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북 환해장성
환해장성은 말 그대로 바다를 따라 섬을 빙두른 긴 성이다.
기록에 의하면 그 길이가 300리, 즉 120km였다고 한다. 제주도 전체 해안선 길이의 절반에 가깝다.
환해장성은 삼별초의 진입을 사전에 차단하려던 고려 정부에 의해 축조되기 시작했다. 그 시기가 1270년 9월경으로 추정된다. 이때 고여림의 군대가 축조를 시작했다는데, 고여림이 삼별초를 막기위하여 제주온 시기이기 때문이다.
삼별초 대장 이문경에게 패하고 전사한 것이 같은해 11월이라 한다. 환해장성 300리가 모두 고여림의 고려정부군에 의해 축조되었다고는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제주를 장악한 삼별초군도 고려 정부군을 막기위하여 이성을 쌓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후, 왜구에게 시달리던 조선시대 제주 사람들도 지속적으로 이성벽을 축조했다. 그것은 개항기에 "탐라기년"에는 이양선 출몰 때문에 헌종 11년(1845년)에 환해장성을 수리해 쌓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현재 환해장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은 화북, 애월, 고내, 북촌, 동복, 함덕, 평대, 신산, 태흥, 일과 등이라고 한다.
1. 봉수와 연대
봉수와 연대는 적이 침입하거나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시 신속하게 중앙에 알리기 위한 것이다.
즉, 군사통신 시설로서의 밤에는 봉화(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알렸으며, 날씨가 흐리거나 비등으로 인해
연락이 어려울시는 직접 달려가 알리게 하였다.
본격적인 국가제도로 확립된 것은 고려시대이며, 조선시대에 들어와 더욱 발전 정비되었으며, 세종때에는 전국적인 봉수망이 정비되었다. 봉수제는 점차 시설의 미비, 요원배치의 불충분,고독과 추위에 시달리는 봉수군에 대한 보급의 부족, 봉수군의 근무태만과 도망으로 인하여 을묘왜란과 같은 큰 변란에도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처럼 국방상의 위기때 신속히 대처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봉수제도는 결국 그 효능을 보지 못하고 1894년 고종 31년에 폐지하게된다.
* 봉수대와 오름의 관계
제주지역은 지리적 특성상 오름이 봉수대의 요충으로 이용된다. 해안에 위치한 오름에는 대부분 봉수대가 설치되었다. 사라봉수, 도두봉수, 수산봉수,고내봉수,어도봉수,만수봉수(느지리),당산봉수,모슬봉수,저별봉수(송악), 호산봉수(월라),구산봉수, 삼매양봉수,호촌봉수(예촌),자배봉수,토산봉수,달산봉수,남산봉수, 독자봉수,대수산봉수,일출봉수,지미봉수,왕가봉수,입산봉수,서우봉수, 원당봉수등 (제주 사라봉수를 중심으로 서쪽으로 부터 남쪽, 동쪽, 다시 제주시를 돌아 ) 25봉수대등 해안 주변에 위치한 오름들이다. 지미봉수와 입산봉수사이거리가 멀고 오름이 없는 관계로 다소 부적당하지만 낮은 언덕에 설치 되었다.이것이 왕가봉수이다(한동리에 왕가봉)
또한 해안가이지만 산방산에 봉수를 두지 않은 이유는 해발이 395m,비고가 345m로 매우 경사가 심하고 높기 때문에 구름이 자주겨 봉화난 연기를 올렸을때 멀리서 잘 보이지 않기때문에 봉수대의 적지가 되지 않아 월라봉에 봉수대를 설치하게 되었다. 정의현성의 토산봉수-달산봉수-남산봉수-독자봉수등으로 이어지는 까닭은 정의현 현청이 성읍 중산간에 있는 관계로 성읍 바로 앞에서 있는 남산봉에 봉수를 두어 관리들이 쉽게 현청에서 봉수를 지켜볼수 있고 날씨로인해 봉군이 빨리 연락할수있는 중산간
오름을 택하여 봉수대를 설치하였다 한다.
