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궁(宮),당(堂),루(樓),정(亭)

문의 문화재단지 (文義文化材團地)

메탈 2008. 9. 26. 04:54

청원군이 대청댐 건설로 수몰되어 사라질 위기에 있는 향토유물과 문화유적을 전승 보전하기 위해 지난 1997년 조성한 문의문화재단지는 수심 80m의 거대 호수 대청호에 묻힐 뻔한 우리 전통문화라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수몰민의 삶의 흔적을 간직한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대청호에서는 빼 놓을 수 없는 비경으로 탁 트인 시야가 마치 산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것 같은 시원함을 주는데 해질 무렵 호수위에 내려앉은 노을은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 황홀하기까지 하다.

1만3000여m²의 대지 위에 민가 5동, 관아건물 1동, 성곽 및 성문 1개소, 유물전시관 1개소 등이 조성되어 있는 이곳은 사라져가는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재현해 선조들의 얼을 기리고 배우기 위한 역사교육장으로 가족단위 관광객과 학생들의 체험학습장으로 연중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입구다. 

문화재단지가 자리잡은 양성산(養性山)에는 신라 자비왕 17년(474)에 세운 양성산성이 있는데, 그것을 인용하여 양성문을 세웠다.

하지만 입구로세운 양성문은 조선시대 양식이다.

 

석축이나 여장, 미석등 제법 성곽의 형태를 갖췄다.

 

 

그러나 눈에보이는것이 전부였다.

 

안쪽모습이다.

 

 전형적인 조선시대 모습이다.

 

 

밖으로는 대청호가 시원스레 보이고...

 

극히 일부지만, 여장의 모습도 잘 꾸며놓았다.

 

 

 

 입구 오른쪽에 돌탑들이 서있고, 이 계단위로 민화정(民和亭) 이라는 한칸짜리 정자가있다.

 

민화정(民和亭)

하지만 이 정자는 옛것이 아니라 요즘만든 정자다.

 

 

다시 계단을 내려와 큰 길을 걷는다.

원두막같은 정자가 보인다.

 

 

수몰지구에서 옮겨온 학평리 고인돌.

 

문의 토담집

문의문화재단지 조성공사시 1995년에 중부지방 토담집을 재현하여 건립한 초가집으로 건물의 방의 전면에는 마루를 설치하지 않고 봉당을 설치하였고 부엌 옆에 측간(화장실)을 두었고 땔감을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인 헛간을 두어 겨울철에 사용하기 편리하게 하였다.

현재 대장간으로 사용중이며, 각종 철물을 제조 판매하고있었다.

 

 

 

문의 주막집 

이 초가는 중부지방에 남아있던 주막집을 원래의 모습대로 현 문의문화재단지에 재현한 것이며, 건물의 방향은 남향이며, 나그네들이 잠시쉬면서 술을 마실수 있는 공간이 대문의 우측에 배치되어 있으며, 측간은 안채의 좌측 후면에 위하여져 있다. 장독대는 건물배면 우측의 한 자리를 차지하여 배치하여져 있다.

 

 

 

청원문산리석교(淸原文山里石橋) 

종    목 : 시도유형문화재 제222호 (청원군) 
명    칭 : 청원문산리석교(淸原文山里石橋) 
분    류 : 유적건조물 / 교통통신/ 교통/ 교량 
수량/면적 : 1기(基) 
지 정 일 : 2003.04.11 
소 재 지 : 충북 청원군  문의면 문산리 산6-1 
시    대 : 고려
소 유 자 : 청원군
관 리 자 : 청원군
상 세 문 의 : 충청북도 청원군 문하공보과 043-251-3057 

 

청원 문산리석교는 원래 대청댐 수몰전에는 문의초등학교 정문에서 남쪽으로 100m 전방에 있던 것인데 1980년 대청댐 건설로 문의면 미천리에 문산관과 함께 이전하였다가 2002년 3월 문의문화재단지로 재이전하였다.

이 석교에 대한 문헌은 조선 헌종 초기에 편찬된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에 처음으로 나온다. 축조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되는데 교각내에 을묘이월(乙卯二月)이라는 각자가 남아 있다.

교각 상판은 2.5m×0.3∼0.9m 규모의 화강석과 청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총 10개이며, 석주는 1.3m의 화강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판의 장대석(長臺石)은 장축을 남북으로 하여 2매씩 연결하여 놓고 동서로 5매씩 연접하여 마루식으로 만들었다. 남북 장축 중간에 동서로 교각이 받치고 있으며, 석재의 크기는 일정치 않다. 또한 석재(石材)는 거친 다듬하였으며, 석주(石柱)를 갖춘 시렁교이다.

