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산성(山城),읍성(邑城)

김포 문수산성 (文殊山城) 1

오솔 길 2008. 12. 26. 15:45

종    목 : 사적  제139호 
명    칭 : 문수산성(文殊山城)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 
수량/면적 : 203,511㎡ 
지 정 일 : 1964.08.29 
소 재 지 : 경기 김포시  월곶면 포내리 산36-1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국유, 공유, 사유
관 리 자 : 김포시

 

갑곶진과 함께 강화의 입구를 지키던 조선시대의 성이다.

조선 숙종 20년(1694)에 돌을 이용해 쌓은 석축산성으로 순조 12년(1812)에 고쳐 쌓았다. 잘 다듬어진 돌로 견고하게 쌓았고, 그 위에 몸을 숨기기 위한 방어시설인 여장을 둘렀다. 당시의 성문은 취예류·공해루 등 3개의 문루와 비밀통로인 암문 3개가 있었다. 이 중 취예루는 갑곶진과 마주보는 해안에 있었으며 육지로 나오는 관문의 역할을 하였다. 현재 해안 쪽의 성벽과 문루는 없어지고 마을이 되었으며 산등성이를 연결한 성벽만 남아있다.

고종 3년(1866)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치열한 전투를 치른 곳이다. 

 

병자호란을 겪은 후 조선의 군비에 대한 청의 감시가 느슨해지자 조정에서는 강화도를 보강하면서 문수산에 산성을 축조할 계획을 세우게 됐다. 강화도를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문수산을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이었다. 축성 공사는 숙종 19년(1693) 말부터 시작, 이듬해 9월에 끝났다. 대략 10개월 정도 소요된 셈이다.

문수산성은 강화대교가 시작되는 곳에서부터 염하를 따라 평지로 이어지다 문수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북쪽 능선을 따라 올라가 다시 남쪽 능선을 따라 내려오도록 쌓아졌다. 이 산성은 둘레가 6201m, 내부 면적이 6만4000평에 이르는 비교적 큰 규모다.

 

육군박물관은 1998년 문수산성에 대한 현지 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산성은 모두 돌로 쌓여졌는데 현재 염하와 연해 있는 평지 부분은 모두 파괴돼 성벽이 남아 있지 않지만 문수산 능선에는 성벽이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남아 있는 성벽으로 볼 때 외벽은 35m의 높이로 수직 벽면을 이루고 있으며 성벽 상단부의 두께는 2m 정도로 비교적 견고하게 축조됐음을 알 수 있다. 이 산성에는 동·서·남·북 네 곳의 문루(門樓)와 남·북·동 세 곳의 아문(亞門)이 있었으나 현재는 동문과 북문을 복원해 놓았을 뿐 모두 훼손돼 위치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문수산 정상에는 지휘소인 장대(將臺)가 있었는데 현재는 지름 20㎝ 내외의 원형 주춧돌만 남아 있다.

이 문수산성에서 전투가 벌어진 것은 1866년의 병인양요 때였다. 로즈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함대가 갑곶진에 상륙해 강화성을 점령하자 조정에서는 문수산성에 50여 명의 군사를 배치, 프랑스군의 내륙 침략에 대비케 했다. 이 무렵 로즈 제독은 조선군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70여 명의 정찰대를 문수산성 쪽으로 보냈다. 이를 주시하고 있던 조선군의 기습 사격으로 프랑스군에서 전사상자 5명이 발생했다. 프랑스군은 전열을 가다듬고 우세한 화력을 이용, 남문으로 돌진했다. 남문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으나 조선군은 화력의 열세로 말미암아 다수의 사상자를 내고 동쪽의 능선을 따라 통진 쪽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프랑스군은 문수산성을 점령하자 남문을 비롯한 부속 건물과 민가 30여 호를 모조리 소각하고 조선군의 후미를 추격하다 짙은 안개로 추격을 포기하고 강화도로 되돌아갔다.

전투는 조선군의 패배로 끝났지만 문수산성의 전략적 중요성은 더욱 부각됐다. 원래는 내륙으로부터 강화도가 침공받을 경우를 대비해 문수산성을 쌓았던 것이지만 병인양요를 겪으면서 문수산성이 강화도 쪽에서 내륙으로 침공하는 적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 인식됐던 것이다. <이현수 육군사관학교 사학과 교수·육군박물관장〉

 

북문 안쪽이다.

 

이쪽은 바깥쪽이고...

