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시도기념물 제10호 (중구)
명 칭 : 보문산성(寶文山城)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
수량/면적 : 7,180㎡
지 정 일 : 1989.03.18
소 재 지 : 대전 중구 대사동 산3-45
시 대 : 백제
소 유 자 : 국유
관 리 자 : 중구
상 세 문 의 : 대전광역시 중구 문화공보과 042-606-6284
보문산의 남쪽 해발 406m의 산정상부에 보문산성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 산성은 역사지리적<歷史地理的>관점에서 일찍부터 학자들의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즉 백제시대 말기 신라와의 전투가 치열하던 시기에 축조<築造>된 산성으로서 성둘레가 300여m에 불과하지만 인근의 산성들과 쉽게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기때문에 중요시되어 왔던 것이다.
보문산성 발굴조사시 산성의 동쪽 성벽 아래에서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의 문화층<文化層>이 발견되었으며, 민무늬토기(무문토기<無文土器>) 파편과 덧띠토기(점토대토기<粘土帶土器>) 파편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청동기시대의 유물<遺物>이 해발 400m가 넘는 산꼭대기에서 나온 것은 매우 특이한 현상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청동기시대 후기(기원전 300년~100년)의 산상주거지 유적<山上住居地 遺蹟>으로 추정하고 있다. 보문산성의 성벽은 자연지형에 따라 간단하게 가공한 네모지게 생긴 석재<石材>를 사용하여 적심방법(<積心方法> : 돌채움방법)으로 축조하였는데, 동북부의 암반으로 형성된 급경사면은 성벽을 쌓지 않았고, 성벽의 바깥면은 조금씩 안쪽으로 둘려 쌓아 성벽이 쉽게 허물어지지 않도록 하였으며, 발굴조사 당시 가장 잘 남아있던 서남쪽 성벽은 16단으로 3.42m에 달하였다. 또한 발굴조사 결과 남문터<南門址>가 확인되었으며, 현재의 주된 통행로인 북문<北門>이 고려시대에 성문폭을 좁혀 사용되었던 것도 알게 되었다.
보문산은 대전 시내에 위치하며, 등산로,산책로가 잘 발달되어있어 사람들이 무척 붐볐다.
약 한시간을 오르니 호젓한 오솔길끝에 산성이 자리한다.
서문이다. 북쪽에 위치하며,주된통로로 이용되고있다.
문지(門址)는 서문지와 남문지 2개소가 있다. 서문지는 주출입문으로 북벽에 붙여 설치했고, 서문지와 연접한 남벽과 북벽은 암반 위에 내외협축(內外夾築)했다. 북벽의 상부폭은 7.5m이며, 남벽의 기저부폭6.9m·상부폭6.2m X 현존높이1.8m(8단)이었다. 서문지 문폭은 최대 5.5m∼최소 4.5m인데, 후대 문폭은 1.4m로 좁혀 사용했다. 서문지 특징은 고식(古式) 옹성형태(甕城形態)에 있다. 즉 문을 들어서면 북벽의 내벽과 연결된 암벽(현존높이 1.1m)이 진로를 차단하며, 문지의 우측인 남쪽 통로로 진입하도록 시설했던 것이다. 문지의 외벽부터 암벽까지 거리는 8.6m이며, 고저차는 2.27m로 완만한 경사를 이룬다. 이 통로에서 차단시설은 발견되지 않았다.
입구를 들어서니 장대지(將臺址)다.
계족산,식장산을 잇는 능선상에있어, 전략상 요충지임을 알수가있다.
안에서 본 서문모습이다.
옹성모습의 문이 인상적이다.
성곽이 장대지를 빙 돌아간다.
동쪽은 낮고, 서쪽은 매우 높게 쌓아져있었다.
장대지(裝臺址)
성곽의 총 길이가 280m밖에 되지않아, 아담한 산성이라 할수가 있다.
보문산성의 성벽은 자연지형에 따라 간단하게 가공한 네모지게 생긴 석재(石材)를 사용하여 적심방법(積心方法 : 돌채움 방법)으로 축조하였다한다.
서문으로 이어진다.
보문산성에는 북문과,서문이 있다.
마치 아담한 정원 같았다.
동쪽성곽은 사람키 정도로 쉽게 오르내릴수있는 높이다.
동벽 가운데 잔존상황이 양호한 부분은 13단 250㎝의 높이를 나타낸다. 기초석으로부터 4단은 외면을 수직으로 축조했으나, 5단부터는 조금씩 물려쌓아 홀형[圭形]을 이루고 있다. 또한 적심에서 성벽까지의 최장수평거리는 5.4m이다. 성밖의 기저부는 성벽기초를 보호할 목적 때문에, 성벽에 붙여 폭 30∼80㎝ 정도 넓이에 납작한 돌을 깔았다.
남쪽은 그보다 높게 쌓여져있다.
서문에서 북쪽성곽으로 이어지며 높이가 더 높아진다.
동남벽은 산능선의 연결선상에 있는 까닭에, 총길이45m X 폭5.7m를 협축했다. 성 내외벽의 지반차이는 1.3m에 이르며, 내벽은 현재 5단의 층수에 높이 93㎝이다. 또한 동남벽 밖에는 외황(外隍)을 설치했다. 산성가운데 성벽의 잔존상황이 가장 양호한 곳은 서남벽인데, 16단의 층수에 3.42m의 높이를 나타내고 있다.
뒤를 돌아본 모습이다.
성곽을 내려서봤다.
거의 20단 규모로 4-5m는 되어보였다.
성곽사이로 소나무가 멋지게 서있다.
다시 북문이다.
이제까지 본 성중에 그규모가 가장 작은것 같았고, 정비도 잘 되어있었다.
북문을 나서며 보문산성 답사를 마친다.
마지막으로 보문산성에서 한가지 특기할 사실은 선사유구가 검출되었던 점이다. 산성 동벽단면의 확인을 위해 트렌치를 성벽에 직교하게 설정했을 때, 급경사 생토면(生土面) 위에 청동기시대 문화층이 5㎝∼30㎝ 두께로 불규칙하게 쌓여 있었다. 바로 이층에서 민무늬토기편과 덧띠토기편이 출토되었다. 민무늬토기편은 바리모양그릇[鉢形土器]의 납작바닥과 동체부편이었으며, 덧띠토기편은 괴정동출토품과 달리 덧띠의 중간중간을 손으로 눌러 붙인 것이다. 이같은 성격의 덧띠토기는 보령(保寧) 교성리(校成里)집자리나 대구 연암산 청도의 사촌리유적에서도 출토한 바 있어, 청동기시대 후기의 문화양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특히 유적입지의 위치로 보아 보령 교성리의 고지성취락(高地性聚落)과 유사하다. 따라서 보문산성의 선사유구도 그 편년과 성격에 있어 보령 교성리집자리와 같은 것으로 추정된다.- 대전시 향토사료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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