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궁(宮),당(堂),루(樓),정(亭)

성락원 (城樂園)

메탈 2008. 9. 29. 17:27

종    목 : 명승  제35호 
명    칭 : 성락원(城樂園) 
분    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수량/면적 : 14,407㎡ 
지 정 일 : 2008.01.08 
소 재 지 : 서울 성북구  성북동 2-22번지 등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주)등부산업
관 리 자 : 성북구

 

조선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장이었으나, 의친왕 이강(1877∼1955)이 35년간 별궁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물이 흐르는 경치에 따라 세 개의 공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자연 지형으로 앞뜰, 안뜰, 바깥뜰로 나눌 수 있다. 앞뜰은 두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쌍류동천과 안뜰 앞을 막아 아늑하게 감싸 만든 용두가산이 있다. 물줄기 속 암벽에 행서체로 새긴 ‘쌍류동천’이란 글은 성락원의 자맥을 보호하는 뜻도 있다고 한다. 또한 쌍류동천 주위와 용두가산에는 200∼300년 되는 엄나무를 비롯하여 느티나무, 소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다래나무, 말채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루어 안뜰과 성락원 바깥을 가려주는 구실을 하고 있다.

안뜰은 영벽지와 폭포가 있으며 바깥뜰은 송석과 연못이 있는 지역이다. 서쪽 아래 지역에 늪이 있고, 북쪽에는 물길을 파서 인공폭포를 만들었다. 늪의 서쪽 암벽에 ‘장빙가(檣氷家)’라고 새긴 글씨는 명필 추사 김정희 선생의 것이다.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져 그 아름다움을 맘껏 뽐내고 있는 성락원은 조선시대 서울 도성 안에 위치한 몇 안되는 별서정원의 하나로 가치가 크다.

 

성락원은 거의 자연적인 지형 그대로를 살려 건물을 배치하였으므로 도심속의 청류(淸流)를 즐길 수 있다. 정문을 들어서면 북한산 구준봉(拘 峰)에서 내려오는 두 갈래 개울물이 암벽 사이에서 합쳐지는 쌍룡동천(雙龍洞天)이 나타나고 다리를 건너면 깊숙한 내원(內園)이 들여다 보이지 않도록 인조 동산인 용두가산(龍頭假山)을 조성해 놓았다.

이 저택은 진입공간·본원공간·심원(深園)의 세지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지형에 따라 성격이 뚜렷하다. 먼저 쌍룡동천(雙龍洞天)·용두가산(龍頭假山)으로 이루어진 진입공간은 자연스레 구성된 수풀과 Y자형의 개울 그리고 인공적인 석가산이 교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다음에 본재누각(本齋樓閣)·영벽지(影碧池)로 이루어진 본원공간은 생활·수학·수양의 기능을 수용한 공간으로 여러 채의 건축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본재누각만이 남아있다. 영벽지는 인공이 가해진 자연 연못의 진수(眞髓)를 보여 여기에 비치는 그림자는 공간의 깊이를 더해 준다.
이어서 수각정·연지(水閣亭, 蓮池)·약수터로 이루어진 심원은 건물군 뒤의 후원과 같은 곳으로 암반을 막아 만든 연못이 있다. 이 연못에는 잉어들이 떼를 지어 몰려 다니며 그 연못가에는 정자각 형태의 11칸 짜리 건물인 송석정(松石亭)이 높다랗게 세워져 있어 아름다움을 더해주는데 이 정자 안에는 노송이 지붕을 뚫고 서 있어, 지붕 위에 나무 그늘이 지는 것을 피해왔던 오랜 관습을 타파하고 있다.


성락원은 지금은 개인소유라,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있다.

성북구의 문화답사 프로그램참여로 겨우 들어갈수 있었다.

 

문을열고 들어가자 석등이 바라보인다. 

 

입구에 쌍류동천이있고, 쌍류동천 위로 길이 나있다.

 

입구아래 개천에 써져있는 쌍류동천(雙龍洞天) 음각.

 

담장이 옛 성곽형태를 보인다.

 

용두가산(龍頭假山)이다.

쌍룡동천(雙龍洞天)을 지나 다리를 건너면 인공으로 만든 동산인 용두(龍頭) 가산(假山)이 나타난다. 용두 가산(假山)은 정원을 조성하면서 만든 것으로 성락원의 지맥을 비보(裨補)하는 뜻도 있지만 영벽지(影碧池) 앞을 감싸서 본원이 보이지 않게 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본원의 아름다움을 숨기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 보인다. 용두 가산은 기능적인 면과 조형적인 아름다움이 어우러진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용두가산가는곳에 석등.

 

옆의건물인데 원래는 성락원건물이었다.

지금은 개인소유로 넘어가서 들어갈수가 없는데, 개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로 사용되고 있다고한다.

즉, 외국귀빈을 모시는곳으로 하루 숙박료가 천만원에서 이천만원 정도 한다고하니...

 

 

 

영벽지(影碧池)다.

영벽지(影碧池)는 본원(本園) 공간에 있는 연못이다. 인공이 가해진 자연 연못의 진수(眞髓)를 보여 주고 있으며, 영벽지에 비치는 그림자는 연못의 아름다움을 더해 주고 있다. 이렇게 그림자를 연못에 비치게 하는 것은 동양 정원 건축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정자의 기둥이 서있던 흔적인지....

 

영벽지에는 바위에 글자가 많이 새겨져있었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장빙가(檣氷家)라 새겨저있다.

 

용두 가산을 지나면 본원 공간인 본재(本齋) 누각(樓閣)이 나타난다. 본원 공간에 있는 유일한 건물인 본재 누각은 생활과 수양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건물은 'ㄴ' 자형으로 되어 있다. 

이곳도 성락원 건물이었는데, 또다른 개인소유로 넘어갔단다.

 

드디어 송석정(松石亭)이다.

송석정은 후원에 있는 정자(亭子)이다. 일반적으로 정자는 원형이나 팔각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성락원의 정자인 송석정은 11칸 방형 중층 건물로 되어 있다. 송석정 안에는 노송(老松)이 지붕을 뚫고 서 있는데, 이것은 지붕 위에 나무 그늘이 지는 것을 꺼려 왔던 관습을 깨뜨리는 것이다. 이곳은 선비들의 연회장으로 사용되었고, 일제 말기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53년에 복원하였다.

 

원래는 정면이 11칸이었는데, 나무가 지붕을  뚫고지나가 7칸으로 줄였다고한다.

 

 

뒤쪽모습으로 입구부분이다.

 

 

북한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

 

 

 

왜 현판을 걸지 않았나 모르겠다. 건물 밑에 놓여있었다.

 

 

 

그리고 건물 위쪽 개울가 바위에도 새겨져있는 글자. 아마 추사 김정희의 글이 맞을것이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성락원은 서울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조선시대 정원이다.

건울이 모두 개인소유로 넘어가, 조각나버린 상태로 옛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우리의 옛 정원은 지방에서나마 볼수있다는것에 만족해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