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궁(宮),당(堂),루(樓),정(亭)

대구 관풍루 (觀風樓)

메탈 2015. 11. 15. 05:39


종 목 :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호 

명 칭 : 관풍루 (觀風樓)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관아 

수량/면적 : 1동

지정(등록)일 : 1982.03.04

소 재 지 : 대구 중구 달성동 294 달성공원 

시 대 : 조선시대

상 세 문 의 : 대구광역시 중구 문화공보실 053-661-2171


옛날 경상감영의 정문으로, 조선 선조 34년(1601)에 세웠다.

관풍루의 원래 이름은 ‘폐문루(閉門樓)’로 새벽 5시에 문을 열고 밤 10시에 문을 닫는 풍악을 울렸다고 한다. 이름을 바꾼 것은 감사가 이 건물 위에서 세속을 살핀다고 하여 붙인 것이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2층 누각이며,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이다. 건물 4면에는 난간을 설치했으며, 뒤편으로는 계단을 만들어 오르내릴 수 있도록 하였다. - 문화재청

 

관풍루는 원위치에서 이동되어 대구 달성공원 안에있다.

비가내려 사진찍기가 곤란한 상황이지만 언제 다시올지 알수 없으므로 비를 쫄딱맞고 달설공원입구로 향한다.

 

경상감영이란 위풍당당한 건물들이 거의 없어지고 오직 이 문루가 당시의 영화를 알려주는것 같다.

망한 조선의 쓸쓸한 옛 자취이기도 하다.

 

 

지붕에 잡상이 보인다.

궁에서나 사용하는 잡상을 올린것으로보아 경상감영의 위세를 알수있다.

 

옆면모습 

 

 

건물을 벽돌위에 세운것이 특징.

 

영남포정사란 현판도 보인다.

 

참고로 경상감영의 옛 모습모형

정문인 관풍루가 앞에 보인다.

 

중삼문 뒤에있는 징청각과 선화당이 현재 감영공원에 남아있다.

 

관풍루의 옛모습. 관풍루뒤에 중삼문이 보인다.

일본이 없앤것은 비단 건물만이 아니다. 우리의 민족혼도 함께 말살한것이다.


참고로 관풍루에대한 설명이다. 전문용어가 많아 이해하기 힘든부분이 많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이며, 겹처마 팔작지붕집으로 화강암 외벌대에 전(塼)을 깐 기단 위에 세워졌다. 하층은 어칸이 양협칸보다 넓으며, 상층은 통간을 우물마루로 꾸미고, 사방에 30cm폭의 쪽마루를 돌출하여 계자난간(鷄子欄干)을 돌렸다. 상층에는 배면 어칸 바로 앞에 1칸 크기로 반 칸 너비의 나무계단 18단을 설치하여 오르내릴 수 있도록 하였다. 지붕의 내림마루에는 잡상(雜像)이 장식되었다.

구조양식은 화강암 정평주춧돌 위에 둥근 기둥을 세우고 주두(柱頭)와 함께 연화를 투각한 앙설(仰舌)과 돋을새김을 한 쇠서 및 봉두가 장식된 이익공양식이다. 상층의 가구(架構)는 5량가(五樑架) 대들보 위에 대접받침을 얹고, 초각한 양봉과 첨차 및 소로를 결구하여 각기 보와 종도리 및 장여를 받도록 하였다. 천장은 연등천장이고, 단청은 모로단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