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보물 제213호
명 칭 : 삼척 죽서루(三陟 竹西樓)
분 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조경건축/ 누정
수량/면적 : 1동
지 정 일 : 1963.01.21
소 재 지 : 강원 삼척시 성내동 9-3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국유
관 리 자 : 삼척시
이 건물은 창건자와 연대는 미상이나 <동안거사집>에 의하면, 1266년(고려 원종 7년)에 이승휴가 안집사 진자후와 같이 서루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것을 근거로 1266년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뒤 조선 태종 3년(1403)에 삼척부의 수령인 김효손이 고쳐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누(樓)란 사방을 트고 마루를 한층 높여 지은 다락형식의 집을 일컫는 말이며, '죽서'란 이름은 누의 동쪽으로 죽장사라는 절과 이름난 기생 죽죽선녀의 집이 있어 ‘죽서루’라 하였다고 한다.
규모는 앞면 7칸·옆면 2칸이지만 원래 앞면이 5칸이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도 천장의 구조로 보아 원래 다른 형태의 지붕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지만 재료 형태는 다른 양식을 응용한 부분이 있다. 또한 기둥을 자연암반의 높이에 맞춰 직접 세운 점도 특이하다.
이 누각에는 율곡 이이 선생을 비롯한 여러 유명한 학자들의 글이 걸려 있다. 그 중 ‘제일계정(第一溪亭)’은 현종 3년(1662)에 허목이 쓴 것이고,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는 숙종 37년(1711)에 이성조가 썼으며 ‘해선유희지소(海仙遊戱之所)’는 헌종 3년(1837)에 이규헌이 쓴 것이다.
주변 두타산의 푸른 숲, 삼척시의 서쪽을 흐르는 오십천이 내려다 보이는 절벽 위에 있어 예로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 문화재청
오십천 절벽위의 죽서루
다른 관동팔경의 누, 정이 바다를 끼고 있는 것과는 달리 죽서루만이 유일하게 강을 끼고 있다. 죽서루의 건립 시기는 미상이나, 여러 역사적 기록을 통해 볼 때 고려 대부터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석 위에 길이가 서로 다른 17개의 기둥을 세워 지은 정자로 관동팔경의 정자 중 가장 크다.
이쪽이 정면일텐데 현판은 뒤쪽에 붙어있다
차를타고 입구로 들어가니 현판이 보인다
왼쪽에 기둥이 4개 더있는것으로보아 나중에 중수할때 세운것 같다
누각 내에 걸려 있는 〈제일계정〉(第一溪亭)이라는 현판은 조선 현종 3년(1662년)에 삼척부사 허목의 글씨이며, 전면에서 보이는 〈죽서루〉와 〈관동제일루〉라는 현판은 조선 숙종 41년(1715년)의 삼척부사 이성조의 글씨이다. 그리고 〈해선유희지소〉(海仙遊戱之所)라고 적혀있는 현판은 조선 헌종 3년(1837년)의 삼척부사 이규헌의 글씨이다.
자연암반위에 세워서 기둥의 길이가 다르다
죽서루는 그 하층이 17개의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9개는 자연석에 세웠으며, 8개는 석초(石礎) 위에 건립하였다는 건축사적 특징을 갖으며, 그 상층에는 20개의 기둥에 팔작지붕이다.
배흘림 기둥의 모습
‘해선유희지소(海仙遊戱之所)’ 헌종 3년(1837)에 이규헌이 쓴 것이다.
‘제일계정(第一溪亭)’ 현종 3년(1662)에 허목이 쓴 것이다
밖에보이는 기둥4개
밖에서 본 모습
여기에도 현판이...
편액이 많이걸려 있었다
현재 누정 내에는 부사 허목이 지은 "죽서루기(竹西樓記)", 당성 홍백련이 지은 "죽서루 중수기" 등 기문과 "죽서루", "해선유희지소(海仙遊戱之所)" 등 제액, 그리고 일중 김충현이 쓴 율곡 이이의 "죽서루차운(竹西樓次韻)", 정조의 어제시의 시판 등 모두 26개의 현판이 게판되어 있다
앞쪽은 가파른 절벽이다
죽서루에서 바라본 오십천
죽서루 옆의 바위
전설이깃든 용문바위
죽서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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