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전시장

경희궁은 살아있다

메탈 2016. 1. 20. 10:33

 경희궁은 서울의 5대 고궁 중 하나다. 그럼에도 원래의 모습과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경복궁, 덕수궁에 비하면 위치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만큼 경희궁은 관심 밖이었다.

경희궁은 선조의 다섯째 아들인 정원군의 집터에 왕의 기운이 있다는 이유로 광해군이 몰수해 1623년(광해군 15)에 완공됐다. 정원군의 장남인 인조가 왕위에 올랐으니, 왕기가 있다는 전설이 들어맞은 셈이다. 이곳은 인조 이후 철종까지 10대에 걸쳐 궁궐로 영화를 누렸다. 정조가 즉위하면서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외친 곳이기도 하다. 처음엔 경덕궁으로 불렀으나, 1760년(영조 36)에 ‘기쁨이 넘치고(慶) 빛난다(熙)’며 경희궁이라고 개칭했다. 특히 영조의 경희궁 사랑은 각별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비운의 궁으로 전락했다. 1865년 고종 대에 경복궁 중건 때 대부분 헐려 건축 자재로 활용됐다. 게다가 국운을 없앤다는 목적으로 일제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혔다. 1910년엔 일본인 관료 자녀들의 학교인 경성중이 들어섰고 총독부 관사로도 이용됐다. 특히, 정문인 흥화문은 일제가 1932년 남산 자락에 만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추모 사찰인 박문사(博文寺) 절문으로 썼다. 광복 후 신라호텔로 바뀌면서 호텔 정문으로 이용되다 1994년 경희궁으로 돌아왔다. 어전회의가 열렸던 숭정전은 일제가 조계사에 팔아 옮겨졌다가 지금은 동국대 정각원 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제는 또 왕의 침전인 회상전을 부수고 지하벙커를 만들었으나 복원하지 못하고 현재 창고로 쓰고 있다. 광복 후 서울고가 1946년 개교돼 학교 건물로 사용하다 1980년 서울 서초동으로 이전하자 서울시가 이 터의 일부를 매입해 공원을 조성하면서 부분 복원됐다. 그러나 예산부족으로 복원사업은 중단된 상태다.

경희궁 안에 있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내년 3월 13일까지 경희궁의 옛 모습과 변화상을 담은 ‘경희궁은 살아 있다’ 특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이를 계기로 경희궁이 새삼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나아가 조선 정치의 1번지였던 경희궁의 복원 사업은 계속돼야 한다. 경복궁 등 다른 고궁들처럼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관리도 필요하다. 그래서 이름 그대로 ‘기쁨이 넘치고 빛나는 궁’으로 새롭게 태어나길 기대한다. 옛것을 지키는 것이 문화 경쟁력을 키우는 일이다. - 문화일보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

 

 

경희궁의 옛모습과 현재모습이 모형으로 전시되어있었다.

인왕산 한양도성 바로옆에 위치한 경희궁

 

경복궁이 불탄후 동궐인 창덕궁와 더불어 화려한 시절이었던 서궐 경희궁

 

 

 

현재의 모습으로 초라하기 짝이없다. 95%가 소실된 경희궁.

 

 

 

유일하게 남아있는 경희궁.

 

경희궁의 연혁

 

 

경희궁의 흔적

 

 

 

 

임어한 왕들

 

 

 

 

 

 

 

 

 

 

 

 

 

 

 

 

 

 

 

 

모니터에서 경희궁의 모습을 3D로 생생히 보여준다.

 

 

서궐도

 

경희궁의 자세한 설명

 

 

 

 

 

 

 

 

 

 

 

 

 

 

 

 

 

 

 

 

 

 

 

 

 

 

경희궁지의 이후방향

 

 

 

 

 

 

 

 

 

 

 

 

 

 

 

 

 

 

 

 

경희궁의 유물

 

 

 

 

 

 

 

 

 

 

 

 

 


조선의 아픔을 가득담고있는 경희궁의 모습이었다. 

후기조선을 좋아하지 않지만, 어쩌겠나?  우리의 역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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