이 석교는 역사도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충청북도 내에서도 옥천청석교, 진천농교, 청주 남석교(南石橋)와 함께 몇 기 남아 있지 않은 귀중한 석교이다.

석교의 구조는 하부에 석주를 세우지 않고 통돌을 사용하여 교각의 역할을 하고, 멍에석을 가구하고 상부에 넓은 석판재로 덮어 마감하였다. 특히 청주 남석교보다 훨씬 고식기법을 사용하였으며 형태는 매우 안정되어 보이고 구조적 균형감이 잡혀 있어 문화재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객사 가는길에 넓찍한 잔디 야외공영장의 모습도 보인다.

 

객사 문산관(文山館) 

종    목 : 시도유형문화재 제49호 (청원군) 
명    칭 : 문산관(文山館)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관아 
수량/면적 : 1동 
지 정 일 : 1978.02.22 
소 재 지 : 충북 청원군  문의면 문산리 산6-1 
시    대 : 조선
소 유 자 : 국유
관 리 자 : 청원군
상 세 문 의 : 충청북도 청원군 문하공보과 043-251-3057 

 

조선시대 문의현의 객사이다. 지방 관리들이 임금의 궐패를 모시고 한달에 2번씩 궁궐쪽을 향해 절을 올리고, 중앙에서 관리가 내려오면 숙소로 머물던 곳이다.

언제 지었는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문의구지』에 따르면 현종 7년(1666) 현령 이명하가 옮겨지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현재의 건물은 1979년 대청댐 건설로 인하여 부속건물과 함께 지금의 자리로 옮겨 옛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총 앞면 10칸·옆면 3칸 규모의 건물로, 앞면 3칸·옆면 3칸의 본 건물에, 앞면 3칸·옆면 3칸 및 앞면 4칸·옆면 3칸의 건물을 양쪽에 붙여 지은 것이다. 건축재료와 건축수법에서 건축시기의 차이가 나타나며, 이러한 형태의 건축은 전주객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객사에서 보이는 대청호의 모습이다. 

 

 

 

 

 

 


 
청원부강리민가(淸原芙江里民家) 

종    목 : 시도유형문화재 제221호 (청원군) 
명    칭 : 청원부강리민가(淸原芙江里民家) 
분    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수량/면적 : 2동(棟) 
지 정 일 : 2003.04.11 
소 재 지 : 충북 청원군  문의면 문산리 산6-1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청원군
관 리 자 : 청원군
상 세 문 의 : 충청북도 청원군 문하공보과 043-251-3057


이 집의 안채는 조선시대 후기 건물로 부용면 부강리 김종철(金鍾喆)씨가 살던 고가를 이전 복원한 것으로 ‘ㄱ’자집 형태의 목조기와집이다. 광채는 지붕을 얇은 판석으로 덮은 돌기와집(석와가(石瓦家))형태로 중부지방의 산골부락에 많이 있었던 형태이다. 가옥의 구조는 안채가 ‘ㄱ’자형태의 목조와가이고 광채는 ‘一’자 돌기와집이다. 1995년 문의문화재단지가 조성되면서 현위치로 이전 복원하였다.

 

1982년 전국 취락 및 전통가옥(민가)조사 기록대장에 의하면 1950년대까지 거주하였던 송동촌씨의 3대 선친이 건축했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건립년대는 확인할 수 없다. 현재는 문의문화재단지 내에 ‘ㄱ’자형 몸채와 대문채가 이건되었다. 그러나 1982년 조사기록대장의 사진에 의하면 대문간채가 없었으며 건물로 진입하는 입구의 방향도 사랑방쪽으로 배치되어 있어 현 상태와는 다른 분위기였을 것이다. 특히 집을 진입하는 방향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문화재단지의 조성과정에서 원형대로 배치하기가 곤란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사랑방 쪽은 우진각 지붕이고 안방 쪽 날개채는 맞배집 형태이다.

건축의 형식은 일반 서민민가 중에서 전통 기와집의 형식이며 구조양식이 민도리 3량구조로 아담하고 소박한 민가 주택으로 문화재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단지내에있는 장승들.

 

문의현의 옛비석

관찰사나 현령들의 비석으로 공덕비,선정비에 해당된다.