 

바깥쪽은 여장이있다.

 

바깥쪽을 따라가본다.

 

군용 통로.

어쩔수 없다하더라도 흉물스럽다.

 

복원된 성곽은 얼마 안된다.

 

문수산성 옛지도다.

 

현재 남아있는 구간이고...

 

등산로를 따라가는데 왼쪽이 성곽이다.

산 아랫쪽은 많이 무너져있었는데, 얼만큼을 오르니 성곽의 모습이 나타난다.

 

아래로 내려가보니 옛모습이 남아있다.

 

 

성곽위를 따라 가본다.

 

복원한것인지는 알수없으나, 성곽상태가 매우좋다.

 

 

산위로 뻗어올라간다.

 

 

무너진 곳이있어 아래로 내려와서 보아도, 이쪽은 상태가 좋았다.

 

 

 

지나온 성곽. 뒤로 강화대교 모습이다.

 

성곽위로 따라간다.

 

저 321봉까지 연결되어있고, 다시 성곽은 오른쪽 문수봉으로 향한다.

 

봉 가까이오니, 이 부근은 많이 무너져 있었다.

 

길이 오른쪽  왼쪽으로 나뉜다. 오른쪽은 문수봉 방향이고, 왼쪽은 321봉이다.

왼쪽으로 빙 돌며 성곽이 이어진다.

 

그리고는 321봉으로 이어지는데 용도(甬道)다.

양 옆으로 성곽이다. 그렇다면 저 봉우리는 망대나 포대였을것이다.

 

성곽의 흔적.

 

그러나 망대나 포대의 흔적은 기대할수 없었다.

군 벙커가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앞에 보이는 북한. 개풍군이다. 

 

벙커를 돌아 이어지는 성곽. 반대쪽 용도(甬道).

 

문수봉으로 이어진다.

 

오른쪽길이 북문에서 온 길이고, 왼쪽 직진길이 문수봉방향.

 

아래쪽은 성체는 남아있지만, 훼손이 심하다.

 

조금가니 암문이 보인다.

 

옛지도에도 암문이라고만 표시되어있었다.

 

밖으로 나가보니, 성곽이 많이 기울어져있다.

 

문 양옆으로만 성곽의 상태가 좋았다.

 

바깥쪽 모습.

 

문 옆의 성곽상태.

 

 

안쪽모습.

 

문수봉으로 향한다.

 

성곽은 전부 무너져있었다.

 

아주 일부 남아있는곳의 모습.

 

 

다시 길을 따라간다.

 

길이 둘로 나뉜다. 오른쪽이 정상. 왼쪽은 포루나 망루가있는곳이다.

 

이곳도 용도(甬道)로 이루어져 있었다.

 

왼쪽은 거의 무너져있지만..

 

오른쪽은 상태가 매우 좋았다.

 

 

끝까지 이어진다.

 

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사실 여기가 망대인지, 포대인지 아니면 치성인지 알수가없다.

군부대가 진지지으며 전부 파괴해버렸기 때문이다.

기록이라도 남아는있는지...

 

다시 용도(甬道)를 따라 문수봉쪽으로 향한다. 용도의 성곽이다.

 

문수봉으로 향하는 성곽.

 

 

망대같은것이 보인다.

 

 

그러나 요즘 만든것이었다.

 

정상부근에 성곽상태가 좋은곳이다.

 

문수산성 안쪽모습이 한눈에 보이고...

 

원래 여기에 군 부대가 있었는데, 이것 하나만 남기고 전부 이전한 모양이다.

 

지난 여름까지 군 부대가 있던자리.

여기를 우회하다가 엉뚱한곳으로 하산했던 기억이...

 

부대가 있던 자리 아래의, 이 성곽도 옛모습 그대로인지 의문스럽다.

 

정상이다. 장대가 있던곳인데...

 

벽돌의 흔적이다.

여기에 벽돌을 이용하여 대체 무엇이 있었을까? 장대지니까 망루가 있었을까?

 

 

한바퀴 돌아보니 훼손히 심했다.

 

 

정상아래 중봉이다.

성곽은 중봉에서오른쪽 남문으로 이어진다.

 

정상의 벽돌은 아무리 찾아봐도, 어떤것에 쓰였는지 알수가 없었다. 

정상에서 가파른 경사를 내려선다.

 

참고

자료에보면 문수산 정상부근에도 용도와 망대의 흔적이있다는데, 정상부근은 훼손히심해 찾을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