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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발포만호성 (鉢浦萬戶城)

메탈 2009. 3. 10. 16:05

종    목 : 시도기념물 제27호 (고흥군) 
명    칭 : 고흥발포만호성(高興鉢浦萬戶城)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 
수량/면적 : 일원 
지 정 일 : 1977.10.20 
소 재 지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내발리 968 
시    대 : 조선
소 유 자 : 국유
관 리 자 : 고흥군
상 세 문 의 : 전라남도 고흥군 문화관광과 061-833-9408 

 

발포만호성은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발포리 성촌마을을 중심으로 있는 성으로, 만호(萬戶)란 조선시대 때 각 도의 여러 진(鎭)에 파견된 종 4품의 무관직을 말한다. 적의 침입을 막고자 해안선을 따라 성을 쌓았는데 그 모양이 사다리꼴을 이루고 있다.

 

『성종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발포만호는 조선 성종 21년(1490)에 쌓은 것으로, 둘레 1350척, 높이 13척이라 한다. 현재 성의 둘레는 560m, 높이는 4m이고, 서벽이 동벽보다 깊다. 동서남북 4벽이 거의 남아 있으나 동벽과 남벽은 민가의 담으로 이용되고 있다. 성 안에는 동헌과 객사 등의 관아 건물터가 남아있고, 배수로와 무기고의 터도 남아있다. 또 동문, 서문, 남문, 망루터도 확인된다.

 

발포만호는 조선 선조 13년(1580)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만호(萬戶)로 부임하여 18개월간 재임하였던 곳으로, 여천선소 유적과 함께 임진왜란 때 좌수영 산하의 수군기지로 매우 중요한 역사적 배경을 안고 있다.

 
이순신장군 사당이있는 충무사의 입구다.

충무사는 발포성 바로 뒤에 있었다.

 

깨끗이 복원된 발포성 서쪽성곽.

 

높이는 4m정도.

 

수구도 보이는데, 복원된것이라 옛스러움이 떨어졌다.

 

남쪽으로 돌아가는곳에서 성곽이 끝난다.

 

 

조선시대 해동지도에 나타난 발포만호성.

 

1872년 지방도

 

스카이뷰

 

남쪽은 민가가 들어서 성곽의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개인집 담장이 대신해 주었다.

 

 

동백꽃.

 

 

남쪽은 만호성 성곽은 보이질않는다.

아마 개인집이 들어서면서 없어진것 같았다.

 

동쪽도 마찬가지.

 

북쪽으로 올라왔다.

향토민속관이란 간판이 걸려있지만, 잠겨있었다.

 

북벽 안쪽이다. 내탁법으로 이루어졌슴을 알수가 있다.

 

서쪽벽 안쪽.

 

성곽위로 올라서 바라본 북벽과 서벽.

 

북벽뒤로 충무사다.

 

북벽일부와 서벽이 전부였다.

 

성곽에 쓰였던 돌 같다.

 

이제 바깥쪽으로 따라가본다.

 

잘 복원된 북쪽 성곽.

 

충무사.

 

 

전라병영성의 성곽과 매우 닮았다.

 

서쪽으로 돌아간다.

 

 

서벽뒤로 바다가 보이고...

 

 

발포만호성은 전부 복원되어, 옛모습을 볼수가 없는것이 아쉬웠다. 

동쪽과 남쪽도 복원되었으면 좋으련만...많은아쉬움을 뒤로한채 발포만호성 답사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