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대는 방언이다. 경기 전라 경상 충청 강원 등 많은 지역에서 열쇠를 쇳대라고 부른다.
쇳대박물관에는 열쇠도 있지만 주종은 자물쇠다. 최 관장은 “서양은 열쇠의 문화지만 한국을 비롯한 동양권은 자물쇠의 문화”라고 설명한다.
4층에 자리 잡은 상설전시관에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전통 자물쇠 350여 점을 전시해 놓았다.
열쇠 꾸러미의 일종인 열쇠 패는 쇳대박물관의 자랑이다. 조선시대 상류층이 시집가는 딸에게 주었다는 혼수용 열쇠 패는 당시 별전(別錢·주화의 본보기나 기념 화폐로 만든 엽전)을 화려한 금속공예로 재탄생시킨 것으로 가치가 높다.
현재 한국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 100여 개의 혼수용 열쇄 패 중 20여 개가 이곳에 있다.
스스로를 ‘철물장이’라고 부르는 최 관장은 “쇳대박물관의 탄생은 콤플렉스 덕분”이라고 했다.
1970년대 중반 대학 진학에 실패한 그는 재수를 하면서 학원비라도 벌어보자는 심정으로 서울 중구 을지로의 철물점에 취직을 했다. 그곳에서 일생의 스승인 권오상(작고) 사장을 만났다.
그는 권 사장을 닮고 싶었다. 철물을 만들어 팔고 전시하고 수집하며 공부에 대한 콤플렉스를 풀었다. 친구들이 대학에서 공부할 때 그는 철물을 찾아 황학동이나 인사동을 돌아다녔다.
자물쇠를 주로 수집한 이유는 크기가 작고 기능적인 데다 디자인이 다양해 공부가 됐기 때문. 하나 둘씩 30여 년간 모은 자물쇠가 4000여 점이나 된다. 전시하지 않은 3000여 점은 수장고에 보관한다.
최 관장은 “사명감을 갖고 박물관을 만들진 않았지만 시작하고 보니 우리 자물쇠의 아름다움과 과학적 우수성을 널리 알릴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 신문기사
동숭동 통신대학근처다
2층과 3층이 쇳대 박물관
입구와 매표소
2층 전시장 모습
쇳대에대한 사연
각종 쇳대가 전시되어 있고...
대문 빗장이다
이건 왜 있는지...
이렇게 둘러본후 3층으로 향한다
3층 전시실
벽면의 열쇠장식이 인상적이다
문에 빗장이 장식되어 있고...
내부는 어두웠다
유럽의 열쇠와 자물쇠.
우리의것이 소박한것에비해, 무척 화려했다
그 유명한 정조대. 실물은 처음봤다
동물모양의 자물쇠
조선시대에 이런것이 있었다니...
ㄷ자형 자물쇠
함박형 자물쇠
원통형 자물쇠
이것은 빗장이다. 빗장도 형태가 여러가지다
아프리카의 빗장
고급스러운게 왕실용인가보다
열쇠패
열쇠를 매어 다는 물건이다. 시어머니가 열쇠패를 끌러 며느리에게 인계하는 날은 가정의 실질적인 경제권을 상속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곳간이나 방 이외에 옷장ㆍ반닫이ㆍ벽장ㆍ조그마한 상자 등에 달았던 자물쇠는 그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을 보호하는 목적 외에도 장식적인 효과를 주기도 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물쇠와 짝을 이루는 열쇠패도 박쥐와 연꽃 문양 등을 수놓은 괴불과 별전, 새 모양 등의 장식물을 화려하게 달았다. 수놓은 연꽃은 연밥이나 복숭아와 한 줄기로 된 복합문으로 구성되었다. 자수 기법은 문양의 테두리는 금사를 사용하여 징금수로 두르고, 면은 여러 가지 색실을 사용하여 평수로 메웠다.
근대기의 각종 외국 자물쇠
전시장 가운데가 정원이라 이런게 있었다
여기는 실제로 자물쇠를 만드는 방이다
이렇게 한바퀴를 둘러 보았다
쇳대박물관
참으로 희한한 박물관이다. 남들이 별로 신경안쓰는것도 알고보면 그속에 그 민족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다만 우리가 모르고 지나갈뿐이 아닐까?
게단을 내려오며 쇳대박물관 답사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