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하고, 한국미의 발견에 평생을 바친 故 최순우 선생의 옛집이다. 명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산실(産室)이기도 하다. 우리의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유산, 그리고 역사적 인물의 흔적을 미래세대에 영원히 남겨주기 위하여 2002년 한국내셔널트러스트와 시민들에 의해 보전된 우리 모두의 문화유산이다 .
시민 문화 유산은 우니나라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풍광, 역사적 문화 유적 등 우리의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해주어야 할 미래새대의 것을 선정해 보전운동을 하는 단체다.
故최순우 선생(1916~1984)은 전 국립박물관장이며 미술사학자로서 한국 문화재에 대한 깊은 애정과 뛰어난 안목으로 그 아름다움을 찾고 보존하는 데 일생을 바쳤던 분이다.
최순우옛집은 최순우 선생이 돌아가실 때까지 지내셨던 고택으로 성북동의 집들이 양옥화 되는 추세에 따라 허물게 될 위기에 처했으나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회원들의 모금으로 매입 복원되었다.
문으로 들어서자마자 작은 정원이다.
집이 켤코 크다고 말할수는 없는관계로, 이런 작은공간에 정원가지 두다니..좀 답답한 느낌은 있다.
집 구조는 ㄱ 과 ㄴ이 합쳐진 ㅁ의 형태다.
집 뒤쪽으로, 오히려 뒤뜰에서 넉넉한 한국의 정서를 느낀다.
그의 서재로쓰였던 공간.
한옥에서 느끼는 각자의 느낌은 모두 다르겠지만, 나는 이런면에서 한국의 정서를 느낀다.
서울시 홈페이지에있는 글로 마감한다.
골목길 초입에 유일하게 남은 한옥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옥 특유의 반쯤 열린 대문을 통해 보이는 안채의 모습이 정겹다. 아주 오래된 향나무가 마당 한가운데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다. 그러고 보니 한용운 선생의 심우장(尋牛莊)에 갔을 때도 마당 한 쪽에 향나무가 있었다. 크지 않은 마당과 앉아 쉬기 좋은 툇마루. 우물과 뒤뜰로 나 있는 작은 길. 일부러 화려하게 멋 내지 않고 그렇다고 빈약하지도 않은 소박함.
뒤뜰로 난 작은 길로 발길을 잡는다. 박석(薄石) 같은 큼지막한 돌들을 이정표 삼듯 바닥에 깔아 놓았다. 앞마당에 처음 들어섰을 때는 단출한 소박함에 약간 실망을 했는데, 뒤뜰에 도착하고서야 왜 최순우 선생을 최고의 심미안으로 꼽는지 알 수 있었다.
앉는 이를 겸손하게 맞아주듯 낮게 배치되어 있는 툇마루. 그곳에 앉게 되면 작은 문신석들이 초록빛 녹음 속에 숨어 보는 이와 숨바꼭질을 한다. 담 위에 넝쿨을 튼 담쟁이들 밑으로 탐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는 장독대와 기단 위에 올려진 큼지막한 백자 항아리. 아름다운 평화로움이다.
“한국적 아름다움”
자주 쓰는 말이지만 곰곰이 그 뜻을 생각해보면 아리송한 점이 있다. ‘중국’ 하면 일단 대륙적 기질에서 나오는 웅장함, ‘일본’ 하면 작고 아기자기한 디자인을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적인 아름다움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성북동에 가면 그 해답이 있다. 국립박물관장을 지낸 故 최순우 선생의 옛집에 가면 무엇이 한국적인 아름다움인지 확연하게 느끼게 된다. 우리에게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로 잘 알려진 선생은 아름다운 것을 볼 줄 아는 심미안을 소유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가 생의 마지막까지 기거하던 성북동 옛집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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