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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연미정 (燕尾亭)

메탈 2008. 11. 18. 17:31

종    목 : 시도유형문화재 제24호 (강화군) 
명    칭 : 연미정(燕尾亭) 
분    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조경건축/ 누정 
수량/면적 : 1동 
지 정 일 : 1995.03.02 
소 재 지 : 인천 강화군  강화읍 월곶리 242 
시    대 : 고려시대
소 유 자 : 회산남용
관 리 자 : 회산남용
상 세 문 의 : 인천광역시 강화군 문화관광과 032-930-3626

 

자연경관을 보며 풍류를 즐기거나 학문을 공부하던 정자이다. 한강과 임진강의 합해진 물줄기가 하나는 서해로, 또 하나는 강화해협으로 흐르는데, 이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고 해서 정자 이름을 연미정이라 지었다고 한다. 언제 처음 지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나 고려 고종(재위 1213∼1259)이 사립교육기관인 구재(九齋)의 학생들을 이곳에 모아놓고 공부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조선 중종 5년(1510) 삼포왜란 때 큰 공을 세운 황형에게 이 정자를 주었다고 한다. 인조 5년(1627) 정묘호란 때에는 강화조약을 체결했던 곳이기도 하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연미정은 강화십경의 하나로서 뛰어난 경치를 이루고 있다.

 

연미정은 월곶돈대 안에있다. 

 

 

 

 

 

 

 

문수산이 보이고...저산에 문수산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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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자의 초창연대(初創年代)는 확실치 않으나 고려(高麗) 고종(高宗)이 구재(九齋)의 학생을 이곳에 모아 놓고 면학(勉學)케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 뒤 조선시대(朝鮮時代) 황형(黃衡)이 국가에 공로(功勞)가 많아 조정에서 세워 하사(下賜)하였다 한다. 장무공(莊武公) 황형은 중종(中宗) 5년(1510) 삼포왜란(三浦倭亂) 때 방어사(防禦使)가 되어 왜적을 무찌르고 그후 도총관(都摠管)을 거쳐 중종 7년(1512) 함경도(咸鏡道)지방의 야인(野人)이 반란을 일으키자 순변사(巡邊使)가 되어 이를 진압하였으며, 공조판서(工曹判書)에 이르렀다. 이곳은 한강(漢江)과 임진강(臨津江)이 합류하여 한 줄기는 서해(西海)로, 한 줄기는 강화해협(江華海峽)으로 흘러 그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 하여 연미정이라 부른 것이며, 높은 석주 위에 세운 팔작집으로 영조(英祖) 20년(1744) 중건(重建)하였고, 고종(高宗) 28년(1891) 중수(重修)한 후 수차 보수(補修)되었다. 인조(仁祖) 5년(1627) 정묘호란(丁卯胡亂) 때에는 강화조약(講和條約)을 체결(締結)한 곳이기도 한다. -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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