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사적 제132호
명 칭 : 강화산성(江華山城)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
수량/면적 : 784,170㎡
지 정 일 : 1964.06.10
소 재 지 : 인천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 산3번지 일원
시 대 : 고려시대
소 유 자 : 국유,공유,사유
관 리 자 : 강화군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있는 고려 및 조선시대의 석축산성. 총면적은 307.1㎢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지은 것인데 1234년부터 본격적 공사에 들어갔다. 고려 때 쌓은 성의 구조를 보면 내성(內城)·중성(中城)·외성(外城)의 형태를 취했는데, 이 중에서 내성이 지금의 강화성이다. 중성은 내성을 지키기 위하여 1250년 축조했으며, 길이 약 9㎞의 토성으로 모두 8개의 성문이 있다. 외성은 1233년부터 축조하기 시작하여 각 주현의 일품군(一品軍)을 징발, 강화 동쪽 해협을 따라 공사를 실시하였다. 몽골군을 막기 위한 중요 방위시설이었으며 강화성은 조선 초기에 다시 축성한 적이 있으나 병자호란 때 파손되고 1677년(숙종 2)에 대규모의 개축공사를 시작하면서 토성(土城)이던 것을 돌로 쌓기 시작하였다. 성문은 동서남북에 4개 있고 암문(暗門)이 4개, 수문(水門)이 2개 있다. 문루로는 남쪽에 안파루(晏波樓), 서쪽에 첨화루(瞻華樓), 북쪽에 진송루(鎭松樓), 동쪽에 망한루(望漢樓)가 있다. 사적 제132호.
풍물시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남문쪽으로 향했다.
잠시후 성곽과 만난다.
길이있는곳에 성곽이 끊어져있는데,내탁(內托)축성법을 한눈에 알수있다.
성곽이 남문으로 이어진다.
성 밖의모습으로, 강도남문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성 안쪽모습.안파루(晏波樓)라 쓰여져있다.
성곽은 조금 이어져있고, 그다음은 야산이다.
성곽이 이어져있지를 않아,다시 마을로나와 서문으로 향했다.
서문 밖의모습이다.
서문 안쪽에는 첨화루(瞻華樓)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서문도 복원을 잘해놓았고, 남문쪽으로도 약 300m정도 성곽을 복원해놓았다.
성곽과 여장.
조선 숙종때(1711)의 석수문.
세개의 무개개모양의 홍예문으로 이루어져있다.
성 밖에서 본 성곽모습이다.
내턱공법으로 이루어진 성곽모습으로 약300m정도다.
서문에서 북문은 얕은 야산으로 등산로다.
능선을 따라가면 북문으로 이어진다. 북문가까이오니, 성곽이 나타난다.
북문 안쪽모습으로, 진송루(鎭松樓)라 쓰여져있다.
북문 밖의 모습.
성곽은 북문 좌우로 조금 복원되었지만, 원형그대로 이어진부분도 꽤된다.
강화산성의 원래모습이다.
오솔길을따라, 산성이 반쯤 묻혀있다가 끊어진채로 동문으로 이어진다.
동문 망한루(望漢樓)다.
동문은 문만 복원된상태로있다.
강도동문이란 현판이다.
강화산성은 복원한 4문과 남문,서문의 일부성곽구간,북문의 원형을 유지한 일부구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남아있지를 않다.
성곽전체를 복원하는것은, 이미 도시화된마을을 전부 이전시키키전에야 불가능한 일일테고..남아있는 부분이라도 복원하여, 우리역사의 영욕을 후세가 같이느낄수있도록 하는것이 산 교육이 아닐까 생각하며 강화산성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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