하던 동문이다.

정철(1536∼1593)은 명종 16년(1561)에 27세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하였다. 그 뒤로 많은 벼슬을 지내다가 정권다툼으로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에 내려와 이곳 식영정을 무대로 하여 많은 선비들과 친분을 나누었으며, 시문을 익히고 『성산별곡』 등의 문학작품을 지었다.

식영정은 앞면 2칸·옆면 2칸의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한쪽 귀퉁이로 방을 몰아 붙이고 앞면과 옆면을 마루로 한 것이 특이하다.  

 

 

 

 

 

 

 

 

서하당(棲霞堂),부용당(芙蓉堂)

식영정 옆에는 1973년에 《송강집(松江集)》의 목판을 보존하기 위한 장서각을 건립하였으며 1972년에는 부속건물로 부용당(芙蓉堂)을 건립하고 입구에 《성산별곡》 시비를 세웠다. 주변에는 정철이 김성원과 함께 노닐던 자미탄(紫薇灘) 노자암 견로암 방초주(芳草州) 조대(釣臺) 서석대(瑞石臺) 등 경치가 뛰어난 곳이 여러 곳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광주호의 준공으로 거의 물 속에 잠겨버렸다.

서하당(棲霞堂)은 식영정 뒤편에 있었던 석천 임억령의 숙식처였다고 한다. 김성원이 지은 서하당유고(棲霞堂遺稿)에 의하면 1560년에 김성원이 건립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서하(棲霞)는 노을의 집이란 뜻으로 식영(그림자가 쉬고 있다)과 같은 뜻이다. 이는 어지러운 속세를 떠나 자연을 벗삼아 소요의 세계를 지향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이 서하당이 어느 때인가 소실되어 오다가 몇 년 전에 복원됐는데 복원된 서하당의 위치는 식영정 왼쪽 편에 자리하고 있다.

 

서하당과 부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