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산성은 신라 8대 아달라왕 3년(서기 156)에 신라와 고구렬를 연결하는 계림령도(지릅재길)를 개통한 후 이 지역이 군사적 요충지로 인식된 삼국시대 초기에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며, 성벽은 사방에서 침입하는 적을 모두 방어할 수 있도록 지형에 따라 높낮이를 맞추어 성벽 안쪽을 쌓은 협축식과 바깥쪽 만을 쌓은 편축식으로 축조하였고 길이가 1,300m에 이르는 성벽으로서 규모가 크고 보존이 잘 되어 있다.
고모산성은 본성 1,256m, 익성 390m를 합해 총 1,646m에 이르는 산성으로 서벽은 사방에서 침입하는 적을 모두 방어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축조연대는 156년 이후, 2세기말경으로 추정된다. 고모산성 서문지는 진남휴게소 북단에서 산성내로 오르는 소로길이 개설되어 있던 곳으로 성외에서 가장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지점이다. 남문지는 성내로 진입하는 정비도로가 있던 곳이며, 동문지, 북문지와 성벽을 볼 수 있다.
진남휴게소에서 100여미터를 오르면 바로 진남문이다.
안내지도를 보니 고모성에는 익성(翼城)인 석현성(石峴城)이 붙어있는데, 이 진남문은 석현성의 문이다.
석현성에 대한 기록은『嶺南邑誌』에 있는『聞慶邑誌』에서이다.
고종 30년인 1893년에 문경부사인 김정근이 진남문이란 문루를 6칸 규모로 신축한 것이며, 성벽의 길이가 385파(把)라 하였다. 이후 없어진 것에 대하여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석현성의 성곽이 고모성에 연결되어있다.
복원된것이지만, 여장도 잘 나타나있다.
안쪽모습으로, 고모성으로 향한 육중한 석현성 성곽모습이다.
안에서 바라본 진남문이다.
이 안내도를 보며 답사계획을 세운다.
남문지로 가서, 서문지-북문지- 동문지로 한바퀴 돌아본다.
스카이뷰
이 고모산성은 계곡 회랑에 버티어 선 철옹성 같은 위용으로 임진왜란 당시 파죽지세로 서울로 진격하던 왜군을 성을 지키는 군사 없이 만 하루 동안이나 지연시킨 곳으로 1592년 5월 왜군은 60만 대군으로 부산포(釜山浦)를 점령 순식간에 경남북 일대를 짓밟고 빠른 속도로 서울을 향해 진격을 계속했다.
왜군의 선발대가 영남과 충청도 경계지 인 문경 땅에 도착한 것은 부산포(釜山浦) 상륙 후 7일 만이었다.
소서행장이 지휘하는 주력부대는 당교(唐橋 : 현재 점촌 모전)에 진을 치고 장병들을 휴식시키면서 침공 이후 처음으로 험난한 고지 조령(새재)을 넘어갈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조령은 산세가 험난하기로 유명하지만 서울 수비의 1차 관문이기도해 결사적인 방어가 예상되는 곳이었다. 깎아지른 듯한 암벽산으로 겹겹이 둘러쳐져 있는 문경 땅은 현 전체가 한 개의 거대한 요새처럼 험난했다. 조령을 넘기 전 거쳐가야 하는 긴 계곡 화랑도 왜군의 진격을 막는 장애물이었다.
고모성 부근 계곡 사이로 흐르는 대천(大川)을 끼고 뱀이 기어가듯 뚫어져 있는 소로는 군마 두어 필이 겨우 빠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험했다. 이 계곡을 가로막고 있는 능선에 오래된 고성 하나가 울창한 숲에 가려 보일 듯 말 듯 숨겨져 있었다. 이 석성(石城)에 매복병을 숨겨 기습한다면 아무리 강한 왜군이라도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천연의 요새였다.
소서행장은 정예병을 뽑아 문경 입구 계곡 회랑을 확보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계곡을 수색하던 왜병 선발대는 요란하게 군기를 휘날리며 길목을 차단하고 있는 견고한 석성(石城)을 발견, 그 위용에 압도당해 진군을 멈추어야 했다. 선발대는 계곡 맞은 편 산을 우회해서 석성(石城)을 깨뜨린 후에야 대군의 진격이 가능하다는 보고를 했다. 다음날 왜군이 성 밑에 이르렀으나 군기만 나부끼고 성 위에 까마귀가 나는 것을 보고는 빈 성임을 알고 고모산성을 통과했다고 한다.
또한 이 고모산성은 동학란 때 의병장 운강(雲崗)이 왜군과 만 이틀 동안 격렬한 싸움을 벌여 수 백 명의 왜군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현재 이성 아래는 계곡, 위로는 잘 포장된 국도가 서울까지 연결되고 있다. 국도 양편에는 기암괴석으로 뒤덮인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대천(大川) 위로 모양을 부린 진남교가 계곡을 이어 놓고 있어 고모산성과 함께 어우러져 경북팔경의 하나로 절경을 자랑하고 있다. 한 많은 수난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온 1천 여 년 전의 고성은 오래 전부터 돌보는 이 없이 서서히 원형을 잃어가고 있다. 3m 너비의 성벽은 허물어지고 남은 부분이 적으며 성안의 건물지 등은 농지를 개간하여 원형을 찾을 길 없다.
