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시도유형문화재 제20호 (강화군)
명 칭 : 용흥궁(龍興宮)
분 류 :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인물기념/ 생활유적
수량/면적 : 1동
지 정 일 : 1995.03.01
소 재 지 : 인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441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염국명
관 리 자 : 강화군
상 세 문 의 : 인천광역시 강화군 문화관광과 032-930-3626
조선 제25대 왕인 철종(재위 1849∼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으로 철종이 왕위에 오르자 강화유수 정기세가 건물을 새로 짓고 용흥궁이라 이름을 붙였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고, 지붕을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용흥궁은 청덕궁의 연경당, 낙선재와 같이 살림집의 유형을 따라 지어져 소박하고 순수한 느낌이 든다. 경내에는 철종이 살았던 옛 집임을 표시하는 비석과 비각이 있다.
아주 좁은 골목안에있어, 일반가정집과 큰 차이가 없었다.
대문을 들어가니 안채가 보인다.
안채 옆으로 사랑채 들어가는 문이다. 저리로 먼저 가본다.
집구조가 대원군 별장과 비슷하다.
문을 들어가니 오른쪽에 사랑채.
왼쪽으로는 비각있는 문이다.
哲宗朝暫邸舊基碑閣(철종조잠저구기비각)
청종이 이곳에서 19세까지 살았단다.
다시 사랑채로 나온다.
사랑채옆에있는 또하나의 문이다.
우물.
안채앞에있는 행랑채.
안채모습.
행랑채 담장.
이와같이 좁은골목이라 강화군에서 아예 입구를 뒤쪽에다 만들어 놓았다. 용흥공원이다.
굴뚝이 경복궁에 있는것과 똑같다.
용흥궁 담장.
용흥궁(龍興宮)은 조선 제25대 철종이 왕이 되기 전에 거처하던 잠저(潛邸)이다.
왕세자와 같이 정상법통이 아닌 다른 방법이나 사정으로 임금으로 추대된 사람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을 잠저(潛邸)라고 한다.
조선의 영조,정조때까지는 왕권과 신하의 바란스가 잘맞아, 국가의 위상이 제대로 갖추어져있었으나, 정조이후 안동김씨의 세도정치에 나라가 파탄나고만다. 철종이야말로 안동김씨 일가에의해 꼭두각시가 되버린 비운의 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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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은 조선왕조 제 25대 왕(재위 1849~1863)으로, 1844년 가족과 함께 강화에 유배되었다가 1849년 궁중에 들어와 이듬해 헌종의 뒤를 이어 즉위했다.
왕이 되기 위한 제왕학을 전혀 배우지 못한 채, 타인에 의해서 왕으로 옹립되어 세도정치에 기한번 못피고 사라진 비운 왕으로 일컬어지는 철종.
헌종 승하시 대왕대비는 23대 순조의 정비였던 순원왕후 김씨로 안동김시 김조순(金祖淳)의 딸이었으며, 대왕대비 김씨의 동생은 김좌근으로 직책은 수원유수였지만 영수답게 왕실의 족보책을 뒤져 미리 강화도령을 점지하고 있었던 것이며, 계획대로 강화도령이 보위에 오르자, 이번에는 안동 김씨의 여식 김문근(金汶根)의 딸을 왕비(哲仁王后 김씨)중전으로 삼아 철종은 그야말로 김좌근의 입맛에 맞았던, 무지하여 좋았고 천애의 고아였기때문이다.
즉위 후 대왕대비 김씨가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였으며, 1851년 대왕대비의 근친인 김문근(金汶根)의 딸을 왕비를 삼았다. 문근은 국구(國舅)로서 정권을 장악,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절정에 달하였다.
1852년부터 왕의 친정(親政)이 시작되었으나 정치에 어둡고, 김씨 일파의 전횡(專橫)으로 삼정(三政)의 문란이 극도에 달하여 극심한 민생고를 유발, 경상도 진주(晉州), 함경도 함흥(咸興), 전라도 전주(全州) 등지에서 대규모의 민란이 일어났다. 조정에서는 속출하는 민란을 근본적으로 수습하려는 의욕조차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이 같은 사회정세에서 최제우(崔濟愚)가 주창한 동학사상은 학정에 허덕이는 민중 속으로 놀라운 속도로 파급, 새로운 세력으로 확대되었으며, 만민평등을 주장하는 천주교의 사상도 일반 민중은 물론 실세(失勢)한 양반층에까지 침투되어 확고한 기반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철종은 결국 재위 14년간 세도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색에 빠져 정치를 바로잡지 못한 채 병사하였다. 능(陵)은 예릉(睿陵:高陽)이다. - 네이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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