 

 

청원관정리민가(淸原官井里民家) 

종    목 : 문화재자료 제38호 (청원군) 
명    칭 : 청원관정리민가(淸原官井里民家) 
분    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수량/면적 : 2동(棟) 
지 정 일 : 2003.04.11 
소 재 지 : 충북 청원군  문의면 문산리 산6-1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청원군
관 리 자 : 청원군
상 세 문 의 : 충청북도 청원군 문하공보과 043-251-3057

 

이 민가는 조선시대 후기 건물로 낭성면 관정리의 신방호(申邦浩)씨가 살던 가옥을 원래의 모습 그대로 이전 복원한 집으로 전형적인 중부지방의 초가이다. 가옥의 구조는 ‘一’자집 형태의 안채와 대문이 있는 광채가 있다.

상량문이 없어 정확한 건립연대는 파악할 수 없으나, 조선후기 건물로 추정된다. 현재의 건축은 1992년 문의 문화재단지를 조성하면서 1994년 관정리에서 이건(移建)하였으며, 당시 소유자인 신병호씨의 증언대로 5대조가 대대로 살아온 집이라고 하면 최소 200여 년 전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건축의 양식은 당시 부농이 주택으로 초가집의 가구구조보다는 건실한 부재를 사용하였으며 세부 치목 또한 매우 정교하고 평면구성도 5칸 집으로 전형적인 충북의 민가건축의 몸체 형식이고 대청에 신주를 모셔둘 신주 함을 만들어 설치하였다. 당시의 초가집에 비해 매우 건축적 특징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대문간채와 광채는 안채와 담장 사이에 대문간채가 따로 있었으나 이전하면서 대문간채를 별도로 건축하지 않고 광채와 같이 ‘ㄱ’자집으로 건축하였다. 이는 문화재단지의 지형적인 조건에 맞추어 건축되면서 변형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부농의 주택으로 초가집의 가구구조보다는 건실한 부재를 사용하였으며 세부 치목 또한 매우 정교하고 전형적인 충북의 민가건축으로 당시의 초가집에 비해 매우 건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양반가옥(兩班家屋)

중부지방 양반이살던 가옥으로 사대부에 가까은 건축구조로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로 구분된다.

 

 

 

 

 

 

 

정자의 모습을 보이고있다.

 

 

 

 

청원노현리민가(淸原盧峴里民家) 

종    목 : 시도유형문화재 제220호 (청원군) 
명    칭 : 청원노현리민가(淸原盧峴里民家) 

분    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수량/면적 : 3동(棟) 
지 정 일 : 2003.04.11 
소 재 지 : 충북 청원군  문의면 문산리 산6-1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청원군
관 리 자 : 청원군
상 세 문 의 : 충청북도 청원군 문하공보과 043-251-3057

 

이 민가는 조선시대 후기 건물로 문의면 노현리 이양훈(李讓勳)씨가 살던 가옥을 이축한 것으로 당초에는 강릉김씨(江陵金氏) 김승지(金承旨)의 종가(宗家) 댁이었다.

가옥의 구조는 안채가 ‘ㄱ’자 형태의 목조와가(木造瓦家)이며 광채와 사주문(四柱門), 측간(厠間)은 목조초가이다. 광채는 ‘一’자 집이다. 1993년 문의문화재단지가 조성되면서 현위치로 이전 복원하였다.

이 민가는 1980년 6월 전국 취락 및 전통가옥(민가)조사 기록대장에 의하면 약200년 전에 지었으며, 엄씨, 김씨가 살다가 연안 이씨가 입주후 이성훈씨가 살았다고 한다. 또한 조사 당시에 안채, 사랑채, 곳간, 축사 등 4채의 전통기와집이었다고 조사되어 왔다. 문의문화재단지가 조성되면서 이건하여 재건축되었으며 현재는 ‘ㄱ’자형 안채와 ‘1’자형의 대문간 및 곳간, 축사로 건축되어 있으며 사랑채는 건축되지 않았는데 이건하는 시기에 사랑채가 소실된 것으로 추측된다. 안채의 평면형식은 충청지역 민가의 특징을 갖추게 구성되어 있고 건축의 가구기법은 일반민가보다 세부분까지 정교하게 가공되었다. 또한 이전과정에서 안채의 지붕의 합각부분이 조금 높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안채의 평면형식은 충청지역 민가의 특징을 갖추게 구성되어 있고 건축의 가구기법은 일반민가보다 세부분까지 정교하게 가공되어 문화재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밖으로 나오니, 다시한번 우리의 장승모습이다.

 

한가지 아쉬웠던점은  문화단지내에 조각전시를 같이하고있었다. 

옛문화단지내에, 현대조각...맞지않은 설정이다.

너무 많은것을 보여주려고 억지로 구겨넣은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몽촌토성에도 그러한 예가 있지만, 문화는문화 조각전시는 조각전시..각자 컨셉에맞는 영역으로 각자의 길을 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