복원된 성안의 주막거리다.
진남문에 올라서서 고모산성으로 향한다.
깔끔하지만, 복원된거라 생기가 없다.
그래도 고모산성과 석현성의 분위기는 알수가있다.
우물터다.
안쪽에서 본 모습으로, 협축식 성곽모습이다.
밖은 당연히 높이가 높고...
익성(翼城) 석현성(石峴城)의 모습을 잘 말해주고 있다.
가까이서 본 고모산성은 그 웅장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아직도 국가 지정물로 되어있지 않단다.
밖에서 본 성곽은 그 높이가 6-7m는 되어보였다.
그것이 옆으로 길게 뻗어있었다.
끝까지 가보려 했으나, 잡목과 급경사에 그만 두었다.
다시 남문지로 돌아오며,그 위용을 실감한다.
성곽밑의 보축성벽이 눈에보인다.
멀리 진남교반이 멋지다.
석현성이 끝나는 부분에, 영남대로의 가장 험난한곳이라는 토끼벼루의 모습도 보이고...
외롭고 든든한 진남문...이 표현이 나에게 가장 와 닿는다.
고모산성 남문이다.
그 규모에 압도당했다.
필요할때만 사다리를 이용해 드나드는 현문(懸門)식 문이다.
이것이 투석용 몽돌무지인가보다.
안쪽모습으로, 서문방향으로 따라가본다.
뒤돌아보니 복구안된 동쪽 성곽모습이 보인다.
배드민턴 쳐도 될만큼 성곽위가 넓었다.
성곽을 따라가본다.
아까 이 밑으로 지나 갔었다.
옥색의 영강과 성곽이 너무도 멋지다.
복원은 여기까지며, 무너진 서문쪽이다.
오른쪽의 공터가 신라시대 목조건물이 발견된 장소다.
"고모산성 서쪽 문 터 주변을 발굴 중인 중원문화재연구원(원장 차용걸 충북대 교수)은 10일 “성의 안쪽에서 상중하 3층으로 이뤄진 지하식 목조 건축 구조물을 발굴했으며 함께 출토된 토기로 보아 5세기 전반 신라 때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서문이다.
오랜세월을 잘 버틴구간도 보이고, 오른쪽 끝에 두개의 수구문이 보인다.
문 안쪽모습.
문 밖에서 본 성곽이다.
수구문이 입구와는 달리, 출구는 그 높낮이 위치가 다르다.
이것도 투석용 몽돌무지 모아놓은 것인가보다.
수구문, 입구쪽은 나란한데, 출구는 그렇지가 않았다.
성곽을 따라 북쪽으로 가본다.
뒤돌아본 모습이다.
보은의 삼년삼성을 연상케 한다.
길 옆으로 산성이지만 잡목때문에 갈수가 없었다.
그냥 산책용으로 아주좋은.. 그런 길이다.
옆으로 잡목을 헤치고 보니, 성곽 흔적만 느낄수 있었다.
능선에는 성곽이 남아있는 구간도 꽤 된다.
나뭇가지 사이로 반대편에있는, 고모산성성곽이 뱀처럼 보인다.
북문지.
여기도 허물어져서 형태는 알아보기 힘들었다.
90도로 꺾이며 동문지로 내려선다.
동문지와 남문이 한눈에 보인다.
동문지다.
그냔 평범한 시골길같이 보인다.
일부 성곽도 보이고....
남문으로 돌아오니...복원된부분, 복원예정인 부분, 옛 성곽과 무너진 부분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시 남문으로 내려가 성황당쪽으로 향했다.
성황당.
무슨 제사를 준비하는것 같았다.
진남문 뒤로 주막거리다.
전시용이 아니라, 실제로 주막역할을 하면 좋았을것을...
진남문에서, 영남옛길쪽으로 가본다.
200-300 미터까지 복원되어있었고, 그다음은 옛 성곽이었다. 산위로 뻗어있었다.
옛 성곽밑으로는, 그 유명한 영남옛길 토끼벼루다.
토천,관갑천 이라고도하며,관갑원터 아래쪽에 있는 길. 길이 약 2㎞ 되는데, 톳재이(토끼)만 다닐 수 있을 만한 배리(벼랑)로 된 좁은 길로서, 고려 태조가 신라를 치러 가는데, 이곳에 이르러 길을 잃고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산토끼 한 마리가 달려가는 것을 보고 그 토끼를 따라 길을 찾았다 한다.
수백년간 사람들이 다녀서인지, 바위가 반질반질했다.
손대보니 여간 매끄러운게 아니다.
하지만 토사에 무너져 더이상 갈수가 없었다.
바위가 반질반질한 영남 옛길이다.
다시 진남문으로 돌아간다.
이번엔 성곽 밑으로 가본다. 사람키를 넘는 높이로 여장의 흔적이있다.
진남문을 나서며 고모산성 답사를 마친다.
이 정도 규모가 아직 국가 지정물이 안되어있다는것을 어떻게 설명할수 있을까?
그럼 그동안 무슨 예산으로 성곽을 보수했단 말인가? 문경시 자체예산으로는 힘들었을텐데..하는생각으로 문을 나선다.
고속도로 타기전에, 주흘산이 멋지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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