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사적 제446호
명 칭 : 영월정양산성(寧越正陽山城)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
수량/면적 : 118,637㎡
지 정 일 : 2003.06.02
소 재 지 : 강원 영월군 영월읍 정양리 산1-1외 8필
시 대 : 삼국시대
소 유 자 : 국유, 사유
관 리 자 : 영월군
영월 정양산성은 남한강에 돌출된 정양산(正陽山, 해발 430―565m)의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이 성은 삼국이 한강유역을 놓고 각축전을 벌이던 5세기말∼6세기초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 전기까지 계속 사용되었던 중요한 산성이다. 영월 정양산성은 고려 공양왕 2년(1390)까지 정양역이 존재, 교통로의 요충지로 추정된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둘레 798보(步), 성안에 샘이 하나 있고, 창고(倉庫) 5칸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석축, 둘레 2,314척, 높이 19척’이라 기록되어 있다.
『관동지(關東誌)』에는 ‘정양산성(부(府) 동쪽 10리, 석축, 둘레 2,314척, 높이 19척)’이라는 기록이 있다.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정양산고성(正陽山古城)(둘레 2,314척)’이라는 기록이 있다. 영월 정양산성의 둘레는 1,630m로 내성의 둘레는 1,060m, 외성의 둘레는 570m이다. 내성 최대높이는 11.5m에 달하며, 보은의 삼년산성(사적 제235호), 단양적성(사적 제265호), 단양온달산성(사적 제264호) 등과 매우 유사한 구조를 보이며, 성벽의 규모에서 뿐만 아니라, 곡성(曲城)의 존재와 현문식(懸門式)의 문터 구조, 성벽 외측 하부의 보축의 존재에서도 서로 유사한 점을 지니고 있다.
외성은 고려시대 이후 내성의 수용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서 많은 부분을 천연의 절벽을 성벽으로 삼고, 필요한 부분에 인공의 성벽을 축조하는 등 응급적인 상황에서의 축조되는 중세(中世)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영월 정양산성은 5세기말∼6세기초에 걸쳐 축조된 한강 상류지역 요충지역에 위치한 산성으로 성벽과 문터, 곡성과 치성(雉城), 그리고 후대에 외성과 차단벽을 갖춘 유일한 산성으로 보존상태도 양호하여 역사상·학술상 가치가 있다.
영월발전소에있는 주차장에 주차하니, 등산로옆에 정양산성길이 따로 있었다.
정종대왕 태실비를 지난다.
특이한것은 땅이 검은색이다.
별로 사람이 다닌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가느다란 오솔길을 30여분 올라가니 산성이 보인다.
산성까지 그리 높지않았으나, 30 여분을 조용히 산책하듯 걸었다.
호젓한 산성길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걸으며 생각나는건, 과연 정양산성은 어떤 산성일까?..하는 호기심이다.
산성 입구다.
성곽이 낮아서, 그리 기대가 크지 않았다.
오른쪽으로 한바퀴 돌아보기로 하였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않은 옛모습 그대로인 상태였다.
성곽위로 올라섰다.
양 옆이 잡목이라 달리 방법도 없었다.
이끼를 보니 사람들이 별로 다닌것 같지가 않다.
전형적인 삼국시대 축조방식이 보인다.
허물어져있는 언덕을 오른다.
잡목을 헤치고 밖으로 나가보니. 옛성곽의 허물어진 모습이다.
성 안쪽모습이고....
무너진 성곽위를 걸으며, 성곽길 산책만으론 좀 무료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잡목을 헤치고 밑으로 내려가 보았다.
밑에서 바라보니..너무도 멋진 성곽이다.
잡목에 가려서 다가갈수도 , 더 진행할수도 없어 아쉬웠다.
다시 성곽위를 걷는다.
오른쪽으론 낭떠러지같은 성곽인데 볼수가없으니 답답했다.
무너진 부분이 있길래 다시 밑으로 내려가 보았다.
역시나...
천오백년의 세월을 꿋꿋이 버텨온 성곽이다.
이걸 보수해서 뭣하나..이것 자체가 살아있는 역사인것을..
좀더 올라가니, 문이있던곳 같다.
이 성은 현문식이라 사다리를 이용하는 문이다.
그래서 사다리없이 밑으로 내려가기가 어렵다.