* 봉수대와 연대의 구조 및 규모
봉수는 오름 정상에서 위쪽으로 흙을 둥글게 쌓아 올려 만들었고, 그위에서 불을 피웠고 밑에는 불의 번짐을 막기 위해 물을 채워 놓을수 있는 2중의 도랑으로 되어 있다.그리고 연대는 해안 감시가 쉽고 전투하기에 유리한 공간에 만들어 졌으며, 주로 네모지게 돌을 쌓아 올린 형태이다.
연대의 규모는 높이와 너비를 각 10척으로 하였으나, 도내의 연대규모는 다소 차이가 있다.
* 봉수대와 연대의 전달방식
봉수와 연대 모두 오거법을 따랐으며,평소에는 1개, 이상한 배가 나타나면2개, 우리쪽으로 향해 오게 되면 3개를 올리며, 방어 본부에서는 병력 동원령을 내린다. 적이 상륙하면 4개를 올리며, 전투가 벌어지면 5개를 올린다. 날씨가 좋지않아서 연기난 봉화가 잘 보이지 않을시는 봉군이 달려가서 연락을 취하였다.
* 봉수대와 연대의 병력
봉수대와 연대는 모두 별장 6명을 두었으며, 봉군은 봉수대는12~36명을 장수에 따라 차등 배치 하여 연대는 모두 12명씩 배치하였다 별장2명과 봉군 4명이 한조가 되어 3교대로 24시간 해안을 감시하였다.
별장과 봉군은 봉수대(연대)부근에 거주하는 자로 선별하였으며,다른 군역에는 종사하지 않았다.
*3성9진25봉수
제주읍성; 사라봉수,도두봉수,수산봉수 화북진;원당봉수 조천진;서우봉수
별방진 ;입산봉수, 왕가봉수 애월진;고내봉수 명월진;어도봉수,만조(느지리)봉수
대정현성;송악(저별봉수),호산봉수(월라) 차귀진;당산봉수 모슬진;모슬봉수
구산봉수
정의현성; 토산봉수,달산봉수,남산봉수, 서귀진;삼매양,호촌(예촌)봉수 수산진;수산봉수,성산봉
독자봉수 자배봉수 수, 지미봉수
* 38연대
제주읍성;수근연대,조부연대,별도연대, 함덕연대, 왜포연대,조천연대,입두연대,좌가연대,무주연대
남두연대,애월연대,귀덕연대,우지연대,죽도연대.마두연대,배령연대,대포연대,두모연대
-----18연대 (서쪽 명월진 지금의 한림지역에서 동쪽 별방진 지금의 구좌지역까지)
대정현성;당포연대, 산방연대,별로천연대,대포연대,마희천연대,변수연대,서림연대,우두연대,무수연대
-----9연대(차귀진지금의 고산 지역에서 밑으로 지금의안덕 지역 월라봉수)
정의현성;벌포연대, 소마로연대,천미연대,말등포연대, 연동연대,보목연대,우미연대,금로포연대,협자연
대,오소포연대, 종달연대----11연대 (서귀진 삼매양에서 부터 동쪽으로 수산진 지금의
성산지역)
* 현재 남아있는 봉수대는 없으며 연대중 23기가 시도 기념물로 지정된반면 보호나 보전은 미비한 상태
이다. 일제감점기를 지나면서 봉수대의 파괴로 한기도 남아있지못하는 실정이다, 독자봉수인 경우 형
태나 모습은 찿아보기 힘들고 약간의 지형의 모습을 찿아 볼수있었 씁쓸함을 같게한다. 나중에 찿아
지만 오름나그네에 따르면 구산봉에도 약간의 지형을 살필수 있다고 합니다.
-------- 선생님들 한번 읽고 참고하세요 -------------
*환해장성은 (제주역사 기행--이영권)
*봉수와 연대는 신한라장촉에서 발췌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