가까스로 아래로 내려가니, 성곽의 모습이 다시 보인다.
거대한 성곽과 그 축조상태를 볼수가 있었다.
다만 날이 너무 어두워, 셔터스피드를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이것도 양호한 편이다.
문 옆모습으로 성곽의 두께를 느낄수있다.
성 안쪽은 그리 높지가 않다.
계속 성곽이 산을따라 올라가는데, 과연 천 오백년전에 이것을 어떻게 쌓았는냐 하는것이 머리속을 맴돈다.
카메라와 물통하나 들고도, 이렇듯 가파른 산성을 힘들게 오르는데...
성곽위에서 본 남한강의 조망이 좋았다.
단면이 예리한걸보면 이곳도 문이있던 자리 같았다.
밖으로 나가보니,성곽모습이 당당하게 산위로 뻗혀있었다.
무너져도 멋진모습이다.
게속 위로 향한다. 이런 험준한 산에 산성을 쌓은, 우리 선조들의 기운이 느껴지는듯 하다. 산성치고는 상당히 가파른곳에 있다.
성 안쪽모습.
드디어 제일 높은 곳이다. 여기서 성곽이 방향을 틀어 아래로 내려간다.
무너진 틈으로 밖으로 내려가 보았다. 높이 6-7m정도의 성곽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아래로 힘차게 뻗어간다.
다시 올라와 밖으로 나가니,옹성형태의 정상이다. 이곳서 성곽바깥으로 따라가 보았다.
엄청 높은 성곽이다. 그 오랜세월을 잘 버틴것은, 그 축조기술에 있었을까?
무너진 틈으로 성곽을 오르면서 본 왼쪽 모습이다.
오른쪽 모습이고...가장높은곳은 10m가 넘는단다.
|
다시 무너진 틈으로 성곽을 오르며 좌우를 확인해본다. 밑에서 바라볼수있는 기회가 별로 없어서이다.
무너져도 멋진, 무너져서 가치있는..그런 성곽이다.
성곽위를 오르니, 뒤로는 아까 옹성형태의 성곽이 있던곳이고.. 여기서 성곽이 한바퀴돌아 아래로 향한다.
앞의 내리막은 길이 좋았다.
곳곳이 무너진곳이 보이지만, 너무 가팔라 아래로 내려갈순 없었다.
얼마를 내려가니 문이보인다.
현문식이라 사다리없이는 내려갈수가 없다. 할수없이 카메라를 밖으로 쑥 내밀어, 사진을 찍어 보았다. 성곽상태가 좋다.
문의 옆모습으로 그 두께가 두터웠다.
여기서 90도 꺾이며 아래로 향한다.
다시 문이있는 흔적이다.
날도 흐리고, 나침판이 없어 방향을 가늠하기가 어려웠지만 북쪽이다.
성곽이 아래로 내려간다. 안쪽의 높이가 이정도면 밖은 더 높지 않을까?
처음 장소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북쪽으로 들어와서, 서쪽을 향해오른후 남쪽정상을한바퀴돌아 내려온것이 되겠다.
입구쪽은 평지로 되어있는데, 설명에는 여기에 궁터등 건물이 있었단다.
내려온 성곽모습으로 여장의 흔적이 있다.
여장이다.
여기 설명에는 고구려 미천왕때 산성이라니..1,700년의 세월속에 지금 남아있는 모습이었다. 정양산성은 여기선 왕검성으로도 불리운다. 주차장엔 왕검성 주차장으로 쓰여져있을 정도니...
정양산성은 보수나 복원이 전혀안된, 옛모습 그대로의 산성이다. 나의 바램이라면, 이 산성을 보수하지말고, 따로 산성탐방로를 만들어 안에서, 밖에서 산성을 바라볼수있게끔 하는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보수나 복원은 더이상 무너지지 않게끔 하는것을 지침으로삼으며 말이다. |
'우리의 산성(山城),읍성(邑城)'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창 무장읍성 (茂長邑城) (0) | 2008.04.09 |
---|---|
태안 백화산성 (白華山城) (0) | 2008.04.07 |
단양 적성산성 (赤城山城) (0) | 2008.03.29 |
문경 고모산성 (姑母山城) (0) | 2008.03.22 |
오산 독성산성 (禿城山城) (0) | 